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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Nov 03. 2021

글자

송블맇의 개똥철학 l 깍둑파 모이시오.

글자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 반듯반듯 깍두기체를 쓴 사람의 글을 보면, 이 사람은 참 바르고 강직한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이 든다. 조금 구부러진 궁서체를 쓴 사람의 글을 보면, 약간은 예스럽고 고지식할 것이라는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이 든다. 한편, 귀여운 오이체나 복숭아체의 글자를 쓴 사람의 글을 보면, 약간은 장난스럽고 재미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이 든다. 그렇게 사람마다 다른 글자체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들의 성격과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재미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글자만으로 사람의 전체를 평가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나의 글자는, 반듯반듯 깍두기체의 글자들이 주를 차지하고, 때때로 궁서체를 사용하기도 한다. 나는 조금 조선시대에서 온 사람처럼 반듯반듯한 글자 쓰기를 좋아하고, 궁서체처럼 예스러운 느낌이 있다. 대학시절 친구들은 내 노트를 보면, 왜 이렇게 '으른 글씨'를 써놓았냐고 내 글씨체에 핀잔을 주었다. '대학생 글씨체'의 필기노트를 전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내 글씨가 심하게 예스러웠나 보다. 그래도, 나의 글씨체는 여전히 반듯반듯 깍두기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초등학교 시절 나에게 네모진 노트에 글씨를 가르쳐주신 은사님께서는 이 글을 보면 필히 연락을 부탁드린다. (저에게, 반듯반듯 체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최근, 오랜 기간 알고 지냈던 언니의 결혼식이 다가와 오랜만에 손글씨를 써보려고 하고 있다. 결혼식에서 많이 나오는 노래는 Enya의 Only Time이다. 유일한 시간, 하나의 시간이 되는 결혼식. 그 소중하고 인생의 의미 있는 축복의 시간에 나의 반듯반듯 깍두기체로 지인 언니의 행복을 바라며 글귀를 적어보고자 한다. 무슨 내용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편지를 쓰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래도 왕년에 우정 노트계의 만수르급 열정을 발휘했던 실력을 바탕으로, 예쁘고 재미있는 편지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오늘은, 이렇게 '글자'라는 점을 주제로 글을 써보았다. 사람이 말을 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생각을 글자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로 유용한 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서'가 글쓰기에 근원지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독서 교육도 조금은 변화를 시도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 역시 필요하지 않을까? 너는 무슨 체로, 어떤 글을 쓰고 싶니?라고 말이다. '글자'를 보면서 드는 다양한 생각을 두서없이 써보니 이렇게 독서교육까지 침범하였다. 자라나는 세대가 더 다양하고도, 좋은 독서/글/말을 향유할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글자의 모양이 우리의 마음의 모양 아닐까.
넌 무슨 글씨체로 무슨 글을 쓰고 싶니?

-송블맇의 개똥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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