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희운 Nov 17. 2021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히어로들

<이터널스> 단평

※ <이터널스>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터널스>는 마블 영화 중에서도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 중에 하나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렇게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건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 기존 마블 영화 스타일이 아니라 인물 간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는 이야기라는 점이 가장 큰 듯하다. 또한 기존 어벤져스 시리즈에서는 각 캐릭터들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이터널스>는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보니 캐릭터 자체가 낯설고 영화 한 편 내에서 캐릭터들의 서사가 충분히 풀어지지 못한 느낌이다. 몇 명의 인상적인 캐릭터를 제외한다면 이 영화 내에서 다른 캐릭터들은 사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터널스>는 강렬한 캐릭터들이 전체 서사를 지배하는 기존 마블 영화 구조와는 다르게 각 캐릭터들이 마치 그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에 가깝다. 다른 마블 영화처럼 여러 시리즈를 통해 캐릭터를 묘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기에 각 캐릭터 간의 연결성은 매우 느슨해 보이며, 관객들이 캐릭터에 빠지도록 매력도가 생성되는데도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 느슨한 연결성은 모두 사랑이라는 주제 의식을 통해 완성된다. 10명의 각 캐릭터들은 몇몇 구성원들과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표면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이 캐릭터들은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이따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벌여 서로를 위기에 빠뜨린다. 캐릭터들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은 모두 캐릭터의 흠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흠은 이들을 인간과 매우 유사하게 보이게 만든다. 표면적으로는 전지전능하고 불사의 존재로서 인간들에게 지식을 주고 문명을 발전시켜온 '신'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지만 실상 이들은 모두 유약한 면을 지닌 인간들과 같은 존재들인 것이다. 이러한 흠으로 인해 서로의 관계는 부서지고 이터널스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위기가 발생하지만, 이들은 결국 사랑으로 서로의 흠을 덮고 이를 극복하며 자신들의 헝클어진 관계들을 새롭게 구축해나간다.


자신들이 지구는 지키러 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셀레스티얼을 탄생시키는 도구로서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안 이터널스들은 자신들을 지구에 보낸 아리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여태까지 지켜왔던 지구를 구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이들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점이다. 다른 마블 영화들과 달리 이들이 가진 고뇌는 상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것으로 보인다. 지구를 구한다는 점에서는 어벤져스와 다를 바가 없으나 어벤져스의 존재 이유가 세상을 지키는 것이라면 이터널스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뒤엎고 스스로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 즉,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목표만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 속에서 새로운 목적을 만들어 그 목적을 따라가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마블 영화에서 히어로들만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고뇌는 많이 그려져 왔지만, 이렇게 자신 존재의 본질을 고민하며 존재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개척해내는 존재들은 드물었다. 스스로를 도구에 안착시키기 않고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삶. 이터널스의 고뇌는 히어로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마주할 수 있는 고뇌들이기에 다른 마블 영화 속 어떤 히어로들보다도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삶을 전체로 기억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기억하는 이들은 인간들의 타임라인보다 훨씬 긴 삶을 살아왔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삶 속에서 고뇌하고 그 속에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인간들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이번 마블 영화에서는 비인간적인 존재들을 통해 가장 인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이 정해준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삶. 이러한 주제가 그동안 마블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었고 시리즈 첫 번째 영화에서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다 보니 <이터널스>의 시작이 중구난방이 되어버린 느낌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이 시리즈의 숙제는 각 캐릭터들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느냐 일 것이다. 히어로들의 인간성이 두드러진 만큼, 이제 다음 편에서는 각 캐릭터들의 매력을 강하게 어필하며 캐릭터들의 팬덤을 강하게 구축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난을 대처하는 무난한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