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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그루 Apr 10. 2024

(1) 10번 트랙

퍼니게임을 중심으로

1. 창작 배경

처음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곡은 10번 트랙이다.


때는 2023년 1월이다. 이태원의 펫사운즈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같이 술을 마시는 와중에,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폐암이란다. 꽤 진행이 되었으니 마음의 준비를 어느정도는 해야할 것 같다.”는 말이었다.


암이라는 병이 미디어에선 클리셰로 노출이 되고 있어 전달의 강도가 굉장히 희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가까운 지인들의 부모님이 암에 걸리셨다고 하면 그 고통의 척도를 쉬이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당사자가 되어보니, 그때의 절망과 삶의 이물감은 이루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와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지금은 관계가 많이 회복되어 화목하게 지내고 있지만, 어린 시절은 꽤 나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욱 더 복잡하게 다가왔다.


아버지의 죽음은 나의 노력으로서도 막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 더욱 괴로웠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은 우리의 노력으로 해소할 수 있는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 위기는 나의 어떠한 물리적 노력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기도 같은 짓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첫 정규직 입사와 첫 기획사 생활이 겹쳐지며, 육체적인 체력과 정신적인 체력은 동시에 고갈되고 있었다.

회사에서 예상치 못한 야근에 밤 10시에 퇴근하자마자, 기획사 촬영에 급히 달려가 죄송하다는 사과를 연거푸 뱉었던 적도 있다.


힘든 것을 주로 지인들에게 나누는 것보단, 글로써 해소하는 편이었는데 이때는 글로써 해소할 수도 없었다.

글이라는 것은 결국 생각의 정리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글을 쓰는 것이 마치 엎어진 커피자국을 감춰둔 이불을 들춰내는 것보다 불쾌한 작업이었다.


이런 와중 하루는 술을 거나하게 마셔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른채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충격적이게도 신발을 벗지 않고 잠을 잤던 것이다. 이때 내가 완전히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놈들 ㅋㅋ

다행히도 아버지는 수술에 성공하시고, 건강을 회복하셨다. 하지만 이때의 절망감은 [그래비티]의 주인공처럼 내게 우주적인 고립을 느끼게 했었다.

10번 트랙은 당시 내 생각을 함축한 곡이다.

돌아오지 못한 우주 강아지 라이카

2. 도움이 됐던 작품_퍼니게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퍼니게임]이 이 곡의 아이디어에 가장 큰 영감을 주었다.

미카엘 하네케는 폭력에 대해서 다루는 감독이다. [퍼니게임]은 폭력의 가장 잔혹한 측면에 집중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퍼니게임]을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혹은 보실 예정이라면 이 파트는 생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퍼니게임]의 줄거리를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갑자기 침입한 두 괴한으로 인해 일가족이 몰락하는 내용이다.

이 괴한의 폭력의 강도는 점차적으로 강해진다. 처음에는 불쾌한 욕설을 뱉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하며 부러뜨린 다리에 일부러 충격을 가해 추가적인 고통을 선사한다.


관객은 영화를 감상하면 감상할 수록 불쾌감을 느끼며 괴한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원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 후반에 다다르자 마침내 주인공이 괴한에게 더블 배럴 샷건을 날리게 된다. 관객들은 이 장면을 보고 ‘드디어 인과응보를 실현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은 한 괴한이 갑자기 리모콘을 들고 영화를 되감기 해버린다. 그래서 주인공이 더블 배럴 샷건을 날리기 직전에 총을 빼앗아 괴한의 죽음을 막는다.

본 사람들만 아는 그 장면

23년도 1월 당시 내가 느꼈던 절망감 또한 그랬다.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내 삶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들 정도로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었다. 무언가 해소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되감기로 원래대로 돌아가는 느낌.


그래서 10번 트랙엔 갑자기 곡을 되감기 해버리는 순간이 있다.



3. 도움이 됐던 작품_밀양, 잘자 푼푼

[퍼니게임]과 [밀양]의 공통된 서사적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주인공의 해소할 수 없는 절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밀양]에서의 전도연의 비명과 신음은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처절하고 끔찍하다.

그 누구도 내 조력자가 될 수 없다는 고립감이 [밀양]을 지배한다. 나는 이것이 우주적인 고립감이라고 생각한다.

전도연의 절규

해당 심리는 [잘자 푼푼]에서도 명징히 드러난다.

주인공 푼푼의 끝없는 절망 속에서 그 누구도 푼푼에 공감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치는 한심한 푼푼의 모습에 조언을 날리기 일쑤고, 어떠한 관계도 푼푼의 주위를 겉돌뿐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누구의 잘못도 없다. 상대의 잘못도 아니고, 푼푼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한 푼푼은 항상 속으로 ‘오늘도 완전 괜찮았습니다’라는 말을 내뱉곤한다.

아빠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민규는 오늘도 완전 괜찮았다구~

나 또한 그랬다. 어찌됐든 나는 살아가야하기에 아무리 큰 절망감 속에서도 ‘오늘도 완전 괜찮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내 고립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빠르다.

10번 트랙은 ‘패배’라는 토픽의 이 앨범 중에서도 가장 큰 패배인 ‘고립’을 담은 곡이다.

19년도에 사서 자주 읽었던 하재연의 [우주적인 안녕]도 많은 도움이 됐다

4. 기술적 측면

이 곡의 도드라지는 기술적 측면은 원테이크, 루프 사운드, 휴대폰으로 녹음한 보컬이 있을 것이다.

원테이크라고 거창하게 설명했지만, 사실 이 곡은 잘 연주하고 싶지 않았다.


보통 내가 곡을 작업하는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스케치를 그리고, 데모를 작업한 다음 마지막에 발매 음원을 작업한다.


근데 이 곡은 스케치를 그대로 발매한 것에 가깝다. 스케치가 괜찮았던 것도 있지만, 깔끔한 연주가 곡에 잘 묻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사한 맥락으로 보컬 또한 집에서 휴대폰으로 녹음해버렸다.


작업실이든 스튜디오를 가든, 결국 녹음을 받는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곡은 나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같은 멤버일지라도 내 녹음 과정을 타인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이에 집에서 혼자 휴대폰으로 녹음해 노이즈를 제거하고 음원에 활용했다.

(여담이지만 사실 컨덴서 마이크로써 아이폰의 마이크는 굉장히 훌륭하다.)

원진과 소금의 이 앨범도 아이폰으로만 만들어졌다. 그나저나 핀터레스트 디깅 잘하시네 이분들..

이 곡 또한 이번 앨범의 일부 곡들이 공유하고 있는 ‘루프 사운드‘ 형식이다.

혹자는 ‘루프 사운드’를 지양하지만, 나는 ‘루프 사운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2020년 만큼 창작을 하기 쉬운 시기는 없다. 하지만 음악의 창의성은 과거 90년대보다 점점 더 퇴보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선택할 수 있는 도구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는 소위 못 배운 놈들의 천국이었다. 못 배웠기 때문의 창작의 제한성이 생겼고, 제한된 환경을 인정하면서부터 창의성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너바나, 오아시스, 스매싱 펌킨스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나는 그래서 필요하다면 고의적으로 내 음악에 제약을 걸어버렸다.

“이 음악은 루프사운드로 할거니까, 내 역할은 이 곡을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거야”가 목표가 되는 것이다.

이 목표가 생기면 오히려 창의적인 선택은 뚜렷해진다.


농담이지만 이와 유사하게 직장생활에서 배운 진리가 있는데, 점심 메뉴를 정할 때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상대에게 선택지를 2-3가지만 제공하는 것이다. 선택의 폭이 좁을 수록 사람은 더욱 사고가 빨라진다. 나는 이 점에 집중했고, 그것이 이 곡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주 원동력이었다.



5. 레퍼런스 음악들

Salvia Palth 의 Reprise 참 많이 들었었다
더스터의 영향을 안 받았다면 거짓말이다

집중했던 부분은 슈게이징과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교집합이었다. 이 단순한 구성에서도 우울하고 몽환적이고 고립적인 느낌을 낼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앨범이 나오면 10번 트랙 가장 먼저 들어주셔도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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