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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많은븐니씨 Feb 25. 2022

편안한 사람 원해요?

<송블리의 개똥철학> | 편안함의 기준에 대하여

편안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들은, 편안한 사람을 좋아한다. 편안한 상태에서 안정감을 얻고, 말 그대로 불편하지 않게 하는 편안함을 사람들은 많이 좋아하는 듯싶다. 조금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매일매일 불편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불안 장애 같은 심리적 문제가 생길 것이다. 또한, 심장이 너무 쪼그라 붙어, 심장혈관 질병도 남들보다 더 빨리 걸려 오래 살지 못할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편안한 상황에 우리가 있기를 원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본능은 아닐까? 에 대한 생각도 든다. 나 같아도 불편한 일/불편한 사람/불편한 상황 없이 365일이, 평범했으면 좋겠다. 그냥 그렇게 일상이 무난하게 편안한 상황들이 지속되는 것이 더 감사하다고 느끼기에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어떠한 사건으로, 어떠한 사람으로, 어떠한 상황으로 편안함을 누려도 모자랄 판인 (?) 우리들에게, 불편하고, 해결해야 하고 처리해야 할 것들이 종종 다가오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 불편함이 정말 너무 사람을 무너지게 만드는 수준의 인생의 슬픈 일만 아니라면, 그래도, 적당한 삶의 긴장감과 도전정신, 설렘 같은 것들을 불러일으켜 주는 불편함의 정서도 아주 가끔 반갑게 느껴지기는 한다.


스트레스 같은 것도, 너무 강도가 높으면 위험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적당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측면에서 유익한 점을 지니고도 있으니, 편안함도 너무 강도가 높으면 사람이 묵처럼 퍼지게 되므로, 적당한 불편함도 우리 삶에서 어쩌면, 또 다른 도전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유익한 점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지에 대한 생각도 든다.


편안한 사람, 불편한 사람 따로 있을까?

나는,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함께 있을 때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이든, 지인이든, 동료이든 나를 편안하게 대해주고 위압감 없이 먼저 다가와 주는 사람이 기억에 많이 남고, 그런 사람에게 마음이 열린다. 그리고, 책에서도, 방송 프로그램의 어떤 말들에서도, 사회 속 어떤 이들의 대화 속에서도 "편안하게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 되자~!"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몇 번 하다가도, 구김살 없고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먼저 다가와서 오늘의 일상도 물어봐주고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크게 싫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기분 좋은 기억으로, 추억으로 생각되고, 편안한 사람이라는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사람이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편안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편안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게, 뭐 그렇다고 먼저 인사 안 하고,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고, 위압감을 조성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어쩐지 표정에 기분 좋은 티/ 기분 싫은 티/ 그날의 기분 같은 것들이 얼굴이 다 티가 나는, 감정을 못 숨기는 솔직한 성격의 나는, 그리 편안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 많이 든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 다는 것이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참 부럽다고 느껴진다.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타인에게 조금 무던하게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함을 갖춘 사람들이 정말 내가 닮고 싶어 하는 성격의 사람들 중 하니 말이다. 그래도, 조금 편안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의 입장으로 한 마디만 하자면.. "불편하게 하는 것도 능력일 수 도 있오.."인데, 너무 변명같이 들린다. 어찌 되었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 조금 각 잡힌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들은 그 캐릭터에 맞는 본인의 역할을 상황에 맞게 잘 대응해 나가길 응원한다. :>


캐릭터를, 개성을, 그 사람만의 색깔을

살리는 것이 가장 편안한 상태 아닐까?

편안하다는 편하고, 걱정 없이 좋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다. 나에게는 무언가 흐트러지지 않는 갖춰진 상황이, 때로는 너무 퍼져있는 상황보다는 조금 각 잡히고 격식 있는 것들, 먼저 다가오진 않더라도 그 사람의 철학으로 먼발치에서 나에게 다가와 주는 사람들, 그런 것들이 편안함이라고 느껴진 적이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말 '편안하다'라는 것의 기준도 사실은 사람마다, 문화마다, 사회마다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말이 없고 내성적인 사람은 그 사람대로만의 개성과 성향이 매력적인 것이고, 그러한 점을 우리도 인정할 때에 우리는 서로가 편안하지는 않을까?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칼바람 불 것 같이 정이 없어 보이는 어떤 사람 역시, 알고 보면 츤데레처럼 알게 모르게 자신의 마음을 적당한 속도와 온도로 표현하는 캐릭터와 색깔을 서로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것들이 편안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지는 않을까?

, 우리가 말하는 '편안한 사람'이라는 것의 정의를 내리기는,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질문 같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과 주관, 문화와 사회에서 자라난 것은 아니기에 말이다. 또한, 일반적인 '편안하다' 의미도 내게는 조금 심도 있는 깊은 범위까지 적용되어, 나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아도  사람만의 철학과 캐릭터가 있다면, 나는  사람이 '불편한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기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편한 사람'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도   주말에 조금 깊은 고민을 해보고자 한다. 블리가 이해하는 편안함의 의미를 독자분들도 관심 있게 함께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작은 바람을 갖고 오늘의 글을 마친다.


불 편한 게 편할 때도 있어서..

-송블리의 개똥철학​​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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