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에 빠졌을 때
[1] 머리말
2주에 한 번 찾아드는 숙제의 시간입니다.
오늘도 ‘창작의 고통’이라든가 하는 푸념을 늘어놓으려다,
생각을 그쳤습니다.
오늘은 아내가 우리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은 하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달의 시간으로 2년 전 오늘, 우리 아이는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제가 쓰는 작은 글에서 비롯하는 모든 것들은
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 놓은 엄마들의 일에 비하면
도무지 아무것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어가 역사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김훈 작가의 말에 언제나 고개를 끄덕이는 편입니다.
아내의 출산을 떠올리며,
‘생일’이라는 단어 역시 언어이기 때문에
[생일]이었던 그날의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은 언어이기 때문에,
[사랑]이었던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글을 기다리는 아내를 위해
사랑이란 이름의 작은 글을
용기를 내어 쓰겠습니다.
[2] 기억의 연작을 거슬러 보다.
추석입니다. 궤도를 돌아 한 달에 한 번, 가위라는 이름으로는 일 년에 한 번, 만월(滿月)이 된 달빛이 고개를 내미는 하루입니다. 저는 지구와 달의 천문현상이 그러하듯이, 무렵마다 기억의 궤도를 돌며 우리 아이가 태어나던 날의 하루를 떠올립니다. 100년 만의 슈퍼문이라며 떠들썩하던 세상의 소란과, 아이의 울음소리가 닿기 전까지 고요했던 분만실 앞 복도의 적막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만큼은 달빛보다도 신비로웠던 우리 아이의 나신(裸身)과, 세상을 내놓은 채 너그러워진 당신의 표정 역시 그렇습니다. 언젠가 시간에 풍화되어 모든 기억이 소멸을 앞둔 날에도, 그날의 기억은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달빛처럼 영롱하게 불을 밝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과의 모든 처음과 모든 마지막이 그러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과의 모든 처음, 당신과의 모든 마지막
그 어느 시점에서건, 발을 들여놓으면 완결을 보지 않을 수 없는 연작물처럼, 저는 당신이라는 기억의 연작을 ‘역주행’ 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갖고 입덧을 시작하며 힘겨워하던 당신, 버진 로드를 지나 영원을 맹서(盟誓) 하던 당신, 프러포즈 편지 앞에 눈시울을 붉히던 당신, 성탄을 앞둔 밤 수줍은 고백을 들으며 저의 손을 덥혀주던 당신, 그리고 ‘사수’라는 이름의 낯선 동네 2층 카페에서 처음으로 마주쳤던 당신을 떠올립니다. 더없이 한적하게 느껴지던 주말의 오후와, 그리하여 더욱 쌀쌀하게 느껴졌던 창밖의 풍경이 생각납니다. 아마도 무렵의 마음이 더없이 쓸쓸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생각입니다.
더없이 쓸쓸했던 겨울. 더없이 쓰라렸던 겨울….
그 쓸쓸함과 쓰라림은 당신과의 모든 처음에 앞선, 어떤 마음의 시원(始原)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누구나 그랬듯, 언젠가의 저도 [이별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잃지 않겠다]며 다짐한 날이 있었습니다. 다짐의 이면에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모한 결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 사실은 [그 누구도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섣부른 확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원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어떤 폐허와도 같은 마음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절망이나 폐허로 끝날 풍경이 아니었으며
누군가를 사랑한 저는,
누군가와의 사랑을 통해,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또 사랑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없이 쓰라렸던 겨울, 그리고 더없이 쓸쓸했던 겨울 끝에, 바로 당신이 그것을 저에게 깨우쳐 준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과 함께, 사수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손을 맞잡고, 눈시울을 붉히며, 버진 로드를 걷고, 미래를 맹서하고, 달빛과 함께 온 아이를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더는 쓰라리거나 쓸쓸하지 않은, 그리고 마음은 겨울이 아닌 계절 속에서요.
제가 사랑했던 모든 누군가들이 어쩔 수 없이 저의 일부라는 것으로 미루어, 당신이 사랑했던 모든 누군가들이 당신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속 사정을 알게 된다면 질투 같은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지만 사랑스러운 당신을 만들어 준 그 모든 사랑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아니었다면 어찌 제가 당신을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었겠어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그 모든 일들의 마지막 자리에 당신이 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당신이 저의 곁에 머무른다는 사실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기억의 연작 끝에 언제나 사수동의 당신을 떠올리는 것처럼, 당신을 향한 모든 전언은 고마움과 사랑함이라는 언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러할 것일 고마움과 사랑함 속에서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추신.
시련의 마음을 지질시대를 마감하는 대멸종의 풍경으로 치환하여 상상해 본 일이 있었습니다.
유장한 세월을 번창해 지배적 존재로 군림한 모든 멸종 생물들이 사라지는 을씨년스러운 풍경, 그리고 이어 등장하는 다음 세대의 생물들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인간의 마음도 그런 지질시대의 변화와 같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미처 언급하지 못한 지나간 사랑과 멸종 생물의 가장 닮은 점은, 그 둘 모두 오늘은 힘을 잃은 ‘한때의 무엇’이라는 점입니다.
- 2024.9. 남편 정호 씀
[3] 맺음말: 彩, 源*
늙어서는 당신을 닮은 나무를 기르고 싶다.
나는 황구(黃狗)처럼 당신의 이름을 짖고,
나무 밑동에 앉았는 당신을 쓰다듬으리.
내가 짖는 당신의 이름이 당신과 퍽 어울려 좋다.
가을빛을 머금고 같은 빛으로 익어가는 빨간 홍시처럼
당신의 이름도 당신 빛을 머금고 당신인 채(彩)로 익어 가므로 좋다.
‘彩’, ‘源’이라고 획을 긋고
[채], [원]이라고 소리 내 본다.
입안 한가득 알사탕을 굴리듯이
당신 이름자의 음절들을 가득 머금고
다시 한번 彩, 源, 채, 원
한 획, 한 획, 한 음, 한 음 음미(吟味) 해 본다.
당신처럼 지어진 이름과
이름처럼 빚어진 당신이 참 좋다.
*彩, 源: 한자말의 뜻과 소리는 ‘채색 채’와 ‘근원 원’이다. ‘채원’은 아내의 이름이며, 그것을 주제 삼은 어설픈 시문의 제목이기도 하다.
(2021.9.9.)
※ 대구 글쓰기 모임 '마음씀'에서 '내가 사랑할 때'를 주제로 쓴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