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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Jun 02. 2016

'빌리 엘리어트' 배경을 엿보다
더럼 비미쉬 박물관

폐광촌의 놀라운 변신

오늘의 퀴즈. 점점 설 곳을 잃어가는 광부 아버지와 발레를 하고 싶었던 아들의 갈등·화해를 통해 아들의 꿈을 찾아가는 영화 제목은? 두구두구~ 빌리 엘리어트? 정답!


영국 와서 '빌리 엘리어트'를 한 번 더 봤다. 워낙 마음에 남는 영화였는데 배경이 영국이라니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감동스러운 장면이 많지만 영화 막판 주인공 빌리가 백조의 호수 공연 중 흰 깃털 의상을 입고 하늘로 뛰어오르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울컥한다. 그걸 바라보는 백발 광부 아버지와 형의 뿌듯한 표정이 겹쳐질 때면 어후, 가슴속에서 뭉클뭉클한 게 출렁이다 못해 넘쳐 버릴 지경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부분


영화의 배경 장소는 쇠락해가는 탄광촌, 시대는 1980년대 중반. 실제 영국 정부는 이 시기에 경쟁력 떨어지는 제조업 등의 산업을 과감히 정리했단다. 탄광을 비롯한 여러 산업을 폐쇄하려는 정부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이 이어졌던 때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산업은 구조조정되고 영국의 모든 탄광은 문을 닫아야만 했다.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은 에버링톤이라는 가상 마을이지만 실제로는 영국 잉글랜드의 더럼(Durham)과 뉴캐슬(Newcastle) 등에서 찍었다고 한다. 빌리가 바닷가를 등지고 뛰던 언덕이 있는 곳은 더럼의 이싱톤(Easington Colliery)이라는 옛 탄광촌이다. 과거 더럼은 탄광이 주요 산업이었던 도시였다. 한때는 17만 명이나 되는 광부가 일을 했다는데 지금 그들은 무얼 하고 있을는지.






영국 탄광은 모두 폐광되었지만 잉글랜드에 있는 '비미쉬 야외 박물관'에 가면 탄광 산업이 한창 활발했던 시절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야트막한 산과 들, 빼곡한 나무로 둘러 쌓인 비미쉬는 더럼과 뉴캐슬 사이에 있는 곳이다. 무지 넓은 땅(37만 평!)에 영국 최초로 야외에 지어진 박물관이다.


비미쉬 박물관은 마을 전체를 20세기 초 산업화 절정시기 영국 북동부의 탄광과 도시, 농촌의 일상을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그 덕에 표를 끊고 박물관 풀밭에 첫 발을 내딛는 모든 사람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뿅! 하고 100년 전, 200년 전 영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더불어 그 시대 집과 상점, 농장, 학교, 물건, 심지어 사람들까지! 이곳은 환상의 공간이다. 유리관 안의 전시물을 둘러보는 박물관 개념은 저만치 치워두길.  


자 브런치 독자들이여, 마음의 준비를 다 하셨나? 하나, 둘, 셋 뿅!



이제 여기는 영국 빅토리아 후기와 에드워드, 조지안 시대. 우선 박물관에 들어서면 어디서부터 볼지 정해야 한다. 37만 평의 땅에 띄엄띄엄 시대별(1820년대, 1900년대, 1940년대 등), 주제별(탄광촌, 타운, 농장, 기차역 등)로 펼쳐져 있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다가는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기 십상이다.  


걸어 다녀도 좋을 일이지만 박물관 구석구석을 다니는 무료 트램(전차)과 버스는 꼭 타봐야 할 필수코스다. 위 왼쪽 사진 속의 것은 무려 1901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100년 전 트램이라니! 두 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2층에 올라가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시원. 나는야 오늘 하루 영국 부인~!


 비미쉬 박물관 - 1900년대 마을 전경


비미쉬 박물관 - 교회가 있는 1820년대 마을 풍경


먼저 1900년대의 탄광으로 가볼까.

 


이곳은 실제 더럼 석탄 매장 지대의 심장부 중 하나였던 곳이다. 석탄산업이 한창 잘 나갈 때는 더럼과 노벌섬랜드럼에서 캐는 석탄량이 영국 전체의 1/4이었다고 하니 우리나라로 치면 정선, 태백 같은 곳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1900년대 초기에 이곳 광부들은 돈을 많이 받았다. 임금은 농업 종사자들의 2배였단다. 농업은 이 지역에서 탄광업 다음으로 큰 산업이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받는 만큼 광부는 위험한 직업이었다. 1913년에는 평균적으로 5분에 한 명씩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고임금을 받으면 무엇하랴,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 일인 것을. 그 해 1,000명이 넘는 광부가 목숨을 잃었단다.   



비미쉬 박물관에서는 광부 옷차림을 한 직원의 안내에 따라 탄광의 일부를 체험할 수 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1855년 문을 열었던 탄광이다. 탄광 안은 축축하고 어둡고 비좁았다. 키가 작은 나도 허리를 꽤 깊이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탄광 입구에서 옛 광산 노동자들의 노고를 생각했다. 매일 아침 검은 구멍을 따라 땅 속으로 들어갈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집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힘을 냈겠지? 오늘 하루도 무사하길 바라며. 


캐낸 석탄을 분류 작업하던 광부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이 집은 광산 노동자가 살았던 사택 중 일부이다. 2층으로 된 타운하우스인데 1층엔 대개 거실 기능을 포함한 노부모의 방(윗 사진)과 부엌이 있다. 사택에서 살 수 있었다면 무척 좋았을 테지만 광부가 다치거나 죽어서 일을 할 수 없으면 바로 집을 내놓아야 했다고 한다. 돈벌이도 줄었을 텐데 집에서마저 쫓겨나야 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보금자리 안정은 중요한 문제다.    


1900년대 시내 거리


비미쉬 박물관이 진짜 매력적인 건 직원들이 당시의 옷을 차려 입고 박물관 곳곳에서 20세기를 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농가에 가면 농부의 아내가 집에서 빵을 만들고 있고 은행에 가면 은행장이, 상점에 가면 점원이, 학교에는 선생님이 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설명도 해주고 질문에 답하기도 한다. 타임머신 한 번 제대로 탄 기분이다.


식료품을 파는 상점 - 100년 전 제품 포장이나 광고 포스터는 신기하기만 하다



1900년대 거리에 있는 스위티 샵에 가면 사탕을 만드는 과정(왼쪽)도 구경할 수 있고 직접 살 수도 있다(오른쪽). 수십 가지나 되는 사탕 중 한두 개를 골라야 한다는 것, 사탕 하나 사려면 건물 밖으로 늘어선 줄을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게 곤욕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지나칠 순 없는 노릇이다.

 


박물관을 돌다가 배가 고파지면 영국의 대표 음식 피시 앤 칩스를 사 먹으면 된다. 옛날 방식 그대로 석탄으로 장작불 떼서 생선과 감자 요리를 만든 다음 종이에 싸서 주는데 맛이 끝내준다. 관광객이 많은 여름 철에는 한 시간 이상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잠시 공원에 앉아 쉬고 있는데 피켓을 들고 20세기 방식으로 시위를 하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찬성팀과 반대팀이 있다. 시위 내용이 재밌다. 두 부류의 여성들 중 한 곳은 “여성들의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것”이고 또 한 곳은 “참정권 반대”다. 관광객 모두가 피켓에 담긴 구호를 보고 웃음을 짓는다. 시위를 하던 직원들은 아이들에게 과거 여자들이 선거를 할 수 없었던 시절을 이야기해준다.

       

그러고 보니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게 된 건 100년 안팎의 일이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애를 썼을까.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루어지는 법은 없는가 보다. 



탄광 마을이었던 만큼 놀이동산의 회전목마는 증기로 운행하고 있었다. 지붕 위로 하얗게 피어오르는 증기를 보고 있자니 “오~”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일반 회전목마보다 조금 느리게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푸른 하늘 위로 피어오르는 증기는 영국의 100년 전 삶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영국 전통 방식으로 빵을 만들어 굽고 있는 여성 (사진출처: www.beamish.org.uk)


비미쉬 박물관을 여행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에 이런 박물관을 짓는 거다. 배경은 1900년대 초반? 길거리 국밥집에서 국밥도 먹어보고 천 가게에서 비단 구경도 하고 엽전 내고 무성영화 관람하고. 한 편에선 개화운동을 하는 사람들, 다른 한 편에는 옛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고 누가 옳은지 투표도 하는 거다. 재미도 있고 교육적으로도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할 무렵 박물관은 오후 5시가 되어 폐장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틀을 꼬박 돌아도 시간이 모자랐던 비미쉬 박물관. 이곳에서 나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빌리 아버지의 선배들이 일했을 탄광을 살짝 엿보며 영국 역사와 삶을 배웠다. 좋든 싫든 내가 살아내야 할 나라, 영국의 일부를 경험하고 배웠다는 건 작은 걸음일지라도 앞으로 나아간 느낌이다. 아직은 영국 살이가 만만치는 않지만 내 삶이 언젠간 백조의 호수 속 빌리처럼 힘차게 도약하기를, 잊힐 뻔했지만 새롭게 태어난 비미쉬처럼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은 지난해 여름의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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