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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Nov 27. 2021

수고로움의 어미는, '수모'일까.

송블맇의 개똥철학 | 사회생활이 힘에 겨울 때

언젠가 아주 고된 사회생활의 감정노동 같은 것들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의 일이다. 밖에서도 서러움 가득한 수고를 하고 돌아온 날, 엄마는 왜 이렇게 밖에서만 잘하냐고, 안에서는 말도 없고 좀처럼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나를 다그치시기 시작한다. 온갖 인내와 피, 땀, 눈물을 흘리고 온 블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모든 인내의 한계심을 느끼고, 마침내 한 소리 지른다. "내가 지금, 온갖 수모를 당하고 왔으니 더 이상 건들지 마..-..-"이런 말을 하고 문을 닫고 들어가면,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내일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기분이 풀어지거나, 문자로 이어서 대화를 하는 방법으로 문제점을 해결해나가야 했으니.


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 힘든 아침 출근길에 큰아버지와 아빠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프리카나스라는 인류의 조상은 자연생활에서 우리같은 억압적인 생활을 했을까?하고 혼자 현실을 힘겨워하며..이 지옥 같은 지옥철에서, 지옥 같은 러시아워에서 우리 큰아빠와 아빠는 몇십 년을 한결같이 어떻게 버텼을까..? 하는 생각으로 많은 시간 아침일찍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 한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또르르 눈물이 흐르던 버스 안에서 그렇게 가족의 뒷모습을 생각한 적이 많다. 아침에 아홉 시에 매일 같은 곳을 가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나에게는 참 버겁고 무거운 일들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는 왠지, 이런 규칙적인 생활에 뭔가가 나를 억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 기분이 힘들고 가벼운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서 책무와 책임의 무게를 애써 갖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집에 녹초가 되어 들어오면 엄마는 늘 자신과 대화를 잘해주기를 원했다. 밖에서 이미 한도 초과의 성량과 친절을 다 베풀고 온 나에게 엄마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론, 너무 잔인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수고를 다 쏟고 온 나에게, 엄마는 무슨 말을 더하자고 나를 그렇게 쉬지도 못하게 하는 건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이렇게 나에 대한 애정이 너무 과했던 부분도 많다. 엄마의 생각과 뜻에 억눌려 내 표현을 잘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나면 화가 두배로 나서 엄마의 질문에 더욱 대답하기가 싫어졌으니 말이다. 그래도, 막상 그렇게 말을 시키는 엄마가 집에 없으면 마음이 허전하고 금방 보고 싶어 지는 게 이내 나의 마음이었다. 엄마는 날 화나게 하고 잔인하게 대하지만, 없어지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회생활에 쓴맛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스카웃 제의같은 엄청나게 달고 감사한 기회들이 내게는 종종 몇 번, 찾아오기도 했다. (언젠가 맞지 않는 회사들과는 결별을 하기도 해야했다.) 더불어 언젠가 한 회사의 사측과 노조측의 갈등과 비현실적으로 가슴아픈 그 당시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일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노동과 일자리에 대한 시선을 다르게 느끼게 해주는 일련의 서사를 작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책을 보면서, 내게 주어진 어떤 일이라도 감사하게 여겼고, 한편으로는 그 도서에 나온 일이 남일 같이 않게 여겨져서 독서시간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읽어지지 않는 책을 오랜기간 붙잡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우리네에게 가볍지 않은 노동과 직업, 회사와 노조의 모든 입장을 생각하자면 난 아버지의 회사가 먼저 떠오르면서 숙연해진다.


그렇게 내게 가볍지 않은 노동의 시간이 끝난 후... 엄마는 내가 당한 많은 사회에서의 일들이 궁금했을 수 있다. 엄마는 인생 경험이 더 많기에 조언도 해주고 싶었고 원래 속을 잘 밝히지 않는 나의 마음이 더욱 궁금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오늘 한 모든 수고로움과 참아낸 나만의 수모당한(?) 시점의 일들이 기억나면서 엄마와의 대화는 더욱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수고로움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아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참아내는 크고 작은 크기의 수모들이 아닐까. 이런 수모, 저런 수모를 경험하고 느끼면서 참아내는 법도 배우고 다양한 사회의 모습을 감내하는 것도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 중에 하나라면, 잘 참아내야 하는 걸까.. 수고로움의 엄마, 수모야. 가끔씩만 내 곁을 찾아와 주길 부탁해 :-)!


가끔씩만 마주하고 싶은 감정. 수모로움.

-송블맇의 개똥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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