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고백
(1)
영화과 부전공 당시, 내가 정말 존경하던 교수님의 수업을 듣던 때였다.
“얘들아 그거 아니? 세상 모든 이야기는 따지고 보면 다 신화와 똑같단다.”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으면, 가끔은 신화를 돌아보렴“
그래서 한동안 성북정보도서관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와 구약-신약 신화를 다시 읽었던 적이 있다. 나이 먹고 보니까 와닿는게 다르더라.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1집에도 신화적인 요소들을 많이 담고자 노력했다. 그 중 처음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트랙은 2번 트랙이다.
여담이지만, 2번 트랙은 이번 수록 곡 중 가장 마지막에 쓴 곡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쓴 곡인데, 가장 빨리 완성된 곡이다.
(2)
서사적으로 크게 두 가지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나는 에반게리온 15화와 20화, 그리고 성경 신약의 베드로 이야기이다.
에반게리온 15화에서, 미사토와 카지가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있다. 미사토는 가끔 자신이 여자인 게 싫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카지에 대한 애정이, 카지라는 사람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카지라는 남자를 사랑해서 오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 이런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타인에 대한 맹목적인 호감이 당연하면서도 스스로 역겨울 때가 있다.
에반게리온 작품 내에서 위와 같은 심리를 보다 더 강화하여 서술한 에피소드가 있다.
20화에서 신지가 오렌지 주스로 변한 에피소드인데, 이때 미사토와 레이, 아스카의 나체가 루프 형식으로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신지의 진정한 욕망에 대해서 세 인물이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이것이 신지의 무의식, 즉 진정한 내면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고 성장하는 과정과 일치했다고 본다.
여담이지만 에반게리온의 저예산 연출 또한 우리 앨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루프 형식, 작품의 일시 정지 등, 저예산에서 오는 창의성을 대표하는 연출 중 하나이다. 나는 이것이 음악에도 충분히 접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베드로의 이야기가 위와 유사하게 진정한 내면을 들여보면서, 성장하는 신화라고 생각했다.
신약 성경에서 베드로는 유독 자신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고백하는 장면이 많은 인물이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따르면,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예수의 다른 제자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죄인됨을 늬우치며 자신을 직면한다. 베드로의 이 행동으로 인해 예수의 제자 또한 신성함과 경건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한동안 아는 것도 상황에 따라 모르는 척하고, 모르는 것은 상황에 따라 아는 척을 했다.
남을 속이기 전에 나부터 속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들통나면서 스스로 붕괴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많은 예시가 있지만 하나의 예를 들면, 내가 어릴 때 음악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그랬다.
화려한 음악 만들고 싶지도 않았으면서, 남들이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악기 연주가 후달리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모든 편법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나부터 내게 솔직하지 않았으면서, 그땐 뭘 만들고자 했던건지 모르겠다.
이 곡은 그런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은 자신을 직면함으로써 비로소 진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에 대한 해결은 담지 않았다. 그냥 내가 직면한 내 추악하고 약한 모습에 대해 쓴 가사다.
(3)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음악들
Carseat Headrest - My Boy
Mess of The Fermenting Dregs - Nan 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