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 더 하우스> 단평
※ <더 하우스> 각 에피소드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관람 전이라면 관람 후 이 리뷰를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넷플릭스의 <더 하우스>는 동일한 집을 배경으로 하여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잘 제작되지 않는 추세인 데다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는 잘 다루지 않는 호러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기도 했다. <더 하우스>는 각 에피소드마다 약 30분 정도의 러닝타임으로 진행되는데, 세 에피소드 모두 외관이 같은 집을 다루고 있지만 각 에피소드마다 이 집을 다루는 방식과 집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서로 다르다. 다만 세 가지 에피소드의 공통점이 있다면 집이 등장인물들의 욕망이 투영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거짓의 속삭임>이란 제목을 갖고 있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메이블과 이자벨의 아버지는 가난으로 인해 다른 가족들에게 멸시받지 않고 떵떵거리면서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이고 어머니는 물질적인 풍요를 바라는 인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더 좋은 곳에서 살기를 바랐던 이들의 욕망은 어딘가 모르게 수상해 보이는 낯선 이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살수록 기이함만이 느껴지는 집의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 집에 매혹된다. 이 가족을 끌어들여 자신의 집에 가두게 만든 것은 밴 슌비크의 계략이었지만, 집에 매혹되어 나갈 의지조차 갖지 못하게 만든 것은 두 사람의 욕망에 가깝다. 이들의 눈이 멀었다는 증거는 자신들이 입고 있는 옷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유일하게 집에 대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메이블에게 호통을 치고 메이블이 사과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기묘하게 얽혀있어 미로와도 같고 아무도 나갈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국 인형 놀이의 한 도구처럼 집의 일부분이 되어버린다. 어린 메이블과 이사벨은 이 지옥 같은 집에서 겨우 빠져나오는데, 이들이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 둘은 그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는 순수한 존재였기에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밴 슌비크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는지 영화 속에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지만 이러한 인과관계는 이 에피소드에서 중요하지 않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공포' 이 문장 하나만으로 이 에피소드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아무도 모르는 진실>은 자신의 집을 어떻게든 팔아넘기려고 하는 중개업자의 이야기이다. 중개업자의 표면적인 욕망은 어떻게든 집을 팔아 더 이상 은행에게 재촉당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마지막으로 드러나는 충격적인 엔딩을 통해 그가 다른 욕망을 지닌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중개업자는 자신이 팔고자 하는 집을 망치려 하는 수시렁이를 박멸시키고자 하지만 이미 집안 곳곳에 만연해있는 수시렁이와 수시렁이 애벌레는 현대적으로 완벽하게 꾸며진 집뿐만 아니라 중개업자의 삶까지 먹어치워 버린다. 여기서 중개업자 캐릭터가 쥐로 설정된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데, 에피소드의 엔딩에 이르러서 쥐 인척 변장한 수시렁이들은 집을 모두 먹어치워 난장판으로 만들고 중개업자는 자신이 그토록 자랑했던 오븐 안에서 발견된다. 그의 모습은 누군가와 전화하고 다른 이들에게 집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성적인 모습이 아닌 사람들이 그토록 혐오해마지 않은 더러운 '쥐'의 모습에 가깝다. 눈앞에 있던 것을 제대로 직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의 부모와 비슷한 측면이 있으나, 두 번째 에피소드의 중개업자는 천박함이라는 자신의 본성을 속이고 문명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썼다는 점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즉, 중개업자의 진짜 욕망은 '자신의 본성과는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었던 것이다. 쥐라는 동물이 사회 속에서 갖는 특성과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욕망을 결합하여 에피소드 내에서 투영해냈다는 점에서 <더 하우스>의 세 에피소드 중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였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귀 기울이면 행복해요>는 앞서 두 에피소드와는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를 가진 에피소드이다. 이 에피소드야말로 펠트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따스함을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로사는 모든 세상이 물에 잠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떠있다시피 한 집을 계속 수리하고자 하지만, 집세를 제대로 내지 않는 두 세입자로 인해 괴롭기만 하다. 집 주변은 점점 더 물에 잠겨가기 시작하고 유일한 세입자인 일라이어스와 젠은 새로 나타난 코스모스를 따라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한다. 돈을 안내는 세입자들에게 까칠하게 굴었던 로사였지만, 사실 로사는 누구보다도 그들을 의지하고 있었다. 홍수로 세상이 잠겨가는 와중에 그들은 집을 고치려 남아있는 로사의 곁에 있어주는 유일한 이들이었던 것이다. 로사는 눈앞에 있는 홍수를 외면하고 집을 고치는데만 머물러 있었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이 집을 떠나고 싶어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이기에 그는 이 집을 떠날 수 없었는데, 코스모스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로사가 집을 버리지도 않고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욕망을 들어주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앞서 본 두 에피소드와는 아예 장르가 달라져 낯설 수도 있지만, 앞서 본 두 에피소드로 인해 피폐해진 마음을 어느 정도 달래주는 힐링 물로서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더 하우스>는 펠트라는 소재가 주는 느낌과 호러라는 장르가 서로 충돌하는데 오는 이질감을 효과적으로 재현한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이 만났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한 번에 완벽하게 섞여들지는 않지만 오히려 서로 상충되는 것을 통해 장르적인 쾌감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따뜻한 펠트로 만들어진 소름 끼치면서도 기괴하고 더러우면서도 찝찝한 세상은 이 애니메이션이 아닌 다른 어떤 애니메이션에서도 쉽게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기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뜻 추천하기는 어려우나, 호러와 공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강력 추천을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