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신년 다짐
[1] 하나부터 열까지
1. (건강, 양적 행동) 속력에 구애받지 않으며, 1000km를 달린다.
2. (건강, 양적 행동) 매월 10회 이상 헬스장에서 운동한다.
3. (건강, 수행 능력) 한 시간에 10km를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갖는다. 가능하면 하프 마라톤에 도전한다.
4. (건강, 질적 수준) 2024년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있었던 항목들을 정상화한다.
5. (직업, 자기 계발) 1-2학년 담임이 된다면, 수업 대회에 참가한다.
5-1. (직업, 자기 계발) 3학년 담임이 된다면, 모의고사 출제 연구회에 참가한다.
6. (직업, 자기 계발) 1-2학년 담임이 된다면, 학급 문집과 동아리 문집을 발간한다.
6-1. (직업, 자기 계발) 3학년 담임이 된다면, 진학 지도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7. (생활, 양적 행동) 하루 평균 7시간 이상 수면한다.
8. (가족, 양적 행동) 아내와 딸에게 매일 3번 이상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한다.
9. (취미, 양적 행동) 매월 2000자가 넘는 분량의 글을, 두 편 이상 쓴다. 그러기 위해 ‘씀 에세이(혹은 마음씀)’에 개근한다.
10. (취미, 희망사항) 내 글을 모은 블로그를 열고, 브런치 작가가 된다.
- 2025년 1월, 마음씀에서
[2] 연말 잇기
신정과 구정의 사이,
한 해의 시간과 또 한 해의 시간이 이어진다.
나는 다시 마감의 과제를 미루고,
마감의 과제로 적었던 올 한 해의 다짐을 소리내어 읽는다.
내가 적어내린 과업은
올해만의 것은 아니었고
마감을 하지 못한 문장들처럼
차곡차곡 미루고 유예해 온 것이었다.
나는 그 많은 일들을 미루어왔다는 사실보다
미룸의 까닭이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비롯하였음이
더더욱 뼈 아프게 다가온다.
소리내어 읽은 문장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이어쓰는 릴레이 소설이거나
음상은 같지만 의미상은 같지 않은 끝말잇기를 닮은 듯한
언어의 유희 같다.
나는 말장난 같은 다짐을 다시 읽으며
올해의 다짐이 내년에는 진화하여 있기를
진화하는 다짐처럼 나의 모습도 달라져 있기를
소망해 본다
[3] 두근두근 이십오
이번 겨울의 화두는 러닝이다. [갑자기 왜죠]라고 아내와 친구가 묻곤 했는데 정확한 동기를 아직도 찾을 수 없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라는 몸의 외침을 들은 듯도 싶지만, 느닷없이 찾아드는 인생의 여느 변곡점들처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때로는 논리적인 추론이나 합리적인 논증보다는 [어쩌다 보니]식의 어설픈 직관이 더 타당한 해석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오늘도 천변(川邊)으로 나가 몸을 풀고 신발끈을 묶는다. 그리고 나는 뛴다.
[스플릿 1. 1.00KM 6’47”]
존2 영역에서 달리세요. 유튜버들의 공통된 지적은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여 햅틱이 울릴 때마다 속도를 늦춘다. 심박수가 오르지 않게 차분히 발을 구르다 보면 천변을 매운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행태는 그들의 삶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굴광성 식물처럼 느긋하게 양지를 따라 산책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경주마처럼 가쁜 숨으로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보법(步法)과 주법(走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나는 그들의 중간 쯤 되는 속력으로 천천히 뛴다. 그리고 드륵,
[스플릿 2. 1.00KM 6’39”]
다시 한 번 햅틱이 울린다. 나의 체력으로는 기분 좋게 달릴 수 있는 거리가 7KM 남짓인데 2KM를 넘어가는 구간이 가장 힘들다. 그 언저리를 지날 때마다 숨은 가빠오고 체력은 떨어지는데 갈 길이 멀어 다리에 힘이 풀리곤 한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면 조금씩 낫다. 나는 그 소박한 고비를 넘기며 문득, 나의 글쓰기나 나의 노동도 무렵의 구간이 가장 고통스럽지 않은가 한다. 첫 문단에서 둘째 문단을 넘어가는 행간에서, 개학을 넘어 중간고사로 다가가는 학사 일정에서 쓰던 글을 그치고 하던 일을 내려놓고 싶어진다. 그리고
연초의 권태와 무력감도 같은 결의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새해 다짐으로부터 며칠이 지난 시점의 마음이, 숨은 가빠오고 벌써부터 의욕이 떨어지는데 갈 길은 멀고 아득한 시간의 막막함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러닝에서 가장 힘든 구간을 넘기고 나면 다시금 숨을 고르고 발을 힘차게 굴릴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스플릿, 스플릿, 스플릿]
스플릿을 이어 간다. 다시금 산책하는 이들과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의 풍경들을 눈에 담는다. 그 풍경에 힘입어 힘차게 발을 구른다. 그러다 보면 도착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그렇게 완주하는 일이 보람된다. 새해 다짐으로 그려가는 한 해도 마찬가지다. 의욕과 권태, 다짐과 다그침을 오가는 과정이 고달프지만 마음의 주로를 완주할 때다 조금씩 나은 인간이 되어간다. 삶이란 그런 식으로 고유한 보법과 주법을 단련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불비한 글을 쓰다 새벽이 깊었다. 나의 필법(筆法)은 아직 조악하여 스플릿처럼 이어간 전문(全文)의 의미가 모호하고 깊지 않다. 그렇다 하여도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마치 내일도 신발끈을 묶고 심폐지구력이 허락하는 시간과 거리만큼 발을 구를 것처럼.
두근두근 이십오년을 살아갈 것처럼.
(2025.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