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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그루 Dec 20. 2022

Achime의 1집 <Hunch> 리뷰

다시 돌아오지 않는 20대 초반의 감수성

(1) 누구나 살면서 선택하지 않았다면 심장이 떨릴만큼 아찔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중3 겨울방학 우연히 들어간 더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는 낡은 블로그를 발견한 것이 그 순간이다. 당시 버스커버스커 말고는 우리나라에 밴드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 블로그는 검정치마, 언니네 이발관, 3호선 버터플라이 등을 알려주었고 그때부터 나는 좋게 얘기하면 음악 매니아 나쁘게 얘기하면 홍대인디충이 되어버렸다. 한 소년의 취향과 감수성과 삶의 방향이 송두리째 바뀐 순간이었던 것이다.


(2) 감수성이 풍부했던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음악을 듣는 것은 나에게 가슴 벅차는 일이었다. 검정치마 1집을 들으며 괜히 외국의 한 클럽에서 멋진 사람들과 술을 먹는 망상도 해보고, 언니네 이발관을 들으며 내가 겪어보지 못한 90년대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행복했던 건 이런 좋은 음악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과 야자시간에 선생님들 몰래 감상평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다.


(3) 17년도가 되고 서울에 올라와 밴드부에 들어오고, 친구들에게 미친듯이 음악을 소개받기 시작했다. 늦게서야 해외의 전설적인 밴드들을 듣기 시작했다. 또한 이때는 황소윤이라는 인디 역사상 손에 꼽을 천재의 등장, 검정치마 3집 발매, 혁오의 음원차트 1등, 언니네 이발관과 3호선버터플라이의 해체 등 굵직한 일들이 많아서 더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때 들었던 음악들은 친구들과 밤을 새며 술을 마시고 동아리 방에서 자신들의 취향을 맘껏 뽐내던 날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신감에 자기가 쓴 곡들을 불러보는 시기들의 책갈피가 되어주었다.


(4) 1년동안 는 거라곤 술배와 들은 음악밖에 없는 나는 이상한 바람이 불어서인지 18년도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옷은 일부러 빈티지 샵의 옷만 입고 듣기 싫은 소닉 유스의 음악을 억지로 귀에 욱여넣었던 적도 있다. 부끄럽지만 누가 어떤 밴드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괜히 얕보이기 싫어 비틀즈라고 대답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는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라 그런지 음악을 듣는게 거의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5) 시간이 흘러 20년도로 와 코로나 시기가 되고, 나는 그토록 꿈꾸던 홍대에서 혼자 공연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음악을 들어도 가슴 벅차지 않고 분석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들리는 것은 예전보다 많아졌지만 그것들이 오히려 진심어린 감상을 방해하고 있었다.


(6) 또 시간이 흘러 21년도가 되고 온전하진 않지만 나의 어릴 때의 못난 모습이나 결핍 등이 내면에서 점차 사라져 갈 즈음 파란노을이라는 아티스트가 나타난다. 나보다 어린 세대들이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이전시기의 낭만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거의 망가진 감정 수용 기관들을 조금 움직이게 해주는 앨범이었다. 그러나 어릴 때처럼 나의 가슴을 크게 뛰게 해주진 못했다.


(7) 이제는 나도 내가 꿈꾸는 뮤지션들처럼 홍대 지하 공연장에서 귀가 터지도록 목이 찢어지도록 공연을 하고 있지만, 꿈꾸던 낭만은 원래부터 없던 것이었는지 혹은 단지 액자 속에 있어서 화려해보였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쫓아갈 수 없던 무지개였는지 내가 기대했던 생각보다 가슴을 뛰게 하진 않았다. 물론 즐겁고 신나는 것은 맞지만, 어린 시절 메이플스토리를 하러 집에 향하던 만큼의 설렘은 느껴지지 않았다.


(8) 그러다 얼마전 친구의 추천으로 achime이라는 밴드를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그랬지만 집에서 가사를 키며 음악을 들어보니 오랜만에 그 설렘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는 나보다 전세대 형들의 20대 초반을 보여주는 듯 했다. 혐오스러운 브이넥 티셔츠에 스키니진을 입고 검정 뿔테를 쓴 더벅머리의 촌스러운 사람들이 차를 이끌고 바다를 향하는 순수함과 설렘이 느껴졌다.


(9) 형들의 차를 얻어타서 노을진 성북동 길에 올라 낙원 상가를 향하던, 무작정 바다로 향하자고 말하면 같이 따라와주던 친구들이 있던, 실존주의적인 생각에 괜히 광화문 거리를 기웃거리던, 아직은 느껴본 감정보다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더 많았던 그 시절은 이젠 없지만 해상도가 온전하진 못하더라도 나 대신 그때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이 앨범에 무수한 감사를 표한다. 냉정하게 멜로디가 그렇게 좋진 않지만 가사와 곡 구성과 앨범 구성을 음미하며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20대가 절반 조금 남은 어느 하루 한문과 문화 시험공부하기 싫어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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