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적인 드라마의 탁월한 엔딩

[파친코] 시즌 1의 엔딩이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by 송희운

※ 본 리뷰에는 [파친코] 시즌 1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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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의 기대작 [파친코] 시즌 1의 마지막화가 공개되었다. 매화 공개될 때마다 높은 완성도로 호평받은 만큼, 마지막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고 시즌 1에서 과연 이야기를 어떻게 끝맺을지 궁금증이 증폭된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공개된 마지막화를 보고 나니 이 드라마는 기념비적인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파친코]는 지금까지 전개해왔던 이야기를 가장 탁월하게 마무리지었다.


[파친코]는 조선을 떠나 일본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한인 이민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선자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는 이야기는 4대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만큼 다양한 시간대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선자를 주축으로 하여 진행되는 과거와 솔로몬을 주축으로 하여 진행되는 현대는 최대 약 80년이란 시간차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과 배척이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선자의 시대 속에서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술자리에서 순사들을 공격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은 취조당하고 그 말을 했던 사람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며 잡혀가고, 수산시장 뒷골목에서는 대낮에 일본인들에게 성폭행당할 뻔하기도 하고, 머나먼 타지로 시집보내는 자신의 딸에게 쌀밥을 해주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상인에게 간곡하게 사정해야만 하기도 한다.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었고, 희망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은 더욱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고국에 있을 때보다도 억압된 채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어떻게든 일본땅에서 버티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야만 했다. 이러한 와중에 관동대지진이란 끔찍한 재앙이 닥치고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푼다'는 유언비어가 퍼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일본인들의 차별은 더욱 교묘해진다. 도둑질을 했지만 학생 신분으로 경찰에 끌려가서 과한 처벌을 받게 만드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부터 계약 건에 얽혀있는 솔로몬을 탐탁지 않게 대하는 일본인의 태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파친코]는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며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이 인물들이 사는 세계 속에서 그들이 받아야만 했던 수모를 그려낸다. 이 드라마만큼이나 그 당시 시대상을 자세하게 그려낸 드라마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파친코]는 보는 이들이 인물들이 겪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파친코]의 영리한 지점은 일본인들이 우리를 탄압했던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영상 매체로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이것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역사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남편이 감옥에 갇힌 뒤 홀로 장사를 시작한 선자의 모습으로 드라마가 끝난 뒤, 2021년 오사카로 넘어와 재일조선인들이 한 명씩 등장하면서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이 드라마가 '선자'라는 인물을 대표로 하여 이들의 뼈저리게 시린 역사를 풀어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 준다. 사실 [파친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인 만큼 이전 에피소드들처럼 다음 시즌에 대한 예고 및 궁금증을 더하는 것으로 끝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드라마가 다음 시즌에 대한 떡밥을 풀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존 인물들의 증언이 더해지면서 화면에서 한 걸음 물러나 흥미로운 이야기처럼 바라보던 사람들은 화면 밖 실제 현실에 눈을 뜨고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이것이 그냥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있게 만든 우리들의 역사'라는 것을 말이다. 아직 모든 이야기가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파친코]는 이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거칠고 폭력적인 세상이 우리를 힘겹고 어렵게 할지라도 '우리'가 '우리'라는 것을 잊지 않고 버텨야 한다는 것. 가깝고도 먼 땅에 있는 수많은 다른 '선자'들이 이미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