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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Sep 09. 2018

서로를 붙잡을 수 없었던 우리의 연약함에 대하여

작은 돌멩이 같았던 연약함의 틈,  <체실 비치에서>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작성하였습니다.

※ 이 리뷰는 최대한 <체실 비치에서>의 스포일러가 되는 부분을 드러내지 않고 썼으나,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톤먼트>에서의 시얼샤 로넌


이언 매큐언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은 바로 <어톤먼트>이다. 가장 좋아하는 멜로 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아주 작은 거짓말이었지만 그로 인해 평생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한 인간의 연약함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어톤먼트>에서 다른 두 주연 배우보다도 먼저 기억나는 것은 어린 나이였지만, 아주 당돌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던 시얼샤 로넌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인해 악의가 가득 찬 거짓말을 천진난만하게 하던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는 이제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완벽한 필모그래피를 갖게 되었다. 그러한 그녀가 이언 매큐언의 작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언 매큐언이 직접 각본까지 쓴 <체실 비치에서> 영화에서 시얼샤 로넌은 한층 더 섬세하고 깊어진 연기로 자신만의 또 다른 여성 캐릭터를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물론 이 영화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시얼샤 로넌의 뛰어난 연기 만이 아니다. 그녀의 연기는 워낙 많은 이들이 호평해왔던 것이기에, 나는 <체실 비치에서>의 다른 면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가려졌던 사람들의 '연약함'이다.



<체실 비치에서>의 스토리 라인은 단순하다. 이제 막 결혼해서 신혼 여행지인 체실 비치에 도착한 플로렌스와 에드워드 커플. 두 사람은 함께 신혼의 첫날밤을 보내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이 상처는 각자의 마음에 크게 남아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고 만다. 두 남녀가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스토리는 많이 봐왔지만, <체실 비치에서>처럼 행복한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결혼’에서부터 어떻게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멜로 영화는 드물다. 흔히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고정관념과 달리 이 영화는 ‘사랑’의 이면 속에 있는 인간의 약한 모습을 집중적으로 그려낸다.



어린 만큼 열정적이었던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험난한 연애사를 넘어서 결혼에 성공했지만, 어린 시절 우리가 읽었던 동화들처럼 “그들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고 끝나지 못했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서로 집안 사이에서부터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었고, 아직 어렸기에 세상에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두려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가장 결정적으로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었던 상처로 인해 또 다른 상처가 만들어졌고, 이로 인해 이들은 결국 헤어진다. 이들은 연약하고 너무 어렸기에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방법을 알지 못했다. 서로가 가진 연약함은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서로를 껴안으려고 할수록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들이 서로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공간이 ‘체실 비치’라는 점은 무엇보다도 의미심장하다. 이 해변가는 자잘한 모래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작은 조약돌로 이뤄진 해변가이다. 아주 아주 작은 알갱이로 이뤄진 모래알은 물에 묻는 순간 빈틈없이 메워져서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룰 수 있지만, 자갈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자갈은 서로의 틈이 많아 물이 들어가는 순간 모두 고스란히 빠지고 만다. 체실 비치의 드넓은 공간에서 곳곳에 비어있는 수많은 텅 빈 틈새들은 서로의 고통이 들어오는 순간 서로를 품어주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해버리는 어린 두 사람의 연약함과도 같다. 오프닝에서처럼 이들의 사랑이 아직 열정적이고 불타오를 때는 발이 푹푹 빠지더라도 앞으로 갈 수 있지만, 힘든 순간이 다가올 때는 마지막 장면처럼 서로를 그냥 통과해버릴 수밖에 없다. 체실 비치라는 공간은 마치 두 사람의 상태를 대로 옮겨낸 듯, 감정을 토대로 창조된 연극 무대가 된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행복했던 연애 시절은 서로에게 많은 긴장감을 자아내는 첫날밤과 교차되어 보이면서 미묘한 불안감을 자아낸다. 그것은 이들의 첫날밤이 마치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처럼 불안한 관계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들 사이에서 나오는 긴장감으로 인해 앞으로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런 불확실한 불안감은 사실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느끼지 않기를 바라는 감정들이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모든 주인공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나의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투영해서 보는 것보다는 영화라는 환상 속에서만이라도 주인공들이 행복한 것을 보고 대리 만족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삶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처럼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우리는 <체실 비치에서>라는 멜로 영화를 보고 있지만, 그들 자신 내면에 갖고 있는 연약함은 우리의 마음속 깊숙이 숨어있는 연약함이기도 하다. 영화의 이야기가 되는 배경은 1962년이지만,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플로렌스 혹은 에드워드라면 우리는 서로의 나약함을 보았을 때 서로를 쉽게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을까? 플로렌스의 입장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맞는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이고, 에드워드의 입장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온전히 껴안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이다. 이들의 불안정한 모습은 우리의 기억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연약함과 겹쳐지면서 한 때 우리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는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를 보게 된다.



내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읽고 늘 느꼈던 점은 항상 나약한 사람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점이었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항상 나약하지 않은 척하려 하지만, 그 나약함은 언제고 계속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가 결정적인 순간 튀어나와 모래성처럼 쌓아 올려진 연약한 관계를 부셔버린다.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자신의 나약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을 가시로 만들어서 상대방에게 던졌을 때 상대방은 얼마나 큰 아픔을 느꼈을까? 그렇기에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이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만약에?’라는 질문 하나와 이들의 연약함이 서로 교차될 때, 이 영화의 마지막은 그 어떤 멜로 영화의 엔딩보다 가장 큰 슬픔으로 가득 찬다.



<체실 비치에서>를 보고 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 내리기는 어려워도, 사랑이 찾아오는 시기는 참으로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은 어린 시절 찾아올 수도, 나이가 든 뒤에 찾아올 수도 있는 언제든지 우리에게 급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은 언제나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데, 사랑이 찾아왔다고 해서 무조건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 자체가 우리를 성숙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 겪었던 우리의 상처와 아픔들을 통해 사랑이 지나간 뒤에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라는 두 사람이 만나 열렬히 사랑하고 그 사랑은 이제 과거가 되어 흘러갔다. 연약함 속에서 피어난 열정은 금방 식어버린 이별이 되어 슬픔을 자아냈지만, 서로를 품어주지 못했던 그들의 연약함은 사랑이 지나간 뒤 결국 그들을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체실 비치에서>는 ‘사랑’을 서로의 연약함을 지금 당장 감싸 안지는 못해도, 언젠가는 그 연약함을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성숙의 전 단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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