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렌즈다, 무엇을 보고 싶은가?
얼마 전, 링크드인에 올린 글을 계기로 품질관리 직무에 계신 분과 커피챗을 나눴습니다. 처음에는 직무가 다르니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싶었어요. HR과 품질관리, 언뜻 보기엔 교집합이 적어 보이는 두 영역이니까요.
하지만 대화가, 아니 질문이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성과관리, 팀 내 소통, 동기부여 등 조직 안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공통 고민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제가 얻은 정보보다, 내가 어떤 질문을 했는지가 더 또렷하게 남아있다는 사실을요. 마치 질문 하나하나가 조직이라는 3D 퍼즐의 조각처럼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내가 속한 조직에서 문제를 마주했을 때 어떻게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그날의 대화를 복기해봅니다.
업의 본질은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매일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대응해야 하는 스타트업과, 안정적인 품질 관리가 핵심인 제조업은 소통 속도나 리더십에 대한 기대치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죠.
한 예로, 콘텐츠 기업은 '재미'와 '트렌드'에 민감하다 보니 엉뚱한 아이디어도 환영받는 반면, 금융권에 있는 회사라면 '신뢰'와 '안정'이 중요해 모든 프로세스가 철저하게 검증될테니까요.
조직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조직이 살아가는 방식의 근본'을 묻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표면적인 조직도를 넘어서, 실제로 누가 누구와 일하고 의사결정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고 싶었어요. 공식 조직도와 실제 영향력의 흐름은 다른 경우가 많으니까요.
어느 회사는 CTO가 있지만 사실상 개발팀장이 기술 방향을 결정하고, 또 다른 회사는 팀장급은 실무보다 보고와 행정에 시간을 쓰는 경우도 있죠. 정보의 흐름과 책임의 방향을 제대로 이해해야 조직 속 개인의 위치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 팀은 잘 하는데, 다른 팀과 협업할 때마다 문제가 생기는 것 같나요? 각 팀이 맡은 공식 역할 외에도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팀이나 자주 부딪히는 부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마케팅팀과 개발팀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프로젝트가 늦어지거나, 영업팀과 고객지원팀 사이에 정보 단절이 일어나는 경우... 이런 '접점'들이 실제 조직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이건 단순한 인구통계처럼 보이지만, 소통 방식, 피드백 문화, 회의 분위기까지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예요.
20대가 주축인 팀과 40-50대 경력자들이 모인 팀은 같은 문제에 다르게 접근하죠. 또 젊은 세대가 많은 조직은 수평적 소통을 중시하는 반면, 경력자 중심 조직은 경험과 전문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고요.
'다양성' 자체보다는 '일의 정서적 분위기'를 파악하고 싶었던 질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상사를 떠나는 것이지,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죠.
구성원이 리더로부터 지지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아니면 리더가 오히려 장벽처럼 느껴지는지 또는 리더가 결과만 중시하는지, 과정도 함께 살피는지 등에 따라 업무 몰입도와 조직 충성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몰입감과 지속가능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업무는 괜찮은데, 사람이 힘들어요."
업무보다 관계가 더 힘든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매일 8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는 동료들과의 관계는 업무 만족도와도 직결됩니다.
이 조직이 그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인지, 감정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팀원들과 점심은 함께 먹는지, 업무 외 대화는 나누는지 같은 작은 디테일이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직무명이나 공식 업무 분장보다, 실제 투입되고 있는 리소스를 묻고 싶었어요.
"마케팅 담당이지만 요즘은 CS 대응에 시간을 다 쓰고 있어요."
"개발자인데 문서화 작업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들은 공식적인 역할과 실제 기대치 사이의 간극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이런 '숨겨진 업무'가 번아웃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회의, 메신저, 이메일, 구두 보고... 어떤 루트를 통해 정보가 오가는지 묻는 것은 조직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메신저로 다 해결해요."
"주간 미팅에서 모든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요."
"보고서를 통해서만 소통해요."
소통 채널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조직 문화의 일부입니다. 빠른 피드백이 필요한 일에 공식 보고서만 요구하는 조직이라면,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죠.
이 질문들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조직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지도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대화를 돌아보다 보니, 제가 그 자리에서 미처 던지지 못한 질문들도 떠올랐는데요.
다음 기회엔 꼭 꺼내보고 싶은 질문들입니다.
암묵적으로 기대되는 행동이나 태도를 통해 조직의 무의식적인 기준과 문화가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회사는 성과보다 태도를 중요시해요."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인정받아요."
이런 답변들은 그 조직이 실제로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공식적 구조와 실제 작동 구조의 차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질문이라고 느꼈습니다.
"팀장이 모든 결정을 내려요."
"주로 경험 많은 팀원들이 비공식적으로 해결해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책임 소재를 찾는 데 더 집중해요."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 방식은 조직의 실제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조직 내부의 관성이나 병목을 발견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죠.
"보고서 형식이 너무 복잡해서 작성하는 데만 하루가 걸려요."
"회의가 너무 많아 실제 업무 시간이 부족해요."
"결재 단계가 너무 많아서 의사결정이 늦어져요."
이런 '불편함'들은 종종 조직의 변화 지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 질문들을 통해 결국 다시 확인하게 된 건, '질문'은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조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HR 담당자로서, 직원들의 고충을 듣거나 새로운 제도를 설계할 때 이런 질문들이 전체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문제의 표면이 아닌 근원을 볼 수 있게 해주니까요.
앞으로 제가 어떤 조직에 속하든 문제를 진단하고, 관계를 이해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데 이 질문들이 실마리가 되어줄 것 같아요.
혹시 여러분은 조직을 파악할 때 어떤 질문을 던지시나요? 여러분만의 '조직 읽기 질문'을 나눠주세요.
함께 더 입체적인 조직 지도를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