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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그루 Dec 20. 2022

'누칼협'과 자크 데리다의 '유령학' +저수지의 개들

당신이 믿고 있는 이성은 정말 이성적인가?


자크 데리다

(1) 얼마 전에 ‘유령학’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유령 같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데, 자크 데리다라는 해체주의 철학자가 만든 용어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철학을 잘 몰라서일지는 몰라도 해체주의를 매우 싫어한다. 뭣같은 포스트 모더니즘이 여기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이 ‘유령학’이 소위 인터넷 용어 ‘군필여고생’처럼 터무니 없는 말인 것일까?


(2) 먼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당신은 산소의 옛날 이름을 아는가? 산소의 옛날 이름은 ‘플로지스톤’이었다. 사람들은 불로 타는 것은 모두 플로지스톤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영혼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때 당시의 이성이고 과학이었다. 심지어 이게 산소임을 발견한 라부아지에도 플로지스톤을 굳게 믿고 있었었다.


(3)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성은 비이성을 토대로 싹이 튼다. 그 씨앗은 바로 이성에 대한 의심과 상상력이다. 이성과 논리는 경험을 토대로 온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삶을 구축해간다. 또한 경험을 축적하고 공유하는 것은 인류 발전의 기원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자신의 경험만이 이성이고 논리인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과 도전은 종종 비이성적으로 치부된다. 미래는 어찌 됐든 확률의 영역이다. 확률이 현재와 과거보단 낮을 수 밖에없다. 하지만 인류의 이성의 집결체라 불리는 과학과 기술은 결국 현재와는 완전히 벗어나는 상상에서 태어나지 않았나.


(4) 타란티노 영화 중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저수지의 개들’이다. 나는 돈 없는 사람이 만드는 예술 작품을 좋아한다. 돈이 없으면 사람은 머리가 좋아져서 온갖 새로운 방법들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에서는 그게 밀실 대화, 밀실 스릴러 등의 장르로 나타난다. 차치하고, 저수지의 개들에는 미스터 핑크라는 인물이 나온다. 핑크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팁 문화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끊임없이 반문한다. 그런 그의 말은 사회 부적응자차럼 느껴지기도한다. 그러나, 결국 이 피카레스크적인 영화에서 살아남는 것은 미스터 핑크 뿐이다. 틀린 것을 알고 있음에도 믿고자 했던 인물, 남을 속이는 인물, 자신의 이성과 경험을 근거만을 믿는 인물 모두 죽는다. 여담이지만 핑크는 지금과 달리 예전엔 강렬한 남성의 색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이름을 참 잘 지은 셈이다.


(5)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반이성주의나 반지성주의를 종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은 ‘덜 이성적으로 보이는 것’에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아니면 우리가 이성적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한 번은 의심을 해보면 어떨까? 헛된 주장을 하는 저 친구의 말이 어쩌면 몇 년 뒤엔 정론이 될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은 비이성으로 치부하는 오컬트적인 요소나 이를테면 제사와 같은 것들도 나중엔 정말 과학적 요소가 있다고 밝혀지진 않을까? 사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6) 최근 ‘누칼협’이나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혐오 표현으로서의 ’MZ세대‘의 공통점이 보인다. 이 두 현상의 공통점은 자신의 이성에 대한 맹신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성을 자처하지만, 사실은 두려워서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는 사람들일 뿐인 것이다. 자신이 이성이라고 믿는 것을 수정할 용기가 없는 원천봉쇄의 오류, 논점의 화두를 지우고 맥락을 지워버리며 결론을 내버리는 매듭 자르기 오류를 범하고 있는 줄도 모른채 말이다.


(7) 하지만 또 이런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님 말대로면 무조건 수정하고 의심하고 새로운 게 짱이라는 거임?’ 그렇게 묻는다면 사실 이 반박도 매우 합리적인 비판이다. 새로움에 호소하는 오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게 무조건 짱이라는 오류이다. 이것도 문제인게 ‘반박을 위한 반박’을 하는 사람들도 최근 많이 보인다. 어쩌면 이성을 반박하는 자신을 이성적이라고 믿는 심리에 기저한 것일 수도 있겠다.


(8) 사실 유령학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생각난 것들을 막 쓰다보니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할지도 모르겠다. 얄팍한 지식이 여기서 들통나 버렸다. 쨌든 하고 싶은 말은 ‘나, 그리고 상식이라고 믿어왔던 것은 과연 이성적인가?’라는 회의주의적(..) 결론으로 끝을 맺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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