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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Nov 10. 2021

이쯤 되면, 종교를 안 믿는 게 나을 지경

가브리엘을 닮아 소식을 전해요 | 되는 게 하나도 없네.

모범적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종종 예의 바르고, 종교에 걸맞는 행동이 요구되기도 한다. 술, 담배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성도다운 품위와 행동을 지킬 것이 책무로 주어지니 말이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술을 좋아하여, 술을 종류별로 다 섭렵하였으며 담배를 피우는 것도 좋아했으면 아마 담배도 피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담배는 뭔가 술과는 다르게 취하지도 않고 나의 몸의 본연의 향기를 가리는 것 같아 아주 어린 시절 친구와 호기심에 한번 피어 본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입에 댄 적이 없다. 마약 같은 것은..? 구할 능력은 없으니, 마약같이 중독성을 주는 음악이나 찬송가를 평소에 마약같이 듣고 있다.


그렇게 조금은 술과 세상의 많은 노래, 풍습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속에는 '신앙'이란 뿌리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신앙의 뿌리 역시, 봄-여름-가을-겨울의 모습을 가지고 때로는 봄, 여름의 나무처럼 축복을 받는 날도, 결실을 맺는 날도 있다. 한편 가을의 나무처럼 쓸쓸한 고난의 날들도 있고 겨울의 나무처럼 앙상한 날들도 교차적으로 반복이 되어 좀처럼 사람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자연현상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들며 '축복'받기 위한 일종의 인간의 종교적 기복 행위와는 다른 어떤 차원의 신앙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이다. 예수님을 믿고, 대속의 죄를 대신 진 그 십자가의 의미를 깊게 아는 성도의 신앙과 믿음을 품격 있는 믿음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예수님을 잘 따르던 베드로도 세상의 심판 앞에서는 그를 따르기를 두려워했고, 세상의 힘 앞에서는 자신이 사랑한 누군가를 인정하지 못한 채 보낸 적이 있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세상에서 하는 일을 기독교인들은 '사역'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세상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신앙적 차원'의 인내와 승화가 필요한 지점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종교와 신앙은 이렇듯 이성적인 듯하면서 신성한 영역에 속하기에 글로 쓰기에는 두렵고, 막연한 부분이 있다.


나는, 지금의 신앙의 자유가 만연한 세상이 아니었다면 베드로처럼 나의 믿는 것들을 두려움에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나의 사랑하는 어떤 것을 보고도 지키기는 커녕 모른 채 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정도의 힘든 고난과 연단의 시기도 많이 겪은 부분이 있기에, 신앙에 대한 뿌리가 겨울의 모습을 닮아 때로는 이 뿌리를 나의 맘 속에서 완전히 제하여 버리고 싶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내 맘대로 안된다고 해서 본래의 뿌리를 함부로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주 힘든 시간 속에서도 그 뿌리의 작은 속삭임을 그래도 지키려고 애쓴 적이 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면서.


"이쯤 되면, 그냥 안 믿는 게 낫지 않겠니.."

(말하는 순간에도 믿고 있는 내가 이해는 안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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