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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그루 Jun 05. 2023

저성장 시대와 예술가의 길 <1>

왜 요즘은 FUCKING 구린 것만 나올까?

태일아 너흰 잘 살고 있니?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해 줄 세상이란' 9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열광했을 디지몬 어드벤처의 OST Butterfly의 가사이다. 그래, 아무리 내가 코찔찔이 어린이었어도 세상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정도일줄은 몰랐지. 그리고 도대체 요즘 나오는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은 디지몬이나, 이누야샤같은 그 감칠맛이 없는거지?

어린 나이에 느꼈던 신비함과 설렘은 단순히 내가 나이를 먹어서 사라진 것일까? 어떤 거시적인 것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은 '4차 산업 혁명은 허상이다'라고 말했다. 고든은 이미 1970년대에 인류의 급격한 발전은 끝났다고 주장한다. 한 줄 요약하자면, 예전에는 여러분야에서 동시다발적인 발전이 이뤄졌는데 이제는 모든 분야가 성장할 파이가 줄어들면서 세계적인 저성장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고든이 주목하는 시기는 1920년부터 1970년의 50년간이다. 19세기 말 발명된 전기, 전신, 내연기관 등 2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실용화되고 확장되며 경제성장으로 이어진 시기였다. 음식, 옷, 주택, 교통, 의료, 근로조건 등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이 크게 탈바꿈했고 대량소비의 현대 사회가 열린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님하 근데 챗GPT도 그렇고 인류는 계속 발전하는 거 아님? ㅋㅋ루ㅋㅋ

"당신은 틀렸어! 이 아무것도 모르는 문돌이 자식. 챗 GPT는 어떻게 설명할거지?"라고 묻는다면 약간의 변호는 할 수 있다. 챗 GPT가 도입됨으로써 당신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는가? 챗 GPT가 이 지긋지긋한 취업준비 기간을 단축시켜주고, 당신을 노동에서 해방시켜주었는가? 챗 GPT가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발명품은 세탁기이다. 비록 루쓰 코완 같은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고 그 말이 틀리진 않았지만, 세탁기는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을 굉장히 압축시켰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여성의 사회진출과 함께 사회는 더욱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 챗 GPT가 인류의 발전을 이끌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류 발전에 끼친 영향이 생각보다 거대하지 않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럼 스마트폰은요? 라고 물을 수 있겠다. 근데 인류 최초의 전파 통신과 스마트폰을 비교해봤을 때 어떤 것이 더 전세계를 바꾸었을까?


아무튼 전세계가 더이상 성장할 곳을 잃고 저성장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전과는 달리 BOP(Bottom of the Pyramid)상품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BOP상품은 말그대로 피라미드의 하층민을 위한 제품이라는 것인데, 예전에는 외면 받았던 시장이었다가 2008년 이후로 주목받고 있는 시장이다. 이런 시장을 아주 잘 활용한 예시는 단연 중국이며, 조금 더 피부에 와닿는 예시를 찾아보자. 우리나라만 해도 메가커피가 초대박을 쳤다는 것을 보면 이 시장이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복고주의의 대표격 밴드 '잔나비'

그리고 동시에 눈여겨봐야할 것은 '복고주의'이다. 시대가 저성장으로 접어들면서 청년들은 더이상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고 과거의 향수만을 좇기 시작한다. 노스탤지어라는 말은 원래 전쟁에서 나온 말이고 공간에 대한 향수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점점 더 시간을 나타내는 말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워하는 시절은 때론 우리가 살아보지 못했던 시기이기도 하며, 그리 먼 시간이 아니라 당장 작년을 더 그리워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BOP 전략과 복고주의를 굉장히 잘 캐치하고 승리로 이끈 인물은 단연 트럼프다. BOP는 이제 경제와 비즈니스 뿐 아니라 정치와 예술 등 무형적인 것에도 스며들고 있다. 미국 하층민들이 열광할 자극적인 연설과 토론, 그리고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복고주의적 카피를 들고 나온 그의 전략은 기가막히게 들어맞았다. 저성장이 가져온 것은 탈엘리트주의, 과거회귀이다.


"ㅇㅋ 님하,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요. 일단 동시다발적으로 기술발전이 안 일어나고, 저성장이되면서 사람들이 과거를 돌아보거나 하층민을 주타겟층으로 삼았다는거죠? 근데 왜 이게 예술에도 문제가 되는거임?"


틱톡이 (내) 세상을 망치고 있어

BOP 컨텐츠의 대표적인 예시가 '틱톡'이기 때문이다. 저성장시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심리적, 시간적 여유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는 숏폼컨텐츠가 부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하지만 숏폼이라는 미디어적 특성은 깊이있는 내용을 담기 매우 어려운 형식이다. 생산자들도 쉽게 소비할 수 있고, 자극적인 것을 만들 수 밖에 없으며 소비자들도 짧고 자극적이고, 내용이 없는 것에 익숙해진다.


스탠리 큐브릭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로써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은 영화이다. 가장 먼저, 사람들이 더이상 영화를 집중해서 보지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매니아인 필자도 사실 영화를 보기에는 큰 힘이 들어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 예열활동으로 유튜브 숏츠를 10분정도 보곤 한다. 무엇보다 빨리감기로 영화를 보면서 대사가 없는 영화들은 쉽게 넘겨지기 마련이고, 소비되지 않는다. 이제는 영화보다 유튜브에서 영화 요약본이 더 잘 팔리는 시대다. 그러기 위해 영화에 대사가 많아지게 된다. 대사로만 설명이 가능해야 이야기 설명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은유의 예술 분야가 아니었던가. 자연스럽게 대사가 많아지며 소위 짜치는 작품도 많아지게 된 것이다.


음악도 이런 숏폼 컨텐츠에 맞춰지기 시작한다. 다만 지켜볼 만한 시사점은 후크 멜로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사가 얼마나 이 영상을 설명해 줄 수 있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이런 음악의 대표격은 'Otis Lim'의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다.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 라는 가사는 강아지 숏폼 영상에 매우 특화된 음악이다.


이를 영민하게 파악하고 은밀하게 활용하는 가수는 장기하라고 생각한다.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라는 가사 또한 굉장히 범용성 있게 숏폼 컨텐츠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번에 나온 '할건지말건지'도 비슷한 결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장기하 같은 뮤지션은 굉장히 범용성을 목표로 두면서도 퀄리티를 놓치지 않고 있지만, 틱톡과 숏폼을 겨냥하고 나오는 양산형 음악들은 도저히 듣기 힘들다. 또한 곡 길이도 3분대에서 2분대로 더 짧아지고, 그러면서 음악 자체가 갖고 있는 서사성은 줄어들고 단순히 숏폼에 활용될 도구로써 작용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다음편에 계속>

<2편>은 복고주의와 PC, 거시경제적의 관점으로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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