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은 인생
[3분 30초, 29초, 28초…]
판서를 마치고 타이머를 본다. 아이들이 문제를 다 풀기까지 3분 남짓의 시간이 남아 있다. 묵묵히 문제를 푸는 아이들을 보며 언젠가의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 모습이 오늘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20년 전이나 오늘이나, 학생에서 선생으로 직(職)은 바뀌었지만 문제를 푼는 업(業)은 달라지지 않았다. 납득을 넘어선 설득의 의무가 더해진 것이 변화라면 변화겠지만, 나의 삶은 문제라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납득의 경력은 20년이오 설득의 경력은 10년인지라, 이제는 익숙하고 숙련된 일인데 나는 그 숙련이 권태처럼 느껴져 마음이 편치 않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는 문제를 풀수록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앓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선생님, 눈 와요. (그러니까) 수업하지 마요.
3분이 채 지나기 전에 한 녀석이 소리친다. 3월이 지나기 전 때아닌 폭설과 3분이 지나기 전 때아닌 외침 중, 어느 것이 더 때아니고 느닷없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눈과 외침의 관계가 인과가 아닌 구실로 엮인다는 것은 뚜렷이 안다. 나는 엉성한 구실로 엮은 학생의 바람을 못 이긴 척 들어 준다. ‘눈’이라는 글자를 판서하고 동그라미를 친다. '이를테면, 이것은 회상의 매개체야'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설 수업에서 삼천포로 빠진 이야기를 아이들은 열심히 들어준다. 그것은 수업을 외면하고픈 교사와 학생의 묘한 타협이다.
3월에 눈 내리는 풍경이 느닷없지 않던 시절을 나는 떠올린다. 기후 위기나 그런 까닭이 아니라, 3월까지는 늘 일상적으로 눈을 볼 수 있었다. 지구적(地球的)으로 본다면 대단하지 않은 위도와 고도 차이겠지만 그곳은 그랬다. 춥고, 배가 고팠고, 여름은 무척이나 짧았으며, 하여튼 눈이 지겹도록 많이 내리는 곳이었다. 내가 처음 그곳에 발 딛는 날에도 어김없이 눈이 내렸다. 지휘 실습* 차 부대를 방문했던 4월 중순이었다.
얘들아, 눈 온다.
눈발에도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고 묵묵히 일과를 이어가던 병사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나를 수행하던 병사 하나가 4월 말까지는 드문드문 이러기도 해요.라고 대꾸해 준다. 4월에 내린 눈은 쓸어야 할 일이 없어서 관심이 없는 거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그렇구나. 나는 수긍한다. 수긍을 체화(體化) 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2년 동안 쌓이던 수많은 설(雪)과 설(說)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그날의 설과 설에 힘입어, 대단한 곳에 내놓을 만한 소설은 쓰지 못해도 아이들의 잠을 깨우는 잡설(雜說) 정도는 펼치곤 한다. 군 생활이 가져다주는 뜻밖의 효용이다.
이제는 나조차도 참과 거짓을 구분 못하는 군대 썰을 풀어 놓으며, 나는 잠시나마 아련하고 행복해진다. ‘모든 과거는 아름답다’ 더라며 퍽 낭만적인 다이어리를 써 놓았던 과 선배의 싸이월드 게시물도 생각난다. 그리고 눈이 그친다. 그러니까 수업하자고 나는 초를 친다. ‘눈’에 동그라미 친 판서를 지우며, ‘이것은 액자식 구성이야'라고 이야기한다. 현실로 돌아온 묵묵한 교실도, 언젠가 무엇에 매개되어 행복한 시절로 떠올려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도 나도,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시린 봄을 그렇게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봄이지만 가끔 이렇게, 느닷없이 눈이 내리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휘 실습: 교육기관 수료 전 복무할 부대에서 임무를 익히는 군인들의 교육 과정
(2025.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