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메어 앨리> 단평
※ <나이트메어 앨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 중에서 처음으로 괴물이 나오지 않는 영화이다. 괴물들을 유달리 사랑하는 감독으로서 이러한 선택이 의외였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단순히 영화 속에서 괴물의 형상을 한 존재들이 등장하지 않았을 뿐, 인간들의 형상을 한 괴물들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답게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괴물 같은 잔혹함과 그러한 인간이 얼마나 끔찍하게 몰락할 수 있는지 시종일관 몽환적이면서도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그려낸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남자 스탠턴은 버스의 마지막 종착지에서 서커스단을 구경하다 서커스 단원의 눈에 띄어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독심술사인 지나의 일을 도와주면서 서커스단원으로 자리를 잡고 지나의 남편인 피트를 통해 독심술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스탠턴은 그곳에서 매력적인 몰리를 만나 사랑에 빠져 그와 함께 서커스단을 독립한다. 2년이 지난 뒤, 몰리는 스탠턴의 조수가 되었고 스탠턴은 독심술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스탠턴은 자신의 쇼에서 심리학 박사 릴리스를 만나고 그의 소개를 통해 만난 거물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게 되면서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독심술이라는 비논리적인 영역에서부터 시작해, 심리학이라는 과학의 영역까지 넘어간다. 독심술과 심리학 서로 완전히 다른 분야처럼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람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독심술은 타인의 마음을 지레짐작으로 알아맞히려 하는 것이며, 심리학은 타인의 마음속에 어떤 것이 숨겨져 있는지 분석하려 한다. 독심술을 다루면서도 심리학자인 릴리스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던 스탠턴은 이 두 영역과 누구보다도 가깝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기 자신의 마음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신의 내면 속에 숨겨져 있던 어두운 과거를 억압했던 스탠턴은 그 과거로부터 멀리 벗어나기 위해 더욱 끔찍한 짓들을 저지르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다. 스탠턴을 움직이는 욕망은 단순히 돈을 더 벌어들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 속에는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진짜 욕망이 숨어있다. 끔찍한 과거들로부터 멀리 벗어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였지만, 그의 욕망은 그 스스로를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혀버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난 장면은 지나가 오랜만에 만난 스탠턴의 미래를 타로카드로 점쳐주는 장면이다. 지나는 스탠턴에게 총 세 가지 카드를 고르라고 한다. 그가 뽑아 든 세 장의 카드 중 가장 마지막 카드는 거꾸로 매달린 남자인데, 스탠턴은 그 카드를 보고 위아래를 바꿔버린다. 타로카드는 방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이 카드의 경우 정방향으로 봤을 때 남자가 거꾸로 매달린 모습이다. 이 카드는 정방향에서 시련, 인내와 같은 의미를 지니지만 역방향으로 바꿔 남자가 똑바로 서있는 것처럼 보일 경우에는 헛수고, 자포자기와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바뀌어 버린다. 즉, 스탠턴은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그가 가진 욕망은 그의 운명마저 삼켜버리고 말았고 자신의 운명을 제 손으로 끔찍하게 만들어버렸다.
영화는 한 개인이 가진 잘못된 욕망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가진 그릇된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돈을 내고 기인을 구경하고 오고, 서커스단 단장은 이들을 통해 돈을 벌어들인다. 살아있는 닭의 목을 뜯어먹는 기인의 모습과 이를 구경하는 지저분한 행색의 사람들. 자기보다 못한 처지의 타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스탠턴이 디너쇼에서 사람들에게 독심술을 보여주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한껏 갖춰 입고 깔끔하게 차려진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은 스탠턴이 보여주는 독심술을 우아하게 감상하지만, 사실 이들은 닭의 생목을 뜯어먹는 기인의 쇼를 보는 것과 다름없다. 스탠턴이 보여주는 독심술에 감탄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반응은 마치 동물원에서 신기한 쇼를 보여주는 원숭이를 쳐다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자신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타인을 보며 위안받는 괴물과도 같이 잔인한 이들의 삶. 그렇기에 스탠턴은 자신이 사랑하는 몰리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지 않고 그들과 같은 자리에서 타인을 내려다보기 위해 더욱 많은 돈을 갈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엔딩은 '지난 10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이라는 문구처럼 뒤통수를 가격 당한 것 같은 큰 충격은 아니지만 꽤 신선했다. 과거로부터 발버둥 치던 스탠턴이 자신이 지켰던 기인과 같은 운명에 처하는 것. 서커스 단장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똑같이 들으면서 스탠턴이 회한에 찬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결국 아무리 도망쳐봤자 자신의 욕망이 짜 놓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가난한 자신의 집을 태워버리고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 열망했던 남자는 결국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전락해버린다.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났지만, 스탠턴은 이제 앞으로 다른 이들 앞에서 살아있는 닭의 모가지를 입으로 물어뜯으며 이렇게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