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븐니 Sep 14. 2021

1-1. 스펙 쭉쭉빵빵, 다 부질없어

■원피스에 가려진 책 1화 l 학급 임원, 전교 1등, 2호선 라인 탑승



●1장. 실패의 연속은 좋아하던 서재를 옷으로 가리게 만들고


1. 스펙 쭉쭉빵빵, 다 부질없어

2. 이성(理性)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3. 사람에겐 ‘느낌’이라는 것이 있어

4.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절

5. 주연과 조연: 주인공과 주변인에 대하여

6.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할 때는, 정지

7.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일을 불러온다.



1장 1화. 스펙 쭉쭉빵빵, 다 부질없어

지금은 그냥 인생에서 더 큰 원을

그려나가는 거야


-영화, <막다른 골목에서의 추억>-


< 젊은 시절의 노력과 눈에 보이는 성취들 >


* 초등학교 6년간 임원활동, 경기도 교육청 교육감상 수상

* 중학교 학급 임원, 전교 수석, 전과목 최우수 성적으로 으뜸상 수상

* 고등학교 시절까지 12년 개근, 원하는 대학교 한 번에 입학 성공


원피스에 가리어진 책 1화를 시작하며 l 자장가 같은 편안한 에세이


영화 <막다른 골목에서의 추억>은 결혼을 앞둔 한 여자가,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일본의 소소한 길을 유유자적 여행하는 길을 그린 영화이다. <원피스에 가리어진 책>은 목표 달성이라는 성취를 코앞에 놓고 달린 저자가, 인생에 이런저런 장애물에 치여살다가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듬고자 하였을 때 느낀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들에 관한 이야기다.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나는 '성공 에세이'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실패와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를 잘 쓸 수 있을까? 어쩌면 그렇기에 더 부담 없이 편안하게 실패와 슬럼프,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 더 잘 쓸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에세이에서는 실패와 좌절에 대하여 논할 것이고, 그 과정을 힘들게 뚫고 나온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엄마가 섬 그 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섬집 아기, 동요-


자장가 불러주시는 자상한 부모님 슬하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스펙으로 친구들이 편지에 써주기를 '엄, 친, 딸'이라고 써주며 자타공인의 범생이 학생이었다. 그렇게 시절마다 나의 노력이 비교적 성과를 내며 살아온 삶을 살았고, 큰 슬럼프와 아픔이 없었던 평범함의 일상들이 주는 행복을 누리면서 살았던 10대의 삶을 영위했다. 사회가 내준 과제에 비교적 잘 순종하고 순응하며 그렇게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살아온 것이었다. 언젠가 한 담임 선생님께서, "좀 더 재미있게 살아보지 그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규범과 규칙을 지키는 재미없게 사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재미있게 살라는 선생님의 충고에 따라, 20대 중반까지 나름 열정적인 삶을 살게 된다.


열정적인 삶이 남기고 간 삶의 흔적들 l 원피스로 책을 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등, 중등, 고등, 20대 청춘의 기록들>


2002 푸른서호 교지편집, 댄스부같은 문예부 소속 l 6년간 열정리더, 상장 50여개 수상, 학예회 댄스스타

2003 서호어머니회 장학증서, 표창장, 학력상 수상 l 6년 개근,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받고 졸업

2003 경기도 교육청 선정, 모범학생 표창장 수상 l 학급 부회장 선정, 이듬해 전교수석

2003 교지편집팀, 학급문고 발행, 학력우수상 수상 l 2005 으뜸상(전과목 최우수), 학력우수상 수상

2006 제4회 고교논술대회 전국권 대회 참여 (Score:88) l 2008 본교문고「향나무」작성참여


2009 새내기 신입생으로 선배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공부, 인생 최대의 환영을 경험함
2011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넷띠 6기 활동, 대통령기록관 발대식 참여, 본 기관 온라인홍보대사 활동참여

2013 독도수호국제연대 독도아카데미 최우수 사회진행상, 최우수 봉사상 수상 (~2013.01)

:독도아카데미 815 경축페스티벌 광화문 광장 교육 진행 l 국회도서관 독도교육 22기 운영진 활동참여

2014 서울 세계수학자대회 현장스케치 l Seoul ICM Blog Article ( In Coex )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 수상자ㅣ미국 수학협회 베블렌상 수상자, 헤지펀드 회사 사장 인터뷰


성적표에는 항상 '외모에 관심이 많으나, 발전 가능성이 큰 학생이오니 많은 격려와 응원 바랍니다.',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대는 학생입니다, 칭찬해주십시오.'라는 선생님들의 의견이 쓰여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발전이 기대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졌는데 이런 글을 보고 있자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분명 아무말대잔치를 하시는 분들은 아니었을 텐데, 왜 저런 메시지를 나의 학생부 시절의 기록에 남기셨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모든 도전이 멈춰진 시점에, 나의 자존감의 조각이 부서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학생부 시절의 기록'과 '어린 시절의 사진'을 들춰보면서 스스로의 상처에 밴드를 붙여주며 나를 달래곤 하였다.


하지만, 밴드만으로는 부족했다. 상처를 정말 근원적으로 치료할 연고가 필요했던 것이었을까? 이내 과거의 기록을 보는 나조차도 싫어졌다. 현재 내가 빛나지 않고 있는데, 과거에 잘난 역사를 꺼내어 찾아 의미를 되새겨봤자 더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쌓여 간 나의 참고서, 전공서적, 하나 둘 켜켜이 모은 책의 서재에 하나, 둘 긴 원피스를 걸기 시작하였다. 책의 제목만 봐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 이성적 지식이 가득한 책만 아니었어도, 저 열정의 에세이만 아니었어도, 저 희망적인 삶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만 아니었어도 나는 도전을 멈추고 적당한 행복과 일상을 사랑하면서 살 수 있었을 텐데‥


사람이 힘들어지면, 눈앞에 보이는 온갖 대상에게 그 분풀이를 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대상이 책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했고, 평소에 좋아했고, 나를 그렇게 한걸음 두 걸음 성장시킨 저 책들의 겉모습, 표지, 제목의 모든 활자들이 미웠다. 서점에 가서 꿈을 키우고, 도전을 했던 내 해맑은 모습과 순수한 열망들이 겹쳐지면서 더 비참함을 느끼게 하는 그것들을 당장 내던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책을 버린다는 것은 나의 심장에 연결된 동맥과 정맥이 잘라져 나가는 기분이 들 것만 같기에, 버리진 못하고 가려두었다. 책이 가지고 있지 않은 화려하고 묵직한 원피스들로 그 모습을 하나 둘 가리면서, 내 시선에서 잠시 멀어지게 하였다.


쭉쭉빵빵했던 책들을 덮어두고, 사회가 말하는 스펙 만능주의에 회의를 느끼다


위에서 언급한 청춘의 기록 10줄만 보면, 아무나 하지 못하는 노력과 열정을 기울인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렇게 휴식 없이 살면 정말 병이 나게 되어있다. 나는 쉬어야 하는 타이밍에도 매사에 나를 세탁기에 넣어진 빨래처럼 돌려댔다. 학문 이외에 더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을 알아보고, 블로그와 SNS에는 기록을 작성하기 위한 맛집 탐방, 여행활동, 사진 찍기라는 활동을 지속했다. 개인 다이어리에는 그날 만난 인연, 경험했던 다양한 활동에 대한 개인적 소감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했으니‥그야말로 '휴식'의 모습을 한 '자기 계발'을 지속하여 '도전 중독자'같은 생활을 하였다. '휴식'하는 순간에도 내가 어떻게 하면 잘 쉬었다고 소문이 날까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쉬고 있었으니, 참 불쌍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스펙은 한 순간에 부질 없다고 여겨졌다.


도전과 열정이라는 의도와 취지는 좋았으나, 그 정도의 조절과 휴식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며 잘 쉬지 못한 날들이 후회가 되었다. 건강문제도 20대에는 티가 잘 나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제대로 쉬지 못한 것에 대한 염증과 이상 현상들이 순서대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미 염증이 나버린 것들은, 돌이키기에는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이 되기도 하니, 사서 고생 젊을 때 하지 말고 쉴 수 있는 날에는 쉬어라.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도전하고 열심히 살아왔으면서도 나의 건강은 혹사시켰고, 휴식을 취한다면서도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 아래에 진정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자기에 대한 교만과 반성이 없었던 삶을 살아서였을까? 하늘은 나에게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멈춤', '속도가 제로가 된 터널', '정지'라는 과제를 내어주고 꽤나 긴 침묵을 하였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이

어느 순간 싫어지게 되는 날이 온다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었던 것이

가장 큰 상처를 주는 무기가 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삶이

어느 순간 멈춰지게 되는 날이 온다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을 주는 것들을

미리 챙겨둔다면, 무게는 줄어들테지


-Velypoem.2021-


인생에서 더 큰 원을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삶이 하락곡선을 그린다면


인생에서 슬럼프가 다가온다면, 영화 <막 다른 골목에서의 추억>의 명대사를 음미해봐. 인생에서 더 큰 원을 그려나가는 과정이 때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시점에 올 수도 있어. 슬럼프의 시기를 그렇게 인생에서 더 큰 원을 그려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우리가 더 성장하기 위해 멈춰진 시간.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재정비하기 위한 시간임을 생각하자. 너무 빨리 그려지지 않는 '동그라미'에 대해서 압박도, 강박도 받지 않은 채 자기만의 '원'을 그려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멈춰진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나를 확장할 수 있는, 나를 소멸시키지 않는 일들이 될 거야.


우리들의 삶이 하락곡선을 그리고, 좀처럼 상승세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나를 옭아매었던 그 무엇을 잠시 옷으로 가려봐. 그것은 가장 좋았던 어떤 것일 수도 있고, 정말 감당하기 힘든 무엇일 수도 있어. 그렇게 나의 상처를 자꾸 덧나게 하는 어떤 것을 잠시 동안이라도 멀리해봐. 회피하라는, 도망치라는 메시지는 아니야. 너의 상처에 조금 아물 시간을 허락하라는 거야. 가장 너를 닮은 멋진 옷으로, 너의 찬란했던 시절을 담는 옷들로 너의 상처와 아픔을 가려보아. 그러면 너의 상처는 곧 아물어들 거야. 오늘도 힘든 시간 속에서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상승의 기류가 불어오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할게.


-블리의 슬럼프 극복법 처방전 (준비물: 동그라미 한 개, 멋진 옷 한 벌)-
















   

작가의 이전글 빛의 사자, 별이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