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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그루 Aug 20. 2023

올드 잉글리쉬 쉽독 순향씨 작업기 <8>

내부 불화

초창기 성민이는 열정이 엄청났다. 들어온 지 2주 만에 곡을 완벽히 카피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기존까지 시큰둥했던 멤버들의 태도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가 들어온 지 한 달 만에 순향씨/FLEE! 더블 싱글 작업에 들어간다. 이때가 2022년도 10월쯤이다. 아직까지 순향씨 데모의 느낌과는 많이 멀었던 버전이다.


이때쯤 성민이에 대한 나의 감상은, '메이저'와 '프로'에 대한 환상이 엄청났다는 것이다. 성민이는 음악에 성공법칙이 있다고 믿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안 그런데, 당시에는 밴드의 방향과 맞지 않는 판단과 발언을 이어가서 스트레스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마치 밴드의 성공법칙이 있다고 믿듯이. 왜냐하면 원주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도 방향성에 대한 큰 이해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찐따 같은 성격상 확실히 말하는 걸 회피했던 것도 한 몫했다.


아무튼 1차 녹음이 끝나고 믹스까지 어느 정도 갔는데, 진짜 아직도 순향씨를 듣기만 하면 내 마음속의 분노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들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성민이가 들어오고 밴드 분위기도 요즘 바뀌었겠다.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얘들아 순향씨 갈아엎어야 할 것 같아. 이건 올잉쉽 색이 아니야


신촌 맥도날드였다. 아무튼 당시에 반응이 굉장히 안 좋았었는데, 애들이 반응이 안 좋은 것조차 사실은 외로움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욕만 안 먹었을 뿐이지 굉장히 싸늘했었으니까. 지금은 반성하지만 속으로 이 생각을 했다.

아니 얘네는 진짜 지금 음악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나?
왜 이런 판단을 못하는 거지? (진짜 친구들은 몰랐다)

그래도 지운이가 "민규 네가 이렇게 엎자고 할 애가 아닌데, 말하는 데엔 이유가 있겠지. 한번 믿어보자"라고 중재해 줘서 순향 씨는 다시 리뉴얼을 시작한다. 점점 더 뒤로 미뤄지긴 했지만, 점점 싸클 데모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여하튼 Flee 발매에 열정을 쏟던 와중 믹스가 뭔가 자꾸 이상하게 흘러가서 뭔 일인가 하고 윤서에게 물어보니까 성민이와 따로 연락을 하고 있었더라. 아마 그때의 성민이에게는 밴드를 메이저로 올리고 싶다는 사명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엔 불화의 씨앗이었다.


이렇게 불화의 씨앗을 안고 있던 채로 Flee는 어중간하게 완성됐다. 2023년 1월 3일이 왔다. Flee의 발매와 함께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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