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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많은븐니씨 Feb 25. 2022

<스카이캐슬>을 본 명문대생 븐니곤듀

<송븐니 나라에 송븐니 곤듀> | 왜 공부했냐면


'공부와 학업, 동기부여를

떠올리게 하는 스카이캐슬'

스카이 캐슬은 2018년도에 많은 인기를 끌었고, 당시 화제성과 교육코치라는 소재로 우리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 바 있다. '서울대 의대'를 가려면 정말 저렇게 몇 십억이 드는 코디를 붙여가면서 까지 자식들에게 자신들의 직업과 능력을 똑같이 물려주고 싶어 하는 부모가 실제로 존재할까? 에 대한 생각도 들면서, 대한민국의 교육열 강한 어떤 장소가 떠오르면서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 꼭 드라마에서의 처럼 일들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교육에 대한 과한 열정과 자식 대신 그들의 삶을 설계해주려고 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븐니는 '의학계열'이 아니었던 탓인지, 이러한 코디에 의한 성적관리나 생기부에 몇 글자 기록을 위한 과도한 활동을 한 세대는 아니다. 다만, 학원에 가서 선행학습을 받고, 각 과목에 대한 개념들의 이해와 문제풀이를 반복함으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시대에 공부를 하였다. 공부를 하면서 억울했다면 억울한 점은, 수업시간에 개념에 대한 기본적 원리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문제 적응력 혹은 수행평가 같은 분야에 확장시키지 못하면 그 과목은 아무리 원리를 잘 이해한다고 해도 '잘한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던 것 같다.

원리를 아무리 잘 이해해도, 시험문제에 나오는 건 그 개념에 대한 원리를 활용한 적용 문제, 심화 문제들이 나오기에 아무리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하고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공부해보아도, 실전에서는 조금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여기에, 학원이나 EBS 강의 같은 것들을 보충하면, 비교적 그 어렵다는 문제에 적용을 잘하는 능력도 길러지곤 한다.) 원리를 잘 이해했는데, 적용을 잘하지 못하기에 점수가 안 나오면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원리를 잘 이해 못 하니까, 적용력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지만 원리를 잘 이해해도, 문제를 다루는 스킬이 없으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었던 부분이 확실히 있다. 또한 그러한 적용 문제들을 많이 풀고 접한 친구들의 점수가 높다는 것을 체감했을 때에는 '학원'을 끊을 수 없는 이유로도 작용하였던 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교과서 중심, ' 학교 중심'으로 공부를 하려고 해도,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라는 보충 수단을 찾게 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연습을 통해야만, 그래도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과 어느 정도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점이 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고,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들어가는 공부에 왜 그렇게 집착을 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이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예서 엄마와 예서의 모습이 과거의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어떤 이유로 교육에 대한 강한 집념이 생긴 엄만, 자식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야 하고, 예서는 엄마가 잘 키워준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1등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한 그 모습이, 내 이야기 같기도 했다. (과한 코디 같은 것들이나, 사교육 선생님들에게 너무 의존하는 모습은 나와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에, 공부를 못한다고 하기엔 어느 정도 눈치가 있어 성적이 조금 잘 나오는 편이었고, 공부 이외에 재능을 키우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점도 있었기에 그냥 자연스럽게, 공부/성적/입시에 예서만큼이나 집착을 하며 스스로를 못살게 달달 볶아오면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시험기간에 시험시간 스케줄을 짜면서, 조바심이 나는 마음이 드는 꿈을 자주 끄는 편이니 어린 시절의 공부는 내게 기쁨이자, 어떤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스카이 캐슬>을 보면, '출신', '가문', '경제력'으로 그들의 선민사상 같은 것들도 내심 보이는 측면이 있다. 나는 이러한 명문 출신, 이러한 가문 출신, 이러한 경제력이 있기에 '내가 빼어나게 잘났다'라고 우기는 부모 세대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반대로 그들이 가진 어떤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감추기 위해 저리도 포장을 할까? 에 대한 생각도 들게 된다. 무언가가 있기에, 어떤 조건이 있기에 과시하고 싶은 과시욕인지, 열등감을 덮고 자신의 잘난 모습만 보이고 싶은 어리숙함인지를 계속 고민하면서 드라마를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한, 과시욕 & 열등감을 본인들 세대에서 끝내면 되는데, 문제는 그것을 자식들에게 투영시키려고 한다는 점이 좀 안타깝기도 했다.


'이기라고 하는

부모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운 <스카이 캐슬>'

예서의 엄마도, 영재의 엄마도 모두 '성적  받아오면 된다', '이겨야 된다'라고 말하며 인생의 모든 가치를 '공부'에만 한정시키는 것은 조금 안타까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에게   있는 응원일 수도 있겠지만, 살다 보면 '공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공부에서 얘기해주는 많은 것들을 꼭,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한 번쯤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나 개념들도 많다. 그렇지만, 꼭 공부를 통한 자아실현, 직업성취, 인생설계 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느낀 건,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인생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20 후반, 30대 초에 느끼기도 하기에, 예전처럼 아끼는 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고 말하기는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긴 하는데, 너의 잠재된 적성과 진로를 설계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은, 예전만큼 oo출신, oo전공, oo학과 가 지금 시대에서 그렇게 큰 메리트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고 드러내는 그 3초의 순간에는 내 자존감이 살고, 내 소개의 퀄리티가 높아지는 것 같고,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그러한 어떤 것들을 쟁취했다는 그 순간에 어떤 권력과 명예욕을 느낄 수 있는 짧은 경험도 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보다도 공부 말고라도, 다른 분야/산업/능력으로도 더 멋진 성공을 한 이들도 많이 생기고 있고, 과거처럼 누군가가 어떤 출신이라고 해서, 그 출신의 꼬리표만 보는 시대는 이제 많이 지나간 느낌이 든다.

실제로, 그런 출신들 보다도,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한, 원래의 능력과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보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과거에 우리 부모세대가 중요시하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많은 기준들이 사실 상 어떤 부분에선는 우리 세대에는 그리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경계가 허물어져가는 기준들이기도 하기에 <스카이캐슬>처럼 부모들이 가슴 졸이면서, 자식에게 자신들의 사고를 주입하고 세뇌하는 그런 처사는 어떻게 보면 자식을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태도가 될 수도 있다고 드라마를 보면서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사회에서의 그러한 능력과 재능, 그리고 리더십과 덕망, 어떤 사람들의 존경과 존중을 받는 데에는 사실 어른들이 말하고 알고 있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때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를 어떤 조건 속에서, 어떠한 출신 속에서, 어떠한 경력 속에서 우리를 평가하는 분위기가 정말 많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러한 사회 속에서 차갑게 내던져졌던 부모 세대들은 우리에게는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하나라도 더 좋은 대우 혹은 존중을 받으며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크게 대입하곤 하니, 어떤 부분에서는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바이기도 하다.


'공부'에만 함몰된

청춘들의

삶의 모습에 대하여

어린 시절에는, 사실 '공부'가 스트레스적이지는 않았다. 고등학교를 가면서는 조금, 그 중압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예전의 선조들처럼 수렵/채집을 하며 들끓는 청춘을 정글과 야생에서 보낼 수는 없으니 어떻게 보면, 감사하게 공부하는 시간을 생각하고 공부를 했던 기억도 있던 것 같다. 하지만, 공부와 잘 살아가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다. 어떤 어른들은 대게 공부를 잘해야, 잘 살아가는 어른이 된다.라고 가르침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은 공부와 잘 살아가는 능력은 연관 부분이 높은 지점도 있고, 별 상관없는 지점도 많이 있다고 느낀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선조들처럼 움직임이 많고 운동량이 많은 게 오히려 포유류인 인간에게는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생각도 든다. 난, 아침에 앉아 저녁까지 하루 종일 엉덩이를 의자와 책상에 의지한 채 앉아 있는 삶이 조금 부자연스럽고, 지루하고, 잠이 오게 만드는 생활이라는 것을 종종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침의 이른 등교시간, 끝날 것 같지 않은 야자시간 등등이 당시에는 10대이기에 버틸 만은 했지만, 때로는 산소가 얼마 남지 않아 있는 터널 속을 걷는 기분의 답답함을 느끼며 그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예전에 어른들이 말하는 '공부'라는 범 주 외에, 또 다른 새로운 분야에 대한 재능들이 사회적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한다. K-pop, K-beauty, 등의 영향으로 몇 해전부터 어린아이들 사회에서는 아이돌 & 연예인이 가장 되고 싶어 하는 직업 1위에 오르기도 하며, 어른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업과 우리들, 아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업의 기준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옛날 예전의 느낌의 공부라기보다는,  '춤, 미적 센스, 순발력'이라는 요소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한 직업 및 직종들이기도 할 것이다.


학습 동기를, '엄마에 대한 복수',

'라이벌에 대한 경쟁의식'으로

설정하는 김주영 코디에 대하여

한편, <스카이캐슬>이 상류계층이라고 불리는 가문(?)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 욕망, 열정, 그들의 속사정을 그린 드라마인 만큼, 학습 '동기'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과거에 우리는 공부 동기를 무엇으로 잡았을까? 보통 우리들의 큰 사고와 주관이 성장 중에 있을 때에는, 누군가의 칭찬을 듣기 위하여, 나의 라이벌이라고 여겨지는 사람과의 시험 경쟁에서 이겨보고 싶어서, 나의 존재의 확인을 위하여, 혹은 스카이 캐슬 드라마에서 영재처럼, 엄마에 대한 복수, 억압에 대한 최후의 합격장을 받기 위하여 등이라는 각각의 이유로 동기를 갖게 되기도 할 것이다.

김주영 코디는 드라마에서도 말한다. 우리는 선생이 아니다. 계약자의 학생과의 계약이 끝나면,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 선생 놀음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몇 차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역 설적으로 드라마에서 그의 K라고 추측되는 아이는, 공부와 공식에 강박을 많이 받아왔던 환경에 있었는지 더 이상 정삭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공부를 혼자 계속, 메모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드라마에서 접하였을 때는 김주영 코디라는 사람은 정작 최고의 명문대학에 학생들을 골인시키는 사교육계의 대모 같은 코디를 하는 사람일지언정.. 자신도 커버하지 못하는 능력 밖의 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움을 안긴다. (안타깝기도 하고, 인생의 숙명이 왜 이리도 잔인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는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어떻게 보면 10대와 20대를 크게 가르는 그, 상황에서 어쩌면 김주영 코디는 학생들의 가장 큰 욕망 혹은 동기를 만들어야 할 코치로서의 의무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떤 순수한 이들의 목표처럼 '공부는 선의의 경쟁이다'라고 말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은, 김주영 코디는 그야말로 돈을 받고 목표와 결과, 수치를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코치'였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코디를 탓할 수도 없는 것은, 이 드라마에 나오는 부모들 역시, '최고의 결과'가 나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많은 부분이 있기에, 코디에게만 100% 잘못을 묻기에도 조금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부모들의 욕망이 코디라는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냈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또 어린아이 시절에 아버지/어머니가 주입했던 그 교육 시절을 답습했던 것뿐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들.

적어도, '선생'이라면, '공부는 결국, 너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을 알게 해주는,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기 위한 어떠한 과정이다'라는 말을 아이들의 관점에서 부드럽게만 들려주었더라면, 영재는 차라리 의대 합격증이 아니더라도 다른 명문대를 선택하지는 않았을까? 예서는, 혜나를 그런 방식으로 라이벌이라고 그녀를 애증 하며, 자신 스스로를 괴롭히는 강박에 시달리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도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이다.

순수하게 공부를 좋아하고 접했던 이들이 존재했었음을, 누군가도 경쟁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을 경쟁자라고 여기며 자신이 공부를 통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필자는 공부하는 시절, 혹은 사회의 인생 선배들로부터 만나 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정말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었던 어떤 이들도 있었음을, 세상도 사회도, 그들이 개천이든 금천이든 그들의 능력 그대로 성장하고 사회에 나오기를 바라는 시절도 있었음에,...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때로는 우리의 현실이 반영된 어떤 부분이 크게 아쉽게 느껴지곤 한다. 그들의 가족 사진, 다시보니 참 슬프다.


*송븐니 나라의 송븐니 곤듀 : 공부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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