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엄마는 이 말을 오래도록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게 ‘가장 큰 사랑’이라니.
마치 가장 멋진 삶의 극단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 말에 매료되어 한때는 선교사로서 순교하는 삶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럴 기회도 없거니와,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내가 내 목숨을 바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내 목숨은 바치지 못할지언정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손해 보고,
내 것을 덜어내고,
때로는 말하지 않고 참는 삶을 살아가려 애썼다.
그런 삶은 참 힘이 들었다.
무엇보다, 기꺼이 도움을 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내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애써 하는 행동이 정말 선인지,
아니면 위선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저 ‘가장 큰 사랑’이라는 말에 사로잡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나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 행동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삶을 계속하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는 나를 미련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데, 굳이 희생하는 삶을 꿈꾼다는 게.
하지만 나는 그런 삶을 통해 배운 점이 있다.
바로 ‘거꾸로 된 세상의 신비‘이다.
대표적으로 이순신 장군님의 명언이 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역시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다.
’ 먼저 된 자는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는 먼저 된다 ‘
처음 말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말도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귀한 가치를 버릴 때 오히려 가장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가장 귀한 것을 버릴 때 가장 귀하게 된다니.
진정한 역설의 신비이자,
가장 용감한 희생에 준하는 가장 큰 상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실제일지,
단순히 책의 한 구절일 뿐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과연, 이 손해 보는 삶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참아내고,
가진 것을 내어주며,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덜어내는 삶.
그렇게 살아간 사람에게는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 하나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엄마는 정말 많은 고민을 하면서 살아왔다.
진정으로 이 소중한 삶을 잘 살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고민 끝에 나는 하나의 답을 찾았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동은 ‘희생’이라는 것을.
엄마는 지금도 내 인생이 하나의 시험대 같다고 느낀다.
내가 선택한 이 낮고 고된 길 끝에
무엇이 남을지, 어떤 열매가 맺힐지
조용히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엄마가 먼저 살아낸 이 삶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네가 옆에서 지켜보며 그 삶의 증인이 되어다오.
엄마는 너를 키울 때,
‘참지 않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네가 누구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참지 않고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너를 가르쳤다.
엄마가 너를 그렇게 키운 이유는
네가 아직 약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너’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먼저 너를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라.
엄마는, 네가 먼저 너의 그릇을 바르고 좋은 것으로 가득 채우기를 바란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곳에 가라.
너를 아끼고 사랑하며
네 모든 것을 존중해라.
그리고 너의 그릇이 가득 차고,
그 물이 흘러넘칠 때가 되었을 때,
그 흘러넘치는 좋은 에너지를 다른 이들에게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의 몸을 낮은 곳으로 약간 기울여
그 아름다움이 그곳으로 흘러가게 해라.
희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지지 못한 사람은 줄 수 없다.
가진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것이다.
희생은 이미 가졌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며,
이제는 더 이상 지키기만을 위해 노력하는 약자가 아니라,
스스로 베풀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강자임을 뜻한다.
네가 먼저 충분한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충분히 가진 것을 나누어주는 것.
그것이 엄마가 너에게 바라는 희생이다.
엄마는 사랑의 무게를 참 무겁게 느낀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
그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희생’이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상대를 위한 일이다.
상대를 위하면 반드시 나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상대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정말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달랐다.
참 많이 싸웠고, 서로를 아프게 하기도 했다.
우리의 수많은 갈등은, 엄마를 ‘사랑’에 관해 깊이 사유하게 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상대를 위해 ‘너’를 희생해야 할 필요는 없다.
너의 감정과 취향과 너 자신까지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
사랑이란, 온전한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방향성을 이루는 것이지,
하나가 부서져 흡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너의 사랑을 위해 이것은 버려야 한다.
바로 ‘나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이다.
엄마가 숱한 갈등을 통해 느낀 건 이것이다.
아빠를 사랑하면서도 가장 놓지 못했던 것은
‘내 기준’이었다는 걸.
아빠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늘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그를 판단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게 사랑이 아니라 통제였다는 걸 알게 됐다.
내 기준을 내려놓고,
아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하자
우리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위해 내가 옳다고 믿는 것 하나쯤은 내려놓게 만든다.
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그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지 않는 것.
내 기준을 포기하고
상대를 위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사랑을 위한 희생이며
그 희생을 통해 두 사람은
비로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