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븐니 Oct 14. 2021

비가 내게 미치는 영향

송블맇가 엄마와 사이가 좋았을 때 | 시장 골목길 추억

[비 오는 날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_•]


비가 내게 미치는 영향

비가 오는 날이면, 햇살이 있는 날보다 과거를 떠올리기 더 쉽다. 지금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면 더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가 오는 도로를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엄마 손을 붙잡고 옷을 사러 자주 갔던 한 시장길이 기억난다.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어린 시절에는, 엄마와 옷 쇼핑을 하고 꼭 외식을 했다. 엄마 만둣국 한 접시, 내 만둣국 한 접시 그렇게 둘이 단무지를 사이에 두고 식사를 마치면 엄마 손을 잡고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그 길이 정말 행복했다. 행여라도 사고 싶은 신발 하나 놓치는 날이면 꽤 긴 시간 방에서 울었지만.. 엄마는 그래도 늘 최선을 다해서 자식을 키웠다. 그런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학창 시절을 나름의 기준에서 최선을 다해왔는데, 이런 노력이 필요 없었던 걸까?


비가 오는 타이밍에만 나가는 캥거루 딸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은 엄마와 나. 그러다가 약국에 들러야 해서 잠깐 나가려는데 하필 그때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진다. 준비성 철저한 나는 우산을 준비해서 금방 비를 피하면서도, 날씨까지 나를 버린 것 같아서 투덜투덜 대며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 한 통. "너 비 맞았냐?" 엄마는 그렇게 오늘도 애증의 연결고리를 찾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나라면 분명히 저런 관심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엄마의 저런 관심도 반갑지가 않다. 비가 와도, 비를 맞아도, 비에 젖어도 내가 스스로 그 역경을 헤칠 수 있게 나를 독립적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평소에만 저렇게 나를 대해도 내 마음이 이렇게 괴롭고 혼란스럽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이제 다 큰 캥거루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과거의 어린 모습들을 지워내고 있다. 어린이의 말투, 아이의 감정, 자라지 못한 나의 미성숙한 부분들을 돌아보며 혼자 그렇게 알을 깨어 가고 있다. 사실, 나는 엄마의 주머니에서 먼저 독립했는데 엄마가 자꾸 자기의 주머니에 돌아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아서 두렵기도 했다. 엄마가 키운 딸자식의 모습에서 엄마의 정체성을 한정시키는 게 힘들게 느껴지는 날도 많았다. 내가 엄마가 되면 엄마의 모습을 이해할까?


비가 내리고 나니, 엄마와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각나고 싸웠던 안 좋은 기억들은 씻겨 내려가고 있다. 문득 젊은 시절보다 생기가 없어진 엄마 얼굴이 떠올라 코끝이 찡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이렇게 굳어진 관계가 하루아침만에 용해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엄마의 정체성과 나의 정체성의 혼요를 경계하며 스스로 보금자리를 조성할 줄 아는 독립적인 성인이 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엄마와 나에게 서로를 건강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심리적 거리와 시간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많은 갈등의 역사 속에서 그나마, 정뚝떨의 사이에서 조금의 협력관계의 사이로도 다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루아침에 복구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엄마가 곁에 있을 때 잘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마음처럼 쉽지 않은 축적된 문제들로 인하여, 이 숙제는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하나의 선물이자 십자가(?)로 생각되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넌 왜 화를 안 내니? :'분노'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