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성품에 대한 자기 이해
[1] 천하태평(天下泰平)
아내가 외박을 했다. 견우직녀의 칠월칠석처럼 한 해를 기다려 집을 나선 외박이었다. 나는 출근하여 보지 못했지만 현관을 나서는 아내의 표정은 소풍 가방을 손에 쥔 아이처럼 맑았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통해, 멀리 아내의 하루가 전해진다. 역시나 맑은, 아내의 얼굴을 보며 나는 안도한다.
그새 나는, 엄마를 찾으며 잠을 보채던 아이를 겨우 재웠다. 나는 가끔, 울음의 음상(音相)이 아빠가 아닌 엄마일 때 서운하고 미안한 기분이 든다. 나도 엄마를 자주 찾는 아이였는데, 문득 아버지의 마음이 나와 같았으려나 싶다. 울음의 음상처럼 울음에 대한 소회도 대물림한다.
혼곤히 잠든 아이를 보면, 나도 곁에서 같이 잠들고 싶어진다. 눈을 뜨면 아내가 귀 바람을 불며 나를 깨우는 상상을 해 본다. 내일은 태풍이 지나간 아침이어서 하늘도 햇살도 맑을 것이다. 엄마를 찾은 아이의 얼굴도 그런 햇살처럼 맑을 테지만, 엄마는 저녁이 되어서야 올 것을 안다. 나는 그렇게 공상하듯 내일을 상상하다가 정말 깜빡 잠이 들고 만다.
숙제가 많은 날이면, 그렇게 상상과 공상 속에서 세월을 허송한다. 깜빡 잠이 든 이유도 그런 까닭이라고 생각한다(오늘은 마감이다). 언젠가 “INPF의 자가 진단”이라는 글에, 나의 단점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었는데, 빠뜨린 게 하나 있었구나 싶다. 아무리 바빠도 언제나 서두르지 않으며 천하태평(天下泰平) 한 나라는 인간.
아주 어린 날부터 나는 조바심을 내거나 서두르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는 지금도, 유치원에서 “천하태평상”을 받아 온 1992년의 가을날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지금에야 그런 성품도 유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은 나의 성격이었다. 서둘지 않지만, 또 내려놓지 않으면, 늦더라도 천천히 어떻게든 흘러가고 당도하는 것이 세월이고 인생이지 않던가.
마감을 앞두고 떠올린 천하태평한 잡상(雜想)의 종착지는 오래전 읽었던 신동엽 시인이 쓴 수필, 「서둘고 싶지 않다」 속 몇 줄의 문장이었다.
[2] 시, 사랑, 혁명 그리고 세월
내 일생을 詩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일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일생을 革命으로 불질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
- 신동엽, 「서둘고 싶지 않다」 중에서
신동엽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참여시인이었는데, 「서둘고 싶지 않다」라는 수필 제목이 무색하게 삶은 짧았다. 그는 마흔을 채 넘기지 못하고 병사(病死) 했는데, 그와 함께 동시대를 대표한 김수영이 사고사(事故死) 한 바로 다음 해(1969년)였다.
생로병사는 사람의 의지 너머에 있는 일이라 서두르듯 세상을 등지고 말았지만, 그는 의지의 영역 안에서 그가 쓴 문장처럼 살다 갔다. 요절한 탓에 다작(多作)을 남기지 못했어도 과작(寡作)을 이유로 그의 성취는 폄하되지 않는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껍데기는 가라」가 있다.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중에서
그는 시로써 인생을 장식했다. 그리고 혁명의 불길에 노래를 보탰다. 삶은 말을 온전히 짊어지고 갈 수 없고 말이 삶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는 김훈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신동엽의 문장은 오래도록 4.19. 혁명의 뜨거움과 함께 기억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한편, 시인의 삶은 사랑으로도 충만했다. 우리가 아는 그의 시 가운데 아내를 향한 연가(戀歌)의 성격을 띠는 것은 없다. 그러나 시인의 문장이 우리에게 전한다는 사실이 그의 삶 속에 충만했던 사랑을 방증한다.
시인의 아내 인병선은 그가 작고한 후, 혼자 2남 1녀를 키우기 위해 고단한 생활을 감당했다. 그리고 죽은 남편의 육필 원고를 모아 유고집을 발간했다. 남편을, 혁명의 뜨거움을 간직한 남편의 시를,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신동엽과 그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부여에 자리한 신동엽 문학관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다.
문학관은 금강과 멀지 않은 곳에 세워졌다. 그는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을 때, 구름처럼 강변으로 가 물길을 내려다보곤 했다고 한다. 그가 시상을 띄우며 바라보던 강물은 지금도 세월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다.
* 삶은 말을 온전히 짊어지고 갈 수 없고 말이 삶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 김훈의 「남한산성」 에필로그에서 인용함
[3] 나도 그렇게
「서둘고 싶지 않다」의 문장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시인은 금강을 둘러싼 넓은 벌판과 먼 산들을 바라보며* 세월 앞에서 잃고 싶지 않은 세 가지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추측건대,
장식해 보겠다는 詩는 시인으로서의 자아가 완성하고 싶은 삶의 모습을,
채워 보겠다는 사랑은 가장과 남편으로서의 자아가 추구했던 삶의 모습을,
불질러 보겠다는 革命은 공인이자 사회인으로서 자아가 갖고 싶었던 세상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신동엽만큼 거룩하지 못해도, 나 역시 그와 닮은 소망과 욕망을 떠올려 본다.
그의 시를 닮은 좋은 문장을,
유고 시집을 닮은 아름다운 사랑을,
혁명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불의(不意)롭지는 않을 떳떳한 인생을,
그런 삶을 향한 걸음을 걸어가고 싶다.
그때의 강물처럼 세월은 흐른다.
마찬가지로 서둘고 싶진 않다.
(2024.8.22.)
※ 대구 글쓰기 모임 '마음씀'에서 '~처럼 ~하기'를 주제로 쓴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