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생각하다] - 객관적 글쓰기를 완성하는 '데스크'
객관적인 방식으로 사실을 나열한다면 진실은 스스로 드러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진실을 풀어내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이렇게 머리를 쥐어뜯진 않을 것이다.
객관적인 방식으로 글을 썼다고 해도 그 알맹이가 썩어 있을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문가에게 확인을 받아서 인용을 한 내용이지만, 기자의 생각과 맞는 의견만 전달하고 반대되는 의견은 숨기면, 방법만 객관적일 뿐 내용은 주관적인 게 된다.
과거 기자들은 자신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은 애초에 기사에 적지 않기도 했다. 옛 신문 기자들의 미덕은 기사를 읽고서 궁금증이 남지 않게 쓰는 것이었다. 이는 궁금증이 남지 않을 정도로 취재를 깊게 하라는 뜻이지만,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부분은 아예 빼 버리는 식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아직은 모른다"고 쓰기보다 자연스럽게 누락하고 글을 끝맺는 식이다. 이런 속임수는 기자들이 전형적으로 사용해온 진실을 가리는 기교다.
이제 이런 속임수는 잘 통하지 않는다. 기자가 "나를 믿어라"라고 말하는 시대는 지났고, 시민이 "나에게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전문가에게 접근하는 게 어렵지 않은, 페이스북에서 한 다리만 건너도 전문가의 의견을 직접 볼 수 있는 시대에서, 기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가장 투명하게 쓰는 일이다. 아직 모르면 "더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쓰거나, "취재원에게 찾아갔으나 만나주지 않았다" 등 한계를 솔직하고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런데 기자가 정직하고 투명하게, 객관적인 방식으로 글을 써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자기 취재와 글의 허점은 스스로 발견하기 어렵단 것이다.
이 때문에 아무리 경험이 많은 기자라도 자신의 기사를 스스로 완성하지 않는다. 작성을 완료한 기사는 '데스크'라고 부르는 편집자에게 보낸다. 최종 기사는 편집자가 검토해보고 고쳐서 출고하는 것이다. 편집자는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취재 기자보다 비교적 객관적일 수 있다. 보통은 회사의 책상에 앉아있는 각 부서 부장이 편집자(데스크) 역할을 한다.
편집자에게 기사를 맡길 때는 제발 내 기사를 한 줄 한 줄 꼼꼼히 봐주길 바라는 마음일 때가 많다. 극단적으로는 내 기사가 전부 틀렸다는 가정을 갖고 회의적(skeptical)인 관점으로 검토해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아주 사소한 사실 관계의 잘못이라도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훈련된 기자라도 치열한 현장 속에서 경주마처럼 취재 경쟁을 벌이면 자신도 모르게 주관적인 표현이나 관찰이 들어가고 현장에 동화되기 마련이다. 편집자의 역할은 그런 부분들을 냉철한 시각으로 걸러내는 일이다. 언론사별 기사의 품질 차이는 기자의 취재력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편집자가 얼마나 오류를 잘 찾아내고 고치는 지에서 판가름이 난다.
그래서 편집자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그 부서 부장이 보통 맡는다. 기자가 보낸 기사 초고를 봤을 때, 자신의 경험상 말이 안 되는 내용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사를 올리면 부장은 해당 기자에게 계속 전화와 메신저로 "이게 어떻게 말이 되는지" 해명을 요구한다. 기자에게서 납득할 만한 설명이 나오면 그 문장을 살리지만,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면 그 문장은 삭제한다.
뉴스에 나왔다면 사실일 것이라고 시민들이 생각하는 이유는 이런 편집의 과정을 거친 뉴스가 그동안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언론사들은 이런 편집 과정, 즉 품질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SNS가 발전하고 정보가 과거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유통하면서 이를 따라잡기 위해 많은 기사가 편집 과정을 생략하고 출고된다.
대부분의 언론사에는 속보만 담당하는 인터넷뉴스팀이 있는데, 여기서는 스스로 발제, 작성, 출고를 모두 한다. SNS에 뜬 어떤 화제 거리를 베껴서 쓰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일단 속도를 따라잡고 여론의 관심을 선점하기 위해서인데, 이런 뉴스를 계속 접하는 시민들은 이제 "뉴스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언론 스스로 가장 값비싼 신뢰라는 가치를 몇 푼 안 되는 클릭 수와 바꿔서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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