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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R이야기

성수동 4층짜리 비밀 팝업에 직원만 입장 가능하다고?

러쉬코리아의 인터널 브랜딩

by 박송삼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제품을 만든다"


트레바리에서 러쉬코리아 우미령 대표님과 함께한 '사람 중심의 비즈니스, 사랑받는 브랜드' 모임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다. 그리고 얼마 전, 이 말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다. 러쉬코리아의 전 직원이 모이는 내부 행사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IMG_8384.JPEG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비누를 만든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러쉬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어떻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행사를 모두 둘러보고 난 뒤에는 직원도 아닌 내가 마치 LUSHer가 된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이 행사는 단순한 내부 행사가 아니었다. 러쉬코리아가 20여 년의 세월을 거쳐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한 주요 메시지를 직원들과 함께 얼라인하는 시간이었다. 1층 전면에 걸린 세 개의 키워드가 이를 잘 보여주었다. '좋은 제품''좋은 사람'이라는 러쉬의 변함없는 가치, 그리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키워드 '좋은 학습'까지.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 러쉬다움의 시작

러쉬코리아의 시작과 그 여정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공간은 단연 지하 1층이었다. 이곳은 2002년부터 시작된 그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무로 된 캐비닛이 빼곡히 자리한 이 공간의 중심에는 직원들이 손수 작성한 '내가 해피피플인 순간'이라는 특별한 전시가 있었다. (러쉬코리아는 직원을 '해피피플'이라고 부른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제품을 만든다는 그들의 믿음이 담긴 이름이다.)

스크린샷 2025-02-02 021350.png 저마다 해피피플이었던 순간이 담긴 캐비닛들


"한국 내 차별 문제를 조사하면서 발표했을 때, 동료들이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고 함께 고민해 준 순간이요."
"친구들이 '너 보면 진짜 러쉬가 생각난다'고 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해요."


캐비닛 속에는 이처럼 소소하지만 진정성 있는 이야기들이 각자의 추억과 함께 담겨 있었다. 다양한 해피피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문득 나의 여러 자아 중 '회사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의 모습은 어떠할지 돌아보게 되었다. 아마 직원들도 이 공간을 거닐며 자신만의 '해피피플 모먼트'를 떠올리고 있지 않았을까.


공간 한편에는 러쉬코리아가 발행해 온 신문 형식의 간행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일부 오래된 자료들은 실제 직원분들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라 더욱 애정이 묻어나는 듯했다. 특히나 이 간행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전문 모델이 아닌 모두 해피피플들이라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진정성 있는 선택이 러쉬의 메시지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러쉬코리아 간행물.JPEG 간행물과 관련된 직원들의 코멘트가 붙어있다


출입구 벽면은 마치 러쉬코리아의 타임라인을 보는 듯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의 직원들 사진이 가득했는데, 특별했던 건 그 사진 속 인물들을 이번 팝업 행사장에서도 마주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한 회사와 함께 성장해 온 이들의 모습에서, 러쉬가 말하는 '좋은 사람'의 진정한 의미를 엿볼 수 있었다.


러쉬코리아 타임라인.JPEG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러쉬의 코파운더 '로웨나 버드(Rowena Bird)'의 강연이었다. 그의 발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 슬라이드마다 등장하는 직원들의 이야기였다.


"이 사람은 이런 재능이 있었고, 저런 계기로 합류하게 되었으며
이런 일들을 함께 했어요."


한 명 한 명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그의 모습에서, 러쉬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이라는 가치가 결코 구호에 그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언어의 장벽이 있었지만, 창업자가 직접 전하는 이야기 속 한국의 해피피플들에게도 분명한 메시지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 모여 만드는 좋은 회사, 그것이 바로 러쉬가 꿈꾸는 현재이자 미래가 아닐까.





좋은 제품, 손끝으로 전하는 자부심

러쉬 매장의 특징 중 하나는 직원들이 제품을 직접 시연하는 '데모'다. 가끔 이 모습을 보다보면 제품이 남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낌없이 써서 보여준다.


이날 행사에서도 러쉬 International Partner Support팀의 디렉터 사이먼 니콜스(Simon Nicholls)의 데모가 있었다. 그가 직접 한국 직원의 팔에 제품을 발라주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에서, 제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부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러쉬 데모 시연.png 러쉬 디렉터 니콜스가 직접 데모를 시연하고 있다.

사실 나는 고객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연되는 제품에 대한 호기심이 자연스레 생겨, 어느새 러쉬 앱을 설치하고 제품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만큼 데모는 제품의 매력을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을 직원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또 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본사에서도 이렇게 하는구나, 우리가 매장에서 하는 방식이 맞았구나"라는 확신을 얻는 시간이었을 것 같다.


매장에서 종일 서서 열정적으로 제품을 설명하고, 끊임없이 밝은 에너지를 내며 일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작은 의구심 같은 것. 아마 많은 직원들이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이런 순간에, 리더가 직접 보여주는 모습은 강력한 확신이 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십, 그리고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제품에 대한 자부심. 이것이 바로 러쉬의 힘이었다.


이날의 백미는 직접 러쉬 제품을 만들어보는 체험이었다. 마치 러쉬의 제품 개발자가 된 것처럼 다양한 원료를 보고, 만지고, 향을 맡아가며 그들의 시그니처 제품인 '슈렉팩'을 만들어보았다. 실제 판매용 용기에 담고 스티커를 붙이는 과정까지, 전 과정이 꼼꼼하면서도 심플했다. 화려한 포장보다 원료와 제품 자체에 집중하는 러쉬의 철학이 이런 작은 부분에서도 드러났다.


스크린샷 2025-02-02 022010.png 슈렉팩 만드는 과정(동영상이라 화질이 안 좋다)


이는 단순한 제품 만들기를 넘어선 경험이었다. 매장에서 "이 제품은 이런 원료로 만들어져요"라고 설명하는 직원들이 그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는 시간.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담긴 러쉬의 철학을 온몸으로 이해하는 기회였다.


러쉬의 창업 스토리를 듣고 제품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까지 이어지니, 마치 그들의 시작점으로 돌아간 듯했다. 강연과 체험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시간은, 직원들에게 러쉬라는 브랜드의 본질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하는 소중한 기회였을 것이다.





좋은 학습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번 행사의 특별했던 점은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무려 80여 명의 직원이 행사 기획과 운영에 참여했다고 한다. 일부 팀에서만 도맡아 진행하는 '남의 일'이 아니라, 모두가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우리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전사적 참여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우리가 흔히 보는 하향식 교육이나 일방적 전달이 아닌 진정한 '학습'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스크린샷 2025-02-02 022159.png 좋은 학습이란


우미령 대표님은 지속가능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학습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었다. 내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점은 '교수'와 '학습'의 차이다.


교수가 가르치는 사람 중심이라면, 학습은 배우는 사람이 주체가 되는 활동이다. 누군가 가르쳐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깨닫고 이를 익혀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학습은 역설적이게도 '가르치는 것'에서 일어난다.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한층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눈높이를 고려하고,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행사 자체가 직원들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학습 프로젝트이지 않았을까. 러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해하고 이를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이미 러쉬가 추구하는 '좋은 학습'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장의 모습은 이미 러쉬가 꿈꾸는 학습 조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태프들은 외부 인원인 우리에게도 마치 러쉬의 직원을 대하듯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응대했다. 함께 간 일행 중에는 이 행사가 내부 직원 대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일반 고객 행사로 착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러쉬는 직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세심한 장치들도 준비했다. 행사의 여러 체험 포인트마다 다이어리 제작을 위한 재료들을 숨겨두어, 직원들이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전체 여정에 즐겁게 참여하도록 했다. 단순한 기록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가는 학습의 과정을 설계한 것이다.


러쉬코리아 다이어리1.JPEG
러쉬코리아 다이어리2.JPEG
다이어리 재료들(좌)과 내가 만든 완성본(우)


이처럼 직원들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더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러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학습 조직'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해피피플과 함께 그리는 러쉬의 내일

이번 행사는 러쉬코리아가 20여 년의 여정을 거쳐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순한 내부 행사가 아닌,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온전히 담아낸 하나의 작품 같았다.


'좋은 사람'이라는 가치는 창업자부터 현재의 직원들까지 이어지는 따뜻한 히스토리로, '좋은 제품'이라는 자부심은 리더들의 진정성 있는 시연과 직원들의 직접 체험으로, 그리고 '좋은 학습'이라는 미래의 방향성은 80여 명의 직원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되었다.


러쉬는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전달할 때도 '러쉬답게' 했다. 일방적인 선언이나 교육이 아닌, 직원들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며 자연스럽게 체화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아마도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새로운 비전이 직원들 사이에 스며들고 있지 않았을까.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조직의 메시지가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진정성'과 '일관성'이다.


러쉬는 그들이 고객에게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를 직원들에게도 보여주었다. 캠페인에 탁월한 그들의 노하우를 인터널 브랜딩에도 그대로 녹여냈다. 직원도 아닌 내가 마치 LUSHer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이 행사에 참여한 모든 직원들은 분명 러쉬의 새로운 미래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제품을 만든다." 이제 나는 이 문장이 가진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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