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건져 올린 어떤 경향

<개의 역사>와 <올 리브 올리브>를 통해 만난 개인과 역사의 관계성

by 송희운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고 작성되었습니다.


환경재단이 주최하고, 2017년 5월 18일(목)부터 5월 24일(수)까지 아트하우스모모에서 진행된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는 ‘환경’을 화두로 환경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테마 영화제이다. 평소 서울환경영화제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는 왔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직접 갈 기회는 많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브런치 무비패스라는 아주 특별한 기회 덕에 서울환경영화제를 참여할 수 있었다. 역시나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인해 마지막 날 영화제를 찾아오게 되었는데 이 날 봤던 두 편의 영화 비슷한 주제를 각자 다른 편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이 날 관람했던 영화는 <개의 역사>와 <올 리브 올리브>였다. 처음 리뷰를 작성하기 전에는 내가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까 이런 여러 고민들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의도치 않게 두 영화가 마치 유사한 주제를 거울을 통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서 생각 외로 리뷰를 빨리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의 역사> 스틸


<개의 역사>는 서울의 한적한 동네에 살고 있는 개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엄밀히 이야기 한다면, ‘백구’ 한 마리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한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영화 속 대사처럼 신문에서 헤드 1면을 장식하지 못한 아주 사소한 이야기이지만, 사소함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때로는 백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새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올 리브 올리브> 스틸


<올 리브 올리브>는 요르단 서부의 도시인 나불루스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점령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다양한 일상을 담아낸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들의 삶은 온통 이스라엘에 의해 자유가 억압되어 있다. 분명 자신의 아버지 시절부터 살고 있었던 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수많은 서류와 오랜 기다림 끝에야만 갈 수 있는 어려운 곳이 되어 버렸고, 평범한 삶의 터전이었던 ‘집’에는 총탄, 탄피 등 전쟁의 상처들이 남아있는 공간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개의 역사> 스틸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상황 속 개인의 모습을 비춘다. <개의 역사>에서 각자의 삶은 너무나 작고 평범해 보여서 거대한 역사 속에서는 제대로 비춰지지 않는다. 감독이 그렇게도 알고 싶었던 후암동 백구의 역사는 끝내 밝혀지지 못하고, 노인들의 삶은 문자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다. 이들의 ‘역사’가 기록되는 순간은 <개의 역사>를 연출한 감독이 자신의 카메라를 들었던 그 순간 뿐이다. 그 역사도 감독의 카메라가 움직이는 순간에만 기록된다. 감독 자신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모두들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라고 외치지만, 그 외침은 세상 속에서 통용되지 못한다. 감독이 13번째, 14번째, 15번째 이사를 마치는 순간에도 감독의 그러한 순간들을 세상은 기억하지 않고 그저 흘려 보낸다.


<올 리브 올리브> 스틸


<올 리브 올리브>는 <개의 역사>와 다른 측면에서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억압한다. <개의 역사>가 개인의 삶을 역사 속에서 편입시키기 않는 억압이라면 <올 리브 올리브>에서는 개인의 삶이 현재의 역사를 위해서 침묵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역사 속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아왔던 개인의 역사들과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끊임없이 침범당하고 무시당한다. 올리브 농사가 주를 이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더 이상 자유롭게 그 땅을 넘어가지 못한다. 남성들이 민중봉기로 죽거나 감옥에 갇히면서 히잡을 두른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이제 바깥으로 나가 가장이 하던 일을 이어받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한다. 이들에게는 평범한 삶의 기쁨이나 슬픔 이런 것들이 모두 억압당할 수 밖에 없다. "이 땅에서는 기쁨과 슬픔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영화 속 나레이터인 와디즈의 말처럼 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땅과 자유를 억압당하고 빼았겼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자손들이 더 이상 이런 고통에 얽매여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투쟁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겐 개인의 삶과 기록이 역사가 되는 동시에 개인의 삶이 역사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각자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먼저 쟁취할 것이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그럼 이쯤에서, ‘역사’란 무엇일까. 역사의 첫 번째 뜻은 인류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 쓰여있고,두 번째 뜻으로는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이라 적혀있다. <개의 역사>에서 백구의 역사는 두번째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하야를 부르짖으며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거리로 나와 있었던 그 역사적인 순간에도 백구는 조용히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 <올 리브 올리브> 속 역사는 변화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그 자체의 모습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은 어떻게 기록되는가. <개의 역사>에서처럼 중요한 역사 뒤편에서 중요하지 않은 취급을 받더라도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인가, <올 리브 올리브>에서처럼 개인의 삶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 역사 속으로 뛰어들어 투쟁하는 것인가. 어찌되었건 두 종류의 역사 모두 여러 환경 속에서 인간이 자신만의 삶을 살아왔던 실재했던 기록이고, 흔적이다.


<개의 역사>는 지하철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또 다른 백구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올 리브 올리브>에서는 자신들이 땅을 되찾을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단호한 의지가 담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두 영화는 끝이 났지만, 영화라는 프레임 바깥에서는 누군가의 삶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이라는 것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역사로 들어갈 수도 있고, 역사에서 동떨어진 채 남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역사로 들어가지는 못할지라도 존재의 의미는 옅어지지 않을 것이고, 역사 위에서 피 흘리며 걸어갈지라도 그 존재는 당당할 것이다.


비록, 서울환경영화제를 너무 늦게 접했지만 ‘환경’이라는 울타리 위에서 ‘역사’라는 프레임을 통해 ‘존재’의의미를 곱씹는다는 것. 서울환경영화제의 모든 영화들이 이런 이야기에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에 거울을 하나 두고 서로의 반대편을 비추고 있는 듯한 두 영화가 나에게 더욱 오래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왜 그는 너를 사랑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