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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Sep 03. 2021

'위로'라는 것에 대하여

송블맇의 말말말 l 공감과 위로 : 참여와 바라봄의 미학

누가 누굴 위로해? 내 코가 석자인데 말이야.

사람들은 힘든 일을 당하면 자신의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위로를 받고 공감을 얻고 싶어한다. 그 힘든일과 마주한 슬픔에 따라서 위로의 방식과 차원도 각양각색이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힘들어 하면 보통 두가지의 마음을 지니게 된다. 한 가지는, 그 사람이 안타까워 그 일이 잘 해결되고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를 바라는 선한 마음일 것이다. 한 가지는, 평소에 그 사람이 다소 얄미웠다거나 미워했던 상대방이었다면 그 힘든 일이 물론 안타깝겠소만은, 우리가 흔히 잘 사용하는 표현인 '꼬숩다'라는 마음의 감정도 들 것이다. 그리고, 특이 사항에 따라서는 위의 두 사항에서 제외되는 또 다른 감정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위에서 언급한 '꼬숩다'라는 다소 비겁하고 나쁜 마음의 위로의 마음이 새싹을 틀까봐 어떤 사람의 힘든 일을 감정적 공감을 하면서도, 직접적인 '위로'의 행동에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내가 "그래,힘내! 다 잘될거야."라고 말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너가 그렇게 평소에 얄밉게 행동했으니, 그런 일쯤은 별거 아니야. 라는 이중적인 모습의 위로가 될까봐서 말이다. 그래서, 위로차원에서의 "힘내"를 많이 해본 적은 없다. 그냥 조심스럽게 "이러한 문제들은 잘 해결될 거야.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마"라고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그 사람의 슬픔을 바라보고 공감한다.


이렇게 비겁하고 나쁜 마음을 조금 상쇄시키고자 하는 나의 쪼잔한 위로 방식에는 내가 누굴 위로할 만큼 인생이 잘 풀린 사람도 아니다. 말 그대로 "내 코가 석자인데, 누가 누굴 위로하겠는가?"하는 점도 많다. 그래도 위로를 바란다면 성심성의껏 해드리고 싶다. 나의 속도와, 거리와, 소신에 맞는 그 사람을 위한 위로. 그래서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힘과 응원의 메시지를 듣는다면 선한 마음의 위로이든, 나쁜 마음의 위선적인 위로이든 그 위로의 힘을 얻어서 다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행복하고 기쁜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시간에 좋은 생각을 하는게 어때? l 고민에 대한 대답과 위로의 방식

언젠가는 내가 아주 힘든 인간관계에서 오는 서운함에 대하여 가족들에게 의논을 할 적에 일이다. 나의 상황과 그들의 상황의 충돌에서 오는 문제였기에 혼자 마음속으로 삭히기 보다는 어떤 누군가의 위로와 공감을 얻고 싶어서 말하게 된 고민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저런 서운함과 슬픔, 그 상황이 정말 나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나의 고민의 어리광에 "그 시간에 좋은 생각을 하는 게 어떠니?"라는 다소 서운한 답변의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좋은 생각을 하지 못해서 이 고민을 늘어놓는게 아니라, 그 서운함을 알아달라는 마음의 아픔에서 시작한 나의 고민을 저렇게 한순간에 물 가르듯 베어버리는 표현을 들었을 때 '위로'라는 방식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보았다.


물론 그 가족은 나를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이다. 평소에도 많은 조언과 따뜻함으로 대화를 즐겨 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떨 때에는 저런 사소한 말 한마디가 상처로 크게 다가온다. 특히 내가 감정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 들었던 말은 그 아픔이 배가 되서 다가온다. 내가 평소에 많이 의지하고, 나를 아낀다고 생각해서 저 분은 나를 끝까지 이해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온전히 100% 이해받지 못했다는 그 느낌을 받았을 때에는 감정이 많이 상하게 된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라는 속담에 걸맞게, 위로해주는 사람의 마음은 생각도 안하고 되려 상처가 되고 위로를 해준 사람이 밉기까지 한 감정이 들기도 하였으니, 참 쪼잔한 성격이기도 하다.


힘이 드는 상황에서는 내가 전적으로 이해받고 싶은 마음 l 어린아이의 마음일까?

어찌되었든, 사람마다 위로와 공감을 얻는 방식은 다양하고 위로와 공감을 하는 방식도 제각각 다양할 것이다. 내가 원했던 위로의 메시지가 아니라고 해서, 내가 바랐던 한마디가 아니라고 해서 나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했던 누군가를 애써 미워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또 한 명의 적을 만들고 미움의 대상을 만드느니, 정말 그 말처럼 좋은 생각을 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탓하기 이 전에, 내가 정해진 답을 얻기 위하여 고민을 논하려고 했던 나의 좁은 사고와 어린아이같은 마음을 조금 넓혀야 겠다는 생각을 들었다.


그래도 감정적으로 힘들 때에는 참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내가 전적으로 이해받고 싶은 투정섞인 마음이 든다. 나의 힘듦과 고통, 괴로움과 슬픔을 그 사람도 나와 같이 공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된다'는 말처럼 내 슬픔의 크기를 줄이기 위한 심리적 기대였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공감능력이 있고 위로를 잘 해주는 따뜻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게 진심이든, 지나가든 말이든, 위로의 말 한마디에는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선한 마음에서 그 사람이 정말 다시 행복과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라면 더 좋다고 생각하며, 오늘은 '위로'와 '공감'에 대한 감정을 생각해보았다. "위로해주는 그 사람, 너무 미워하진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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