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븐니 나라에 송븐니 곤듀> | 비가 오는 날엔
• 22년 5월 25일 저녁, 비내리는 여름 하늘을 보며
시인 이병률의 책을 좋아한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책도 책대로 좋지만 바람 부는 날 10마디로 상대를 웃게 만들 수 있는 말을 알게 될 수 있으니, 더 좋다. 오늘의 날씨와 어울리는 표현으로 운율을 맞춰 조금 바꿔본다면 다음의 문장이 될 것 같다.
"비가 내린다. 네가 그립다"10마디라는 공통점이 있고, 억지스럽지만 위의 표현을 조금 빌려본 븐니표 비 오는 날의 표현이다. 비 오는 날 저녁이 되면, 센치한 기분과 비 내리는 날의 젖은 땅바닥 냄새와 함께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오랜 시간 함께한 어떤 이, 정말 좋아했는데 마지막 인사도 못한 채 지금은 연락도 닿지 않는 어떤 이. 화창한 날 보고 싶어지는 이와는 다른 조금 비렸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이들이 보고 싶어지는 건 날씨의 마법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인생을 음미한다.
• 어린 시절에도, 비 오는 날은 웃지 않았던 날들
비가 오면, 나는 평소보다 웃음이 없어진다. 비 오는 날의 하늘은 쓸쓸함과 차가움을 주기에 그날은 웃을 일이 없다. 때로는 밝았던 하늘이 어둑해지는 색채로 얼굴을 내밀면, 내가 알던 하늘이 아닌 것만 같아 무섭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가야 하는 날 비가 오면, 밝은 모습이 많던 나도 무표정으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친구들 좋아하는 마음도, 선생님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도 조금 가라앉은 채 모든 기분이 다운되는 빗물에 젖은 어린 나는 마치에 걸린 사람처럼 모든 게 멍한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비가 오면, 이렇게 비 내음에 아릿한 기분을 느껴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시원한 느낌도 들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가라앉는 부분이 더 많다. 그러면, 이렇게 하늘을 겁 내고 있는 나에게 친구들은 오늘따라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건네며, 잔뜩 긴장하고 가라앉은 표정을 풀어주기도 했다.
• 비 내리는 하늘 위에서의 일들을 상상하며
어린 시절에는 비가 내리면 하늘 위에서 무슨 일이 난 건 아닌가? 하는 상상력에 빠지기도 했다. 하늘나라에 누군가의 눈물이진 않을 가.. 왜 비가 오는 하늘은 이렇게 슬픈 기분을 들게 할까.. 를 생각하며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빗 줄기를 쳐다보며, 보이지 않는 구름 위의 세상을 상상하기도 한다.
동심의 상상은 나이가 들어가게 되면서 퇴색되고 어떤 날은 시원한 빗방울을 그리워하는, 예전과는 다르게 비를 기다리는 자세를 견지하게 되기도 한다. 햇빛 쨍쨍한 Sunny Day의 연속 일 때, 아 이럴 때는 비라도 내려서 온 세상을 시원하게 적시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비가 오면 그리워지는 당신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원한 빗방울이 그리워지는 날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한바탕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코 끝 스치는 비 비린내에, 바쁜 일상의 발걸음을 분주하게 옮기며 그리운 그 사람, 스쳐지나가는 그 사람을 기억하며, 떨어지는 비와 함께 그리움을 생각한다. 그리움과 현재의 바쁜 발걸음을 빗소리와 함께 할 때 어린 시절 마냥 무섭기만 했던 비 내리는 하늘이 이제는 무섭지 않고, 제법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비 내리는 하늘을 마주하여도 나의 발걸음을 씩씩하게 옮기며, 날씨에 압도되지 않는 나를 발견할 때, 빗방울이 세상과 맞닿아 세상의 향기를 아릿하게 바꾸어 그 비 내음을 반갑게 기억하는 나를 마주할 때, 나는 이제 제법 겁 없는 어른으로 성장하였음을, 비가 더는 겁 나지 않는 씩씩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비 내리는 오후에 쓴 븐니곤듀 일기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