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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r 22. 2016

영국에서 가장 포위가 많이 됐던 성, 에든버러 캐슬

공주, 왕자가 사는 성이 꼭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옛날 옛적 먼 시대에 왕과 왕비, 공주와 왕자가 아름다운 성에 살았어요. 그 성이 어땠냐면은...”


그 성이 어땠을 것 같냐면...


사방은 푸른 숲으로 둘러 쌓여 있고 높다란 벽돌 건물이 몇십 개씩 늘어져 붙어 있었는데, 그 끝에는 슈크림을 짜 놓은 것 같은 어쩌면 고깔 모양의 지붕이 예쁘게 얹어져 있을 것 같았다. 성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좁고 기다란 돌다리가 연결돼 있겠지? 내 머릿속에 있는 성, 궁전은 대부분 월트 디즈니 만화에서 나온 것이니까 꼭 그랬을 것만 같았다. 화려하고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한 곳들. 하룻밤만 묵어 봤으면 하는. 유럽 여행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블로그에 쏟아 놓는 사진 속 성들처럼 말이다.


에든버러 성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넘치는 에든버러 로열 마일에 갔다. 유명 관광지에서 아침 9시는 일상과 여행이 범벅된 풍경을 펼쳐 놓는 시간이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도 50만 명은 되는 거니까. 정장 빼입고 출근하는 사람들과 버스·자가용 행렬, 짐을 한 가득 싣고 가는 트럭 같은 일상의 모습에 이른 아침부터 도르르 가방을 끌며 지도를 들고 다니는 여행객, 전날 밤 쓰레기까지 한데 합쳐진 거리는 오묘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로열 마일에 있는 스타벅스


햇살이 좋았다.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며 로열 마일이 여행의 거리가 되기를 기다렸다. 나는 거주자와 여행자 사이 어디쯤 애매한 위치에 서서 에든버러 성을 올라갔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입장료가 다소 비싼 편(27,000원 정도)인데 올 6월까지는 <Historic Scotland Membership>이라는 연간 회원권이 있어서 언제든 갈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에 있는 에든버러 성을 처음 봤을 때 그건 내 머릿속 성과는 영 딴판이었다. 3억 5천 년 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회색빛 바위 캐슬락 위에 자리한 황톳빛 성은 동화처럼 예쁘다는 느낌보다는 “고 놈 참 단단하게 생겼다”는 인상이 먼저 들었다. 궁(palace)과 성(castle)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궁은 평화로운 시기에 왕족이 살던 곳이고 성은 거주와 함께 방어의 목적이 도드라진 곳이다.  



에든버러 성은 군사적 요새로 쓰였기 때문에 화려함보다는 튼튼함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발고도 120m의 바위 위에 지어진 성은 화려함 대신 기품과 위용이 흐른다. 영국의 성 중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성이라더니 아침부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The Argyle Battery - 에든버러 성에는 대포가 많다. 지금은 사용할 수 없으나 과거 군사 요충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대포는 신시가지를 향해 있다. 저멀리 바다가 보인다. 적군이 처들어와 이 대포를 쏘아야 했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함께 망가졌을 것이다. 끔찍한 일이었겠지.


The One O'clock Gun -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대포다. 요즘도 매일 한 시에 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Mons Meg - 이것이 만들어졌을 때 (1449년) 세상에서 가장 크고 힘이 셌다는 대포다. 


중세 시대 (12-16세기) 스코틀랜드 왕과 왕족은 실제 에든버러 성에 살았다. 포크랜드 성이나 스털링 성, 린리스 궁, 수도원 등에서도 살았는데 12세기와 13세기에는 에든버러 성이 주요 거주지였단다. 알렉산더 3세(1249-86)는 스코틀랜드를 독립적이고 부유한 왕국으로 만든 왕으로 잉글랜드 헨리 3세의 딸 마거릿과 결혼했다. 그런데 마거릿은 에든버러 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던 기록이 남아 있다는 걸 보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캐슬 락 위의 에든버러 성은 전혀 화려하지도 않고 
푸른 나무 하나 없이 슬프고 외로운 곳이에요.


아름다운 정원 하나 없이 대포만 보며 살았을 왕비, 공주들을 위해 성을 좀 더 멋지게 지었어도 좋았으련만 영국의 역사는 그렇게 놔두질 않았다. 에든버러 성은 잉글랜드와의 격렬했던 투쟁의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영국이라는 국호로 묶여 있지만 두 나라는 민족, 문화, 언어 등 정체성이 매우 다르다. 잉글랜드와 합병을 한 것도 18세기가 되어서의 일이다. 대부분 유럽의 역사가 그러하듯 과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계속해서 싸우고 지지고 볶았다. 


군사가 강했던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 쳐들어온 적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14세기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때부터 1745년 자코바이트* 반란으로 성이 공격당했던 시기까지 이러저러한 역사적 갈등에 연루되어 에든버러 성은 툭하면 포위되고 공격을 받았다. 2014년에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자면 에든버러 성은 영국에서 가장 포위가 많이 되고 (최소 26회 이상), 세상에서 가장 공격을 많이 받은 성 중 하나라 한다.  


*자코바이트: 스코틀랜드에 스튜어트 혈통의 왕가를 복위시키고자 했던 영국의 정치 세력


Scottish National War Memorial


Scottish National War Memorial 앞을 지키고 있는 사자상


심지어 1314년에는 왕이 직접 에든버러 성을 부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로버트 브루스* 왕은 당시 스코틀랜드를 잉글랜드로부터 독립시켰는데 잉글랜드가 다시 성을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아니, 이렇게 화끈한 왕을 보았나!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지만 성을 탈환하여 독립하기 직전까지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가 에든버러 성을 점령한 뒤 18년 간 요새로 사용하였다니 재점령하기가 무척 쉬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성은 20여 년 간 폐허로 남아 있었고 지금의 에든버러 성은 그 후 다시 지은 것이다.


*로버트 브루스 왕: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 나왔던 바로 그 브루스! 보신 분들 참조하세요.


St Magaret's Chapel


로버트가 성을 부수라고 명령했을 때 딱 한 곳만은 예외로 두었다. 성 마거릿의 예배당이었다. (위 사진) 이 마거릿은 위에서 언급한 헨리 3세의 딸과는 다른 마거릿이다. (왕족들 이름 참... 헷갈려 죽겠다!) 1130년에 데이비드 1세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예배당만은 남겨둔 덕택에 이 건물은 에든버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는 영예를 안고 있다. 역시 외관은 좀... 투박하다.   


St Magaret's Chapel의 내부는 매우 좁다. 사진에 보이는 공간이 전부다. 


The Great Hall - 왕과 귀족들의 연회가 열렸던 곳이다.  



에든버러 성은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태어난 곳을 비롯해 왕들이 살았던 곳, 국립 전쟁 기념관 및 박물관, 군인 감옥, 전쟁 감옥 등 볼거리가 많다. 또 영국 왕실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던 돌 받침(The Stone Of Destiny)이나 스코틀랜드의 명예품들(The Honours Of Scotland)과 함께 그에 얽힌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첨예한 대립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슈크림 모양의 지붕은 없지만, 형형색색 찬란하진 않지만, 스코틀랜드와 에든버러의 참모습을 보기에 가장 훌륭한 장소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계 각지에서 밀려드는 여행객들을 헤치고 성문을 나왔다. 나는 한창 영국의 중세 시대를 허우적거리다 빠져나왔는데 그들은 어떤 모습을 담아갈게 될까. 뭐, 거창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높은 성에서 바라보는 에든버러 시내 전망은 끝내주니까. 어스름히 가로로 놓여 있는 바다 풍경 벗 삼아 바람 한 자락 맞으며 잠시 여행의 피로를 내려놓아도 좋을 일이다. ■




* 참고자료: 

(1) Edinburgh Castle Official Souvenir Guide

(2) History of Scotland

(3) https://en.wikipedia.org (Edinburgh_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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