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제목과 설명, 기묘한 그림체의 겉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이 책을 이렇게나 열심히 읽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길래 이토록 찬사를 받는 책이 되었을까 궁금했지만,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담고 있을 거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처음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스포를 당하면 안 되는 책'이라고 신신당부하는 어느 책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는 내용이 너무 궁금해져서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 스포주의 *
전반적인 책의 흐름은 저자인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어느 생물 분류학자의 삶을 좇으며 그가 어떻게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잡고 살아갈 수 있었는지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룰루 밀러는 아버지로부터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의미가 없는, 특별하지 않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즉,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질서를 세워도 혼돈이 휩쓸고 간 자리는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는 개미든, 사람이든 똑같이 먼지처럼 아주 사소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 아버지의 생각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했지만, 정서적으로 깊게 의존하던 연인과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되는 혼돈을 겪으면서 혼돈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느끼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데이비드’라는 과학자가 지진으로 인해 자신의 연구물들(물고기를 탐구하며 표본을 채집하고, 해부하고, 그들의 이름을 붙여놓은 것들)이 대부분 소실되는 사건을 겪었음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연구를 다시 이어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저자는 그의 삶의 원동력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찾고자 그의 삶의 행적을 좇게 된다.
데이비드는 자연의 사다리의 형태, 그러니까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지위가 정해져 있는지를 드러내 줄 가장 높은 청사진에 대한 추적을 계속 이어갔다.
그는 물고기의 해부학적 구조를 상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의 진짜 창조 이야기, 인간을 만드는 데 어떤 생명의 실험들이 필요한지를 알아내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가 하는 일은 다른 생물들의 우연한 실수와 성공들 속에 쓰여있는, 잠재적으로 인류가 더욱더 진보하도록 도와줄 실마리들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물고기와 여러 생물들을 연구하면서 생물의 연결 고리와 지위를 파악하여 유전적 질서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보였고, 성격적인 특성 또한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늘 앞으로만 나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만으로 그의 삶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일생을 바친 연구물들을 한순간에 잃고, 아내와 딸을 잃고,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 순간들을 마주하고도 바로 다시 일어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데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책들과 기록들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았고, 놀랍게도 그가 교수로 있던 대학의 설립장(제인 스탠퍼드 부인)이 사망한 사건과 그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위협받는 상황이 되자 제인에게 치명적인 독을 써서 사망하게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또한 그가 연구를 위해 '아오스타'라는 마을을 방문하게 되면서 그의 삶과 연구의 방향성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 마을은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고, 자식들에게도 장애가 유전이 되면서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혐오감을 느껴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해야 한다는 '우생학'을 주장하게 되며, 열등한 존재들이 대를 잇지 못하도록 생식 기능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생학은 이후 나치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그는 이미 유명한 과학자였기에 그의 주장은 꽤나 타당한 것처럼 여겨졌고, 그는 남은 일생을 우생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이로 인해 가난하거나, 조금이라도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 사회에서 약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끌려가 죽거나 강제로 불임 수술을 당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우월하다는 믿음으로 타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 것이다.
하지만 변이로 여겨지는 열등한 종들을 제거하고자 했던 그의 주장에는 아주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
동질성은 사형선고와 같다. 한 종에서 돌연변이와 특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그 종이 자연의 힘에 취약하게 노출되도록 만들어 위험을 초래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의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한다. 그는 다양성이 있는 유전자 풀이 얼마나 건강하고 강력한지, 서로 다른 유형 개체 간의 이종교배가 그 자손에게 얼마나 큰 '활력과 번식력'을 만들어주는지 말이다.
과연 이 사실을 데이비드가 인지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그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믿음과 삶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것이 데이비드에게 있어 가장 큰 '혼돈'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결국 데이비드 또한 혼돈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었던 것이다.
처음 다윈을 읽을 때부터 마지막으로 우생학을 밀어붙일 때까지 어느 시점에서든 그 믿음을 놓아버리는 것은 다시 현기증을 불러들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중략) 그것은 지독히도 방향 감각을 앗아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혼돈'이었을 것이다.
데이비드에 대해 탐구하며 분류학에 관심이 생긴 저자는 분류학에 대해 조사하던 중, 분류학이 더 발전하면서 다른 방식으로도 생물을 분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물고기들, '어류'를 어류로 분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물고기들은 사람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류'라는 범주가 이 모든 차이를 가리고 있다. 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덮어버리고, 지능을 깎아내린다. 그 범주는 가까운 사촌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잘못된 거리 감각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상상 속 사다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제일 윗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어류'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즉 인간의 좁은 식견과 짧은 경험으로 만들어진 어떤 것에 대한 정의, 분류, 한계를 넘어서 세상을 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할 수 있고, 따라서 그토록 두려워하던 '혼돈'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어떤 지점에서 또한 긍정적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 것이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이러한 깨달음을 얻게 된 저자는 삶을 더 긍정적으로, 편견 없이 바라보며 살아가게 되었고, 전 연인과 헤어지게 된 계기(어떤 여성과 키스한 것)로부터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또 다른 연인을 만나 행복한 순간들을 누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책에 말미에 담겨있다. 그가 이전처럼 현실에 매몰되어 살아갔다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부터 시작해서 데이비드에 대한 이야기와 마지막 룰루밀러의 변화된 삶까지, 어느 것 하나 예상하지 못했지만, 너무나 흥미로웠고 오랜만에 책에 온전히 몰입하며 시간을 보냈다. 유명한 책이라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얻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잘 알지 못했던 우생학과 그로 인해 고통 받은 많은 이들의 삶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의 삶을 통해 또 다른 삶의 가치관을 배웠다.
나는 뼛속부터 ISFJ라,, 삶을 통제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고, 규칙적으로 사는 것을 편하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어쩌다 마주하는 '혼돈'의 순간들이 매우 크게 다가왔고, 두려운 존재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의 아주 좁은 이 식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과, 어떠한 의심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모든 것들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결국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삶의 모양은 달라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품게 된 것 같다.
[그 외 개인적으로 좋았던 말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음 주고받음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우리의 가정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 관해 궁금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