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루타 켄지 사랑해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는 정말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 기억? 신체?
30억 년. 아메바가 바다에서 표류하던 순간부터,공룡이 멸망하고 인류가 탄생하기까지 에마논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한다. 에마논은 매 세대에 걸쳐 딸을 낳고, 그 딸에게 자신의 모든 기억을 물려준다. 그리고 원래의 자신은 사라진다. 새로운 육체, 새로운 얼굴, 하지만 같은 기억.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어머니 에마논과 딸 에마논은 같은 존재인가?
남자는 에마논을 사랑했다. 그가 사랑한 것은 무엇일까.
수십 년 후, 그 남자가 다시 에마논을 만난다. 하지만 그가 사랑했던 ‘어머니 에마논’은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딸 에마논’이 어머니의 모든 기억을 갖고 있다. 그와 나눈 대화도, 그때의 감정도 기억한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다른 육체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다.
남자는 누구를 사랑했던 걸까.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는 누구일까?
하지만 육체가 정체성을 만든다면, 각각의 에마논은 독립된 개체다. 어머니의 기억을 물려받았지만, 그녀는 그녀 자신이다. 새로운 경험을 쌓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흥미로운 건 우리 자신도 이 모호함 속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교체된다. 인간은 7년이면 거의 완전히 다른 육체가 된다고 한다. 우리의 기억도 완벽하지 않다. 왜곡되고 재구성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존재라고 믿는다.
왜일까? 이 작품에서 여운이 남는 이유는 그 비대칭성에 있다. 남자에게 에마논과의 만남은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 하지만 에마논에게 그것은 30억 년 중 한 순간일 뿐이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 중 하나일 뿐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항상 이런 비대칭을 안고 있지 않은가. 상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지만, 상대의 인생에서 우리는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할까. 우리가 영원히 기억할 순간이, 상대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하루일 수도 있다.
에마논은 이 비대칭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은 의미가 있는가. 찰나의 교감은 가치가 있을까?
여담이지만 에마논이 늘 담배를 물고 있는 설정이 굉장히 섹시하고 세련됐다. 담배는 자기 파괴의 상징이다. 30억년을 산 존재는, 어쩌면 소멸을 원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