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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그루 Aug 19. 2023

올드 잉글리쉬 쉽독 순향씨 작업기 <6>

순향씨 V1~V2

첫 합주 때 주성이가 기타를 내리치며 '이딴 인트로 리프 치려고 기타 시작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하긴 누가 실음과 까지 나와서 도레미 치고 싶겠냐... 그리고 내 열등감 때문인지 몰라도 내가 느낀 당시의 밴드 분위기는 '저 음악도 못 배운 놈이 쓴 음악을 내가 고쳐줘야겠다'가 강했다.


그래도 박새로이 빙의해 참아보기로 결심했다. 근거는 없었는데 밴드가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수를 접고 일단은 이 밴드가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참았다. 편곡 주도권도 아예 넘겨주었다.


근데 진짜 이제는 사이도 좋아지고 다들 합의점을 잘 찾아서 말할 수 있지만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편곡이었다... 아마 그때 펑크락 곡인데... 재즈리듬 들어가고.... 근데 인트로 기타 리프는 블루스 리프고... 그랬을 거다. 진짜 흑당마라민초곱창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젠 들을 수 없다.

그래도 함께 한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어가려 했으나, 나의 오랜 지병인 허리디스크가 터져버려 수술을 하게 된다. 이때가 2020년 12월이다. 이때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아마 인생 TOP3 고난 중 하나 아니었을까... 수술대에 오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쪼끔 울었던 것 같다. 밴드는 심지어 사회적 거리 두기의 강화로 결성과 동시에 6개월 휴지기에 들어가게 된다.

송그루는 오렌지병으로 쓰러졌다.


힘들어 보이기만 했던 이 시기도 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공익기간 심심할 때 보았던 만화나 영화, 책들은 부족한 미감을 기르는 데에 도움이 되었고, 재활 기간 들었던 앨범들 또한 좋은 씨앗들이 되었다.

재활기간에 자주 들었던 비스티 보이즈와 RATM.... 왜 그땐 이런 분노에 찬 음악만 들었을까? (답은 나와있다)

시간이 흘러 재활 끝에 나는 동선동에서 보문동으로 이사를 온다. 그리고 2021년 6월, 올잉쉽이 다시 모이고 주성이에게 말한다. '주성아 기타 인트로는 도레미로만 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렇게 순향씨 V2가 나왔다.

SHS M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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