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한 태도

이 일을 왜 선택했는가,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by 송예찬

이동진 평론가님이 일에 대한 태도를 주제로 진행하신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여러 부분에서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었는데 특히 일을 선택하는 관점과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준에 대해 특히나 많이 생각할 거리들이 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영상을 보고 내용의 요약과 생각을 정리했다. (원본 영상)




1.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이야기는 쉽게 실행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아는 말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동진 평론가님은 "잘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행복할 확률이 높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도 굉장히 타당하다고 느껴졌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욕망은 변하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은 변한다. 10년 전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려보면 이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 있다. 한때는 밤새워도 지치지 않을 만큼 좋아했던 일들이 어떤 이유에서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조차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반면 '잘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이고 지속적이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는 성과로 증명되고, 타인의 평가로 확인된다. 그리고 잘하는 일은 대부분 좋아하게 될 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이유는 단순히 성공이 주는 아웃풋 때문만은 아니다. 일을 마치고 난 뒤의 성취감, 동료들의 인정, 고객의 감사,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는 기쁨 -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좋아함'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낸다. 즉, 잘하는 일을 선택하면 좋아하는 일까지 부수적으로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잘하는 일 또한 명확하게 인지하고, 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충분한 고민이나 경험이 있다면 좋아한다는 변동성 높은 기준보다 훨씬 측정하능하고, 고민과 시행착오를 덜어줄 수 있는 좋은 기준이라고 생각된다.




2. 워라밸의 역설


반갑게도 이동진 평론가님도 워라밸이라는 단어 자체가 모호한 단어라고 생각하는 분 중 하나였다. [워라밸]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일과 삶 간의 밸런스를 맞추는 삶을 뜻한다. 그런데 이 단어의 가장 큰 맹점은 '노동은 삶이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둔다는 것이다. 9 to 6를 철저하게 지킨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8시간, 일주일에 40시간을 일에 소모한다. 그 시간을 모두 '돈 버는 시간', '견디는 시간'으로만 치부한다면, 우리 삶의 절반은 의미 없는 시간이 되어버린다.


흥미로운 것은 노동의 라틴어 어원은 LABOR라고 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걷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미 한참 이전의 세대에서부터 노동은 본질적으로 힘든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힘들기 때문에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더라도 그 속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정신승리, 떨어지는 동기를 높이기 위한 다짐이 아니다. 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통찰이다. 월요일 아침마다 느끼는 그 무거움, 금요일 저녁에만 찾아오는 해방감을 기다리는 삶이라면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쉬운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일을 삶의 적으로 만드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 아닐까?




3. 갑옷을 만드는가, 화살을 만드는가


이동진 평론가님이 맹자의 비유를 인용한 부분이 너무 인상 깊었다. 원문을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못하겠는가마는, 화살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해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해칠까 두려워한다. 무당과 관(棺) 만드는 목수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직업(職業)을 선택함에 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갑옷이 튼튼하지 않아서 사람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경우를 걱정한다. 반면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화살이 날카롭지 않아서 죽이지 못하게 될 경우를 걱정한다. 그렇다고 화살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거나, 갑옷을 만드는 사람에 비해서 인성과 성품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다른 조건들도 동일하고 같은 '만드는 일'을 하지만, 그 지향점은 정반대다.


나도 PM을 하면서 고객중심, 문제해결, 가치전달을 고민하고 되뇌이지만 한 번도 직업 윤리나 최소한의 기준을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보호하고 도우는 일인가, 아니면 해를 끼치는 일인가? 이동진 평론가님은 이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며 직업 윤리를 지키려 노력한다고 했다.


정말 범죄자가 아니라면 이는 단순히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매출 목표에 매몰되어, 성과와 경쟁에 휩쓸려, 혹은 일상의 루틴에 갇혀 우리가 만드는 것이 갑옷인지 화살인지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다. 직업 윤리의 하한선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내가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자각하는 일인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살아가는 것도, 잘하는 일을 하면서 점점 좋아하게 되는 것도 다 각각의 다른 방법일 뿐이다. 일과 삶을 분리해서 살아가는 것도,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내가 정말로 고민하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질문해서 내린 선택이냐는 것이다. 내가 만족하고, 인정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결국 일에 대한 태도는 삶에 대한 태도와 다르지 않다. 나에게 완벽한 직업도, 완벽한 워라밸도 없다. 다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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