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넌" 기사 속 '핵심 관계자'의 정체

20. [생각하다] - '관계자 저널리즘'과 익명 취재원

by 송승환

뉴스를 보다 보면 가장 자주 등장하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관계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 "검찰 관계자"로 표현되는 알 수 없는 인물들은 항상 결정적인 한 마디씩을 한다. 그런데 관계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관계자는 달리 말하면 익명의 취재원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라면 청와대에 있는 취재원 중 직급이 높은 사람, 검찰 관계자는 검찰에서 최소 검사 이상은 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면 이름을 밝히면 되지 왜 익명의 뒤에 숨는 걸까. 어떤 사안에 대해서 말은 해주고 싶은데 자신을 밝히면 불이익이 우려되는 내부 취재원이 익명의 도움을 빌려서 조직 내부 사정을 말해주는 것이다.


4107448_AWp.jpg 방송뉴스에선 익명 취재원을 실루엣으로 표현하곤 한다.


기사에서 인물의 말을 인용할 때 최선의 방법은 실명 인용이다. 가장 투명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다. 하지만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실명으로는 절대 말해줄 수 없다는 취재원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취재를 포기하거나 익명으로라도 취재를 하는 선택지 중 골라야 하는데, 당연히 익명 취재라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간접적으로라도 내부 소식을 알리는 쪽이 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계자라는 익명 인용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익명 인용이 당연한 것이 되면서 아무도 실명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익명 인용을 너무 쉽게 허락해주면서,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갈수록 익명의 커튼 뒤에서만 말하려 하고 있다.


이를테면 정부 부처의 대변인, 공보관, 기업의 홍보팀장 등은 실명으로 입장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직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해도 그것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조차 실명 인용을 하면 기자에게 항의 전화를 하는 안 좋은 관행이 자리를 잡고 있다. 기자들도 향후 취재를 위해,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이들의 요구를 쉽게 받아준다.


이 때문에 뉴스를 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계자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하나의 정보라도 더 주기 위해서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하는 익명 인용이 만연해지면서 오히려 뉴스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관계자발 발언을 지어내는 기자가 있다는 것이다. 익명의 취재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고, 감시하는 사람도 없다보니 관계자 인용을 조작해서 쓰는 기자들이 있다. 간혹 걸려서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아주 극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은 취재원 보호라는 중요한 가치를 악용해서 이를 피해간다.


저널리즘 J.JPG <저널리즘 토크쇼 J> 캡처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관계자 저널리즘’이라고 비판한다. 관계자발 인용이 지나치게 많고 실제 있었던 발언인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말이다. 대개 이런 지적은 실명 보도를 늘려야 한다는 이상적인 주장으로 마무리될 때가 많은데, 이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익명의 깊고 생생한 발언과 실명의 하나마나한 발언의 비중을 사안마다 경중을 따져가면서 판단하는 게 필요하다. 익명 인용도 그 투명성의 정도가 모두 다를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 "한 중진 민주당 의원", "서울의 당직자 출신 초선 의원" 등은 모두 익명 인용이지만 후자일수록 더 구체적이고 범위가 축소됐다.


최소한 이 익명의 발화자가 이만한 말을 해도 될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검증할 수 있는 단서를 달아두는 것이 책임 있는 익명 보도라고 할 수 있다. 익명 보도를 비판할 때는 무작정 실명 보도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익명 보도가 적절했는지를 따져가며 비판한다면 기사를 작성한 기자 입장에서 더 뼈아플 것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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