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단평
※ <여행자>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행자>의 장면 중 딱 한 가지 만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진희가 자신의 손으로 무덤을 파는 장면일 것이다. 열 살이 채 되지도 않은 아이가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기분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아 참새의 무덤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처럼 스스로 무덤을 파고 생을 마감하려고 하는 장면은 1970년대, 수출품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비극적인 삶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이러한 과거의 '현실'을 보여줄 때, 최대한 힘을 빼고 관객들이 이를 지켜보게 만든다. 덤덤한 화면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핸드헬드와 같이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 그리고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어우러진 영화는 무엇보다도 그 당시 아이들이 느꼈을 '감정'에 집중하게 만든다.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보여주면서도 또 하나의 작은 사회를 이루고 있는 고아원에서 자신들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봐야만 했던 아이들의 어두운 일면을 동시에 그려낸다.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 '아이'이기를 포기해야만 했던 아이들이었다. 신체는 아이였지만 그들의 정신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억지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이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 카메라 워킹, 아이들의 연기와 어우러져 아이들에게 값싼 '연민'을 느끼게 하는 대신 그 당시 아이들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는 진희가 공항에서 내려 양부모를 만나기 직전의 얼굴을 정지시켜놓고 그 주변의 소음을 들려주면서 막을 내린다. 이 당시 해외로 나갔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행자'라는 제목은 단순히 아이들이 이 땅을 떠나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에도 다른 나라에서도 아니 이 세상 어디 속에서도 환영받고 정착할 수 없었던 아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