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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그루 Aug 19. 2023

올드 잉글리쉬 쉽독 순향씨 작업기 <4>

순향씨를 처음 쓰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나는 주민센터에서 공익 근무를 했다. 이때는 내가 그 여자애와 접점이 있을 때라 잘 보이기 위해 6시에 퇴근 후에 항상 운동을 했었다. 그리고 이땐 음악으로 '성공'을 해보고 싶어서, 스냅백 쓴 작곡가 아저씨들의 레슨을 받거나 유튜브를 봤던 적이 있다. (이것도 뒤에 이어진다) 한 3주 배우고 너무 사짜 느낌이 강해서 그만뒀었다. 믹스 레슨도 이때 처음 받아봤는데, 레슨 중에 유튜브 보고 계시길래 그만 뒀었다.



진짜 왼쪽처럼 생기심


아무튼 이때 나는 요즘 나오는 자기계발서 마냥 '음악 성공 법칙'에 집착해, 매일 퇴근하고 곡을 1개씩 썼었다. 완성이 되든 말든 말이다. 아 그리고 이때 나는 '송그루'로 포크아티스트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한달에 네번을 공연해봤지만 정말 대차게 실패했다.  노래를 못 불러서, 짱짱한 싱어송라이터들에게 묻히기 일쑤였다. 그래서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밴드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근데 한번도 밴드곡을 제대로 써보지 못해서 이때 경로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거기에 맞는 곡들을 써내기 시작했다.



의도를 가지지 않고 손 가는 대로 썼을 때는 마블발 느낌의 슈게이징, 인디 모던 락 등이 나왔는데, 뭔가 맛깔난게 없었다. 대충 포크라노스 키거나 미러볼 뮤직 들어가면 하루에도 세 네개씩 나올 것 같은 곡들만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가 2020년 7월 쯤인데, 이 시기엔 여러가지 개인적 일도 있었다. 송그루 음원의 처참한 실패와 더불어 그 여자애가 찍어주기로 한 뮤비 촬영 도중 내가 그 여자애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며 뮤비가 파토되는 등 이것저것 포기하고 싶었다. 창작의 슬럼프도 오고, 찌질한 내 인생도 나아지는게 없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혼자 술만 마시던 한 달이 지나고 2020년 8월쯤이었나, 그때 우리 동네엔 클래식 음악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랑은 굉장히 가까웠었는데, 이 친구가 굉장히 나를 스트레스 받게 했던 친구 중 하나였다. 전 글에서 언급했듯 우리 동아리에서 '음악 지식'으로 나를 깔보던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 친구도 그 중 한명이었다. 


무엇보다 그 친구는 비건에... 페미니스트였다... (남자였다) 본인은 나중에 아니라고 회피하긴 했지만 굉장히 나에게 비건 권유를 많이 했었는데 이게 정말 스트레스였었다. 아무튼 당시에 지금은 멀어진 이 친구와 멀어지는게 내 인생의 가장 제 1순위 목표였던 것 같다. 이때 순향씨의 첫 가사가 나왔는데 '당신은 고집으로 나를 갉아 먹지 않을거야'가 첫 줄이었다. 

그래도 사람 사이라는게 입체적이라 술도 자주 마시곤 했었는데, 하루는 시흥에 있는 음악하는 형 집에가서 술을 마셨다. 이 형께선 나를 잘 챙겨주시긴 했지만 아마 음악적으로는 그렇게 나를 응원하진 않았었다. 아무튼 술도 들어갔겠다. 재즈 화성학과 그루브에 위계를 높게 두던 우리 동아리 분위기에 좆같음을 느낀 나는 조휴일의 블로그 글을 떠올리며 술에 거나하게 취한채로 기타를 잡고 아무 코드나 잡고 펑크 리듬을 치며 노래를 흥얼 거렸다.

재즈 화성에 관한 조휴일의 블로그 글

'어? 근데 이거 꽤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용기였는지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녹음을 키고 멜로디를 흥얼 거리고 집으로 가져갔다. 이땐 정말 우리 동아리 내에 '재즈 화성학 카르텔'에게 분노가 대차게 차있었을 때라, 그루브도 없고 리프도 제일 간단한 음인 '도레미'로 썼다. 이 씨발놈들아. 내가 이걸로도 좋은 거 한번 써볼테니까 니들 그 잘난 귀로 한번 들어보지 그래? 라는 마인드로 썼다. 그렇게 하루 밤을 지새워 순향씨 데모가 나왔다. 가사는 위에서 말한 비건페미 친구를 떠올리며, 그 여자애를 떠올리며, 그리고 건너편 카페에서 일하는 내 재수학원 친구를 떠올리며 생각나는 대로 휘갈겼다. 아마 '요리하고 책읽는 조신한 남자' 이 부분이 발매가 되면 구설수에 오를 것 같긴한데, 원래 가사는 '요리하고 책읽는 멋있는 남자'였다. 너무 병신 같아서 최대한 재밌는 단어가 뭘까하다가 골랐다. 아무튼 순향씨는 그루브고 뭐고... 당시에 내가 좋다고 생각한건 다 때려박아서 썼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알았다. 성공법칙 따윈 없고 이게 올바른 작곡법이었다는 걸.


썸네일은 내가 정말 재밌게 본 클로저의 앨리스로 골랐다. 진저가 가지고 있는 언더독 분위기도 좋다고 해야되나.. 이게 앨범아트까지 이어졌다. 아무튼 이때 조휴일 블로그를 많이 읽으면서 <201>도 엄청 많이 듣고, 신해경도 엄청 듣고, 스트록스 등등도 많이 들었었는데 그런게 종합적으로 곡에 묻지 않았나 싶다. 


한 번 나중에 발매된 거랑 비교해서 들어보쇼.


https://soundcloud.com/songrew/soonhyan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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