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그루 Apr 08. 2024

올드 잉글리쉬 쉽독 정규 1집 작업기 (0)

서론 : 왜 만들었는가?

1. [파란노을]

때는 2022년 3월 경호랑 준서님과 함께 미아사거리에 위치한 애슐리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시간이었다.


평소 셋이 서로 디깅한 것들을 나누곤 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히는 내가 이 둘의 고혈을 빼앗아먹는 것에 가까웠다)


경호가 먼저 화두를 꺼낸다.


"형 요즘 파란노을이란 사람이 해외에서 엄청 유명하대. 한번 들어봐"


"파란노을? 뭐 하는 사람인데?"


"슈게이징인데, 이 사람 집에서 혼자 다 만들었대. 지금 RYM에서 반응이 엄청 좋아"


그렇게 집에 돌아가는 길에 파란노을을 들었다. 처음은 그의 보컬에 큰 진입장벽을 느꼈지만, 평소에도 워낙 괴상한 것을 즐겨 들어서 금방 적응했다. 보컬도 보컬이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의 음악을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징히 느낄 수 있었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배경에서 오는 모순적인 절망이 담겨있었다. 매일같이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생긴 마음속 깊숙한 생각.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이 생각이 1집 제작 과정을 버티게 해 준 큰 기둥이었다.


2. [권준호]

슬램덩크에는 권준호라는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성실하지만 북산고 주전 5인에 비해 특출 난 재능은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서태웅에게 포워드 자리를 내어준다.


20대를 지나오며 내가 느낀 점은 난 음악에 재능이 없다. 그나마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남들보다 성실한 편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그동안 다른 업무를 병행하며 음악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었다.


반면 20대를 내내 함께 해온 경호는 달랐다. 경호는 20살 때부터 남달랐다. 인격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이미 완성된 인물이었다. 경호에겐 한 번도 말하지 못했지만, 경호는 내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항상 나는 경호의 그늘 뒤에 서있었다. 내가 이상한 음악 경연 대회에서 전전긍긍할 때 경호는 이미 이능룡 씨에게 음악을 배우며 협업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겉으로는 내가 '대중적'인 음악을 한다고 자위하고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제대로 된 예술을 못한다는 것을...


경호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옆에서 경호를 지켜봐 온 관찰자로서 [전파납치]의 성공은 당연한 것이었다.


반면 우리 밴드, 정확히 내 음악은 계속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대중적인 음악도 아니고, 창의적인 음악도 아니었다. 나조차 정립이 안되니, 밴드도 정립이 안되고 있었다.


나는 그저 경호라는 서태웅의 뒤에서 성실함만 지키고 있는 권준호 같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3. [스트록스와 타란티노]

올드 잉글리쉬 쉽독은 단순하고 슴슴하다. 이것은 내 삶과 연결되어 있는데, 나는 선천적으로 양손의 몇몇 손가락이 남들보다 한 마디씩 적은 '단지증'을 갖고 태어났다. 그래서 연주의 폭이 굉장히 제한적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파워코드 연주랑 오픈코드 연주밖에 없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나는 재즈나 알앤비, 연주 음악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괜히 그런 것에 흥미를 갖게 되면, 부정적인 감정만 더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슴슴한 것을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한테 이것은 부끄러움으로 작용했다. 그러다 루비레코드에 속해있던 시절, 담당해 주셨던 PD님이 우리를 왜 뽑았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찌질한 스트록스 같아서요"


난 내가 한 번도 스트록스 같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나니 드디어 우리 방향이 잡히는 것 같았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국 내가 자연스럽게 쓰는 음악이 그런 음악인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때부터 '잘하려고 하지 말고, 되는 걸 잘 하자'는 마인드가 생기기 시작했다. 열등감의 그늘이 조금씩 걷히는 순간이었다.


'되는 걸 하자'는 마인드를 키우는 데에는 타란티노의 영화도 크게 작용했다. <저수지의 개들> 촬영 당시 예산 부족의 문제로 은행을 터는 장면을 어쩔 수 없이 생략했다고 한다. 이때 없는 예산에 촬영을 더 하려는 게 아니라, 이 제한된 환경을 인정하고 창의적인 접근으로 이를 해소하고자 했다. 비선형적 구조나, 대화로 이야기를 묘사하는 연출이 그러하다. 그래서 이때부터 우리 음악은 연주가 화려하지 않더라도, 구조적으로 이를 해소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4. [시작]

이렇게 23년 7월부터 음악색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방향이 생겼기에, 이때부터 우리 음악을 강화할 수 있는 많은 인풋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팀은 편곡부터 시작해 마인드 세팅까지 대대적인 개편에 들어간다. 그 과도기에 있던 음악이 <순향씨>이다. 어수룩하더라도 처음으로 남이 아닌 우리에게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순향씨>의 성적은 투자대비 굉장히 저조했다. '슴슴한 음악‘만으로는 아직 대중적 공감을 얻기 어려울뿐더러, 우리 내부의 서사도 부족했기에 마니아층을 공략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대중적인 성향을 아예 버리고자 했다. (그렇다곤 해도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기질이 있어 어느 정도는 듣기 편할 것이다.) 급진적인 개혁이 있어야 어느 정도 중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상한 데모들을 마구 쓰기로 했다. 23년 7월 둘째 주 7일 동안 5곡을 썼는데, 이 곡들이 어떻게 보면 정규 앨범의 초석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정규를 만들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EP에서 밴드 초기의 대중적인 곡들을 선보이고자 했다.

나는 사실 정규를 만드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난 한 번도 내게 솔직한 음악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내 진짜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를 회피하고자, 그리고 도망치고자 대충 'EP'나 만들면서 커리어를 애매하게 이어가고 다음 기회를 노리고 싶었다.


멤버들에게는 이를 숨기면서 나름의 논리로 그들을 설득하고 EP 제작에 들어갔다. 급히 광흥창에 작업실을 잡고 녹음에 착수했다. 또 나는 겁쟁이처럼 정체성도, 창의성도 없는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의욕도 없었고, 내 시선은 어느덧 취업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공진과 단둘이 기타 녹음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나 진지하게 할 말 있어" 공진이 말했다.


"EP 만드는 거 정말 아닌 거 같아. 우리 정규 앨범 만들자. 너 7월에 썼던 데모들 나 정말 좋게 들었어. 곡들 간 유기성이랑 서사도 좋고. 지금 너 이거 취업으로 도망치려고 EP 만드려고 하는 거 아니야?"


정곡을 찔렸다. 그의 말에 설득당해 정규로 급히 전환하게 됐다. 공진과 멤버들에게 너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집 앞에 서서 담배를 한 갑을 태웠다. 그러면서 1집의 틀이 보이기 시작했다. 1집을 관통하는 가장 큰 단어는 '패배'다. 이것을 정하니 표류하던 생각들이 하나둘씩 앙금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날 느꼈던 부끄러운 감정, 1집의 추상적인 느낌이 합쳐지며 집에서 하루 만에 2번 트랙을 완성했다. 이것이 정규 1집의 첫 시작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