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글보다 강력한 그래픽 한 장

17. [쓰다] - 기사는 기자에게, 그래픽은 디자이너에게

by 송승환

정치부 기자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정치인의 인간관계 파악이다. 정치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떤 정치인이 평소 누구와 친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조력을 받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거물급 정치인이 될수록 직접 대면이나 전화 통화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게 필요하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알면 그 정치인을 알 수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통령 선거를 한 해 앞둔 2021년 초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돌풍이 거셌다. 새해에 실시한 차기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 경쟁자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격차도 10%포인트가 넘게 벌어졌다. 성남시장을 거쳐서 경기도지사를 하고 있는 이 지사는 민주당에서 변방 장수 정도로 여겨졌는데, 어느새 유력한 다음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재명 지사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분석하는 기사를 정치팀 오현석 선배와 쓰게 됐다. 여론조사 전문가, 정치 컨설턴트들을 인터뷰해서 이 지사의 강점·약점·위기·기회(SWOT)를 분석했다. 3000자가 넘는 긴 기사였다.


<'어대명' 별칭도 등장…이재명 1위 독주, 대세인가 고점인가>

https://news.joins.com/article/23993628


이 기사의 화룡점정은 '이재명의 사람들'이란 제목의 그래픽이었다. 이 지사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 분류가 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이 그래픽 한 장으로 이 지사의 강점과 약점이 모두 해석될 수 있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 그래픽을 출력해서 수첩에 붙여놨다"고 연락을 하기도 했다.


이재명의 사람들.JPG


신문 기사뿐 아니라 방송 기사도 마찬가지다. 복잡하고 어려운 기사를 풀어낼 때 문장을 쉽게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픽(CG) 하나를 잘 제작하는 게 훨씬 더 시청자에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이런 그래픽은 종종 캡처돼 인터넷에서 ‘짤’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건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인데, 기사의 핵심이 그 그래픽 한 장에 모두 담겨 있을 정도로 잘 만들었단 뜻이다.


그런데 많은 기자들이 취재와 기사 작성을 공들여 해놓고 그래픽은 대충 만드는 경향이 있다. 기사를 다 써놓고 뒤늦게 그래픽을 허겁지겁 그려서 맡기니 차라리 없어도 될 정도로 품질이 낮은 그래픽이 붙기도 한다.


반대로 취재를 열심히 한 기자가 지나친 욕심을 부려서 그래픽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는 경우도 있다. 언론사에선 그래픽에 들어갈 내용을 최대한 간결하게 줄이려는 그래픽팀 디자이너와 욕심 많은 취재 기자가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게 기자의 전문 분야이듯, 그래픽을 구성하는 건 그래픽팀 디자이너가 전문가다. 양보할 수 없는 핵심 내용을 빼고는 그래픽팀의 의견을 따르는 게 경험상 대부분 결과물이 좋았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아래 도서 정보를 참고해 주세요.


<네이버 책>

<교보문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의심해줘" 기사 품질과 편집자의 실력은 비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