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작가의 노랜드에서 읽은 ‘사고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점층적이다.’라는 구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불안해졌다. 내 주변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고가 쌓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부터 인덕션에서 윙윙 소리가 난다. 1구짜리 인덕션인데 처음 이 집에 이사 오면서 엄마가 선물로 주신 물건이다. 중소기업 제품이고 간단하게 전기 코드만 꽂으면 사용할 수 있다. 타이머, 조리, 급속 같은 간단한 기능만 있는 중저가 제품에 속한다. 벌써 사용한 지 7년이 넘어서 그런 건지 요새 힘을 못쓰는 느낌이다. 관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그런 걸까. 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팬에 먼지와 기름때가 껴서 그런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뚜껑을 열어 팬을 닦아주면 될까. 내가 뚜껑을 열어 팬을 닦고 다시 뚜껑을 닫으면 이 인덕션을 오래 쓸 수 있을지, 사고가 나지 않을지 의문이 든다. 적어도 먼지 누적으로 불이 나는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팬을 닦다가 다른 부품을 잘못 건드려 사고가 난다면? 내 머릿속 사고가 바쁘게 돌아간다. 그렇다고 이걸 방치할 순 없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확률을 좁혀가며 그 순간을 향해 뻗어갈 테니 그 확률이 좁혀지지 않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덕션뿐만 아니라 자동차도 1년에 한 번 꼭 점검을 받고, 히터 주변에 탈만한 게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모든 것들을 기민하게 체크해야 한다. 그래야 너도 살고 나도 산다. 대부분의 사고는 나 혼자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사고는 흔적을 남기고 주변에 피해를 준다. 사람들을 가끔 그 사실을 잊곤 한다. 천선란 작가는 사고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점층적이라고 했다. 이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점층적이다. 어떻게든 이어져 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을, 특히 최근 들어 일어났던 사고들을 떠올리면 한 인간의 실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공동체 사회는 서로 예민해지고 기민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너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다 같이 끌어가야 한다. 피곤한 삶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로, 혹은 세상의 어떤 불합리한 힘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고는 한순간이다. 잠시 눈을 뗀 사이, 잠시 방심한 사이, 잠시 안심한 사이. 하지만 그것은 사고에 대해 잘 모르는 소리다. 사고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점층적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확률을 좁혀가며 그 순간을 향해 뻗어나간다. 그리하여 지점에 충돌하기 전까지 그 일을 막을 무수한 기회가 있었지만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사회가 존재하고 국가가 존재한다. 개인이 사고의 질주를 눈치채지 못하고 막을 수 없을 때, 국가가 대신하여 사고의 확률을 미리 막아야 한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그해 일어난 사고의 횟수로 알 수 있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고 막을 수 있던 숱한 일들이 안일하고 무책임한 사회 곳곳에 넘실거린다. 그러니 사고는 한순간일 수 없다. 사고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차분히 그 지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지도를 보기 위해 숙였던 고개를 들었던 그 순간,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그 남자가 이인의 눈에 다시 보인 것도 한순간의 사고가 아닌 이전의 일로부터 파생된 사고의 연장선일 뿐이며 그로 인해 운전대를 급하게 틀다 절벽 아래로 차가 떨어진 것도 결국 계획되어 있던 일인 것이다. 누군가로, 혹은 세상의 어떤 불합리한 힘으로부터._388면
천선란,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中, 『노랜드』, 한계레 출판
* 천선란,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中, 『노랜드』, 한계레 출판 인용
** 천선란,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中, 『노랜드』, 한계레 출판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