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를 통해 바라본 인간의 이기성 / 이타성에 대하여
※ 이 리뷰에는 <택시운전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 리뷰는 7월 10일(월) 진행된 사전 시사회를 통해 관람하고 작성되었습니다.
<택시운전사>는 사실 매우 특별한 영화이면서 특별하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5.18 광주민주화 항쟁이라는 우리 역사 속 아픈 일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송강호가 그 역사 속 재현된 인물을 연기하다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광주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 대중영화라는 틀 속에서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러티브를 취하고 있다는 점(쉽게 말하자면 전형적인 스타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만섭이라는 인물을 특별함과 평범함 그 묘한 경계 사이에 있는 캐릭터이다. 처음에는 오직 돈이라는 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돈보다 더욱 인간성을 위해 위험한 곳으로 되돌아가는 캐릭터. 그 캐릭터는 우리의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캐릭터이지만, 인간의 이기성과 이타성 이렇게 두 가지 대조되는 지점에서 고뇌하는 캐릭터를 송강호가 연기했다는 점에서 특별해진다.
사실 내게 있어서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는 수작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을 남긴 영화였다. "내가 속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 순간이 왔을 때,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살아남기 위한 나의 이기성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목숨이 위험에 처하더라도 남을 위한 이타성을 택할 것인가?" 그 질문은 송강호가 맡은 캐릭터인 만섭에게 주어졌던 질문인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수없이 마주했고, 앞으로도 마주하게 될 질문이었다.
만섭이 광주로 가게 된 동기는 참으로 세속적이었다. 그가 광주로 갔던 이유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였으며(돈을 벌어서 자신의 딸을 먹여 살리기 위한 책임감도 있었지만), 이전까지 그는 데모를 하는 젊은이들을 폄하했고 광주의 사태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제대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광주 사람들의 현실은 그가 속한 현실이 아니었기에 그는 단순한 방관자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태운 손님이 가는 곳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에게 줄 돈에만 관심이 있었고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위가 제일 중요했다.
광주로 내려가서 만섭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종류의 현실을 마주한다. 그곳에서 군인들이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을 목격했고, 총과 칼로 무장한 채 폭력으로 사람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그가 만났던 현실은 생각보다 더욱 끔찍한 것이었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이로 인해 그는 사사건건 광주의 현실을 담으러 온 피터와 부딪혔다. 피터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외부로 드러내기 위해서 광주로 왔지만, 만섭은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피터를 데리고 광주를 떠나려고 한다.
언뜻 평범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택시운전사>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이 한 가지 있는데, 그 장면은 만섭이 사복경찰을 피해 도망가던 중 사람들이 붙잡혀 있는 순간을 목격할 때이다. 어두운 골목길에 붉은 빛이 비치고 있고, 골목길 한 구석에 정차되어 있는 트럭 속에서는 사람들이 속옷만 입은 채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채 떨고 있다. 만섭은 그 속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똑똑히 듣는다.
살려주세요...
사복경찰에게 쫓기는 순간 마주한 그 장면은 만섭에게 지금 이 곳의 현실이 자신의 눈을 가리고 손을 들어서 하늘을 가린다고 해도 가려질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목도한다. 애써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외면해도 광주에서는 그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었으며, 자신이 어떻게 해도 피할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장면이 있었기에 만섭이 ‘진실’을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임을 깨달을 수 있었고, 만섭은 자신이 두고 온 손님을 데리고 가기 위해 다시 광주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흔히 사람들은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우리들이 사는 삶이 너무 바쁘기에 우리가 남의 일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남의 일이라는 것이 나의 일과 마찬가지인 우리들의 현실이 동시에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인간성과 연관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광주에서 광주시민들의 뼈아픈 현실을 목격한 만섭은 그것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인간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일이 아닐 때 인간은 한없이 이기적이 되어가지만, 그것이 나의 일로 체험되었을 때 그것은 나의 인간성이 되고 우리가 바꿔나가야 할 현실이 된다. 광주시민들을 도왔던 만섭의 심정도 그러했을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든 취재해서 방송으로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피터의 심정도 그러했을 것이다.
<택시운전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기성을 넘어섰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지를 영화적인 장치들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이 시기에 이 영화가 개봉할수 있었던 이유도 우리가 살고 있었던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며, 좀 더 비약해서 이야기한다면 이 시대가 도래하기 전 모든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한 마음으로 나가서 나의 일처럼 자신의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는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앞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고 추구해야 할 미래 속에 담긴 중점적인 가치를 보여준다.
비록 그 가치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순간들(광주 택시 기사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피터와 만섭을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들 등)은 모두 동의할 수없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중심적인 가치에는 동의한다. 과거 <화려한 휴가>가 함부로 말할 수 없었던 그 시대를 보여주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게 기억을 다시 소환시켰다면, <택시운전사>는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제 기억을 넘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역사의 방향성에 대해 보여준다. 역사는 바로 우리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며, 그 흐름 속에서 어떠한 발걸음을 내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우리가 내딛은 걸음으로 이 세상이 바뀌어 나가는 것을 목도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어떤 걸음으로 다시 나아갈지, 영화 속 만섭처럼 선택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