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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환 Jul 25. 2021

'확인 불가'에는 '답정너'로 돌려주자

40. [만나다] - 한일 수출 분쟁과 삼성전자 홍보팀

기자들이 취재원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이다. 기자들은 취재원에게 민감한 사항을 질문하고, 취재원은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기자가 완벽하게 취재가 된 상태에서 취재원에게 질문을 하면 대부분 어쩔 수 없이 “맞다”고 답해준다. 이정도로 확실하게 취재된 내용은 대답을 거부해도 어차피 보도가 될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취재원이 “맞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취재하는 건 어렵지만 필승 전략이다.     


2018년 하반기 가장 큰 이슈는 일본과의 무역 분쟁이었다. 일본 아베 총리는 7월 1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제작할 때 필요한 핵심 부품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중 하나가 반도체를 깎을 때 쓰는 고순도 불화수소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에 90% 넘게 의존하고 있었다. 두세 달 안에 수급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반도체 생산과 수출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당시 JTBC 탐사팀에 있던 나 역시 일본과의 수출 분쟁 이슈를 쫓고 있었다. 무역협회와 반도체협회 핵심 관계자, 반도체 전문가 등을 만나서 고순도 불화수소를 과연 대체하거나 국산화할 수 있는지를 묻고 다녔다. 그때 만났던 몇몇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이미 고순도 불화수소의 다른 수급 창구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불화수소를 가공하는 공장들을 확인해보라는 귀띔도 했다. 반신반의 했지만 확인에 나섰다.


먼저 삼성전자 홍보팀에 "새로운 불화수소 수입 경로를 확보했느냐"고 슬쩍 물어봤다. 역시나 "불화수소와 관련해선 아무 것도 말 할 게 없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좀 더 확실하게 취재해서 다시 물어봐야 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불화수소를 가공해 납품하는 공장들을 찾아 돌았다. 그 중 한 업체의 관계자가 공장 밖에서 따로 얘기하자는 말을 꺼냈다. 실마리가 잡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용한 카페에서 그는 사진과 문서 몇 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 공장은 일본에서 수입한 고순도 불화수소를 가공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납품해왔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중국 등 다른 나라의 불화수소가 공장에 들어왔다."     


실제로 사진엔 중국산 고순도 불화수소가 쌓여 있었고, 드럼통엔 "삼성전자 납품용"이란 띠가 붙어 있었다. 문서엔 들어오고 나간 날짜와 시간이 기록돼 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영상취재 기자와 함께 이 공장 진입로에 차를 세워두고 '뻗치기'를 해봤다. 실제로 중국산 원료를 실은 탱크로리가 바쁘게 드나들었다.      



중국산 고순도 불화수소가 삼성전자로 들어간 것은 정황상 거의 확실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맞다”는 대답을 이끌어낼 정도의 증거물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왜 중국산 고순도 불화수소를 들여왔고, 생산 라인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의 품질인지 확인이 되지 않으면 기사를 쓸 수가 없었다.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자세한 과정을 말할 수 없지만, 또 다시 공장과 업체를 돌고 돌아 결국 모든 실체를 파악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있기 약 1년 전부터 이를 예상하고 다른 나라의 원료를 수입해서 테스트 해왔다는 것이다. 최종 품질 테스트를 통과한 게 7월 1일이라는 날짜까지 알게 됐다. 공교롭게도 7월 1일은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한 날이었다.     



기사를 모두 써놓고 당당하게 삼성전자 홍보팀에 다시 전화했다.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었다. “맞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특종 하셨네요.” 삼성전자 홍보팀의 돌아온 짜릿한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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