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향씨 V1~V2
첫 합주 때 주성이가 기타를 내리치며 '이딴 인트로 리프 치려고 기타 시작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하긴 누가 실음과 까지 나와서 도레미 치고 싶겠냐... 그리고 내 열등감 때문인지 몰라도 내가 느낀 당시의 밴드 분위기는 '저 음악도 못 배운 놈이 쓴 음악을 내가 고쳐줘야겠다'가 강했다.
그래도 박새로이 빙의해 참아보기로 결심했다. 근거는 없었는데 밴드가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수를 접고 일단은 이 밴드가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참았다. 편곡 주도권도 아예 넘겨주었다.
근데 진짜 이제는 사이도 좋아지고 다들 합의점을 잘 찾아서 말할 수 있지만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편곡이었다... 아마 그때 펑크락 곡인데... 재즈리듬 들어가고.... 근데 인트로 기타 리프는 블루스 리프고... 그랬을 거다. 진짜 흑당마라민초곱창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젠 들을 수 없다.
그래도 함께 한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어가려 했으나, 나의 오랜 지병인 허리디스크가 터져버려 수술을 하게 된다. 이때가 2020년 12월이다. 이때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아마 인생 TOP3 고난 중 하나 아니었을까... 수술대에 오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쪼끔 울었던 것 같다. 밴드는 심지어 사회적 거리 두기의 강화로 결성과 동시에 6개월 휴지기에 들어가게 된다.
힘들어 보이기만 했던 이 시기도 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공익기간 심심할 때 보았던 만화나 영화, 책들은 부족한 미감을 기르는 데에 도움이 되었고, 재활 기간 들었던 앨범들 또한 좋은 씨앗들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재활 끝에 나는 동선동에서 보문동으로 이사를 온다. 그리고 2021년 6월, 올잉쉽이 다시 모이고 주성이에게 말한다. '주성아 기타 인트로는 도레미로만 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렇게 순향씨 V2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