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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낮잠

그 시절 엄마 나이가 되고 나니 알게 된 것들

by 영글음

어릴 적, 초등학생 땐 엄마가 낮잠을 자는 게 싫었다. “피곤하다. 낮잠 좀 자야겠어.”라며 엄마가 안방에 자리를 깔고 누우면 갑자기 모든 게 멈춘 것 같았다. 집 안 공기 속에 아득한 정적이 내려앉았고 그럴 때면 세상에 혼자만 덩그마니 남겨진 것 같은 기분마저 들곤 했다. 엄마가 사라진 것도 아닌데, 바로 저쪽 방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을 뿐인데, 내가 “엄마”하고 깨우면 금세 일어날 텐데 왜 그렇게 싫었을까.


엄마가 낮잠을 안 잔다고 놀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혹여 놀 사람이 없었나? 아니다. 두 살 터울 동생과 나는 늘 인형, 블록 등을 가지고 같이 놀았다. 한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도 수두룩했다. 엄마가 일어나 봤자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숙제는 다 했니? 방 좀 치워라. 동생하고 또 한 번 싸우기만 해, 한 대 씩 맞을 줄 알아! 그런데도 나는 엄마가 납작하게 누워 있는 게 정말 별로였다.


두어 시간 후 엄마 목소리가 다시 집안에 울려 퍼지면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마음이 즐거워졌다. 당시엔 어렸으니까 엄마도 집안일하다 보면 피곤하겠지, 낮잠이 필요하겠지 따위의 생각은 하지 못했다. 몇 년 간 사우디며 리비아로 장기 해외출장을 간 남편 때문에 혼자 두 딸을 키워야 했으니 어찌 그렇지 않았겠는가....... 마는, 그거야 철들고 나서 든 깨달음이고 그땐 잠든 엄마가 얼른 일어나기만을 바랐다.




봄방학이다. 영국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사이에도 길고 짧은 방학이 여럿 있는데 지금이 그중 하나다. 오전 10시, 학교 안 가고 집에서 뒹굴고 있는 두 딸에게 낮잠을 자겠다고 선언했다. 새해를 넘기고 보니 한 살 더 먹은 것 티 내느라 그런지 쉽게 지치고 나른해진다. 눕고만 싶다. 침대로 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렸다. 무게감 없는 오리털 이불이 사뿐히 몸을 감쌌다. 빛이 들어오는 창에서 고개를 돌린 채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래 이 맛이야, 일탈이다! (낮잠을 일탈이라 여기는 내 빼곡한 일상이여! 브라보!)


의식과 무의식이 반복되는 어느 지점에서 두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낮잠 자라’고 시크하게 대답한 12살 첫째 딸의 얼굴과 ‘옹옹옹’거리며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빛으로 깜빡거리던 7살 둘째 딸 얼굴. 조금만 자고 일어나 아이들과 쿠키를 만들어야지.......


문과 문 사이, 공기와 공기 사이로 아득하게 소리도 들려왔다. 도란도란 두 아이가 만들어내는, 내용을 알아차리기엔 조금 멀리서 들려오는 말소리, 한 음 한 음 눌러가며 플롯을 연습하는 소리, 끝도 없이 반복되는 콧노래 소리. 예쁜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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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언제 일어날 거야? 이젠 나랑 놀자!”


기다리다 못했는지 둘째 딸이 방문을 벌컥 열고 따지듯 깨웠다.


“...... 어, 이제 일어날 거야......”


“언제? 지금?”


“...... 어, 아니 10분 후에....... 아래층에 내려가 있어....... 엄마도...... 갈게.......”


이런 대화를 몇 번 반복했다.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 걸터앉자 둘째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꿉놀이를 차려 내게 가져왔다. 나무로 된 커피 잔과 케이크. 엄지 손가락만 한 장난감 티스푼을 내 손에 쥐어주고 한 잔 하란다. 후룩 마시는 시늉을 했다. 딸은 입을 귀에 걸고 웃었다. 이 아이는 먹는 시늉을 해줄 엄마를 얼마나 기다린 걸까. 어린 시절의 나처럼 정지된 것 같은 세상에서 혼자 헤매고 있진 않았을는지. 읽던 책을 한 손에 든 첫째 딸도 빼꼼히 방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뭐라도 신나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희망에 찬 표정이었다.


대체 엄마란 존재가 뭐길래 낮잠에서 깨어난 내 옆으로 이 아이들은 모여드는 것일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엄마"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삶의 무게가 느껴져 코 끝이 시큰해졌다. 우리 엄마도 나와 같았을 테다. 두 딸이 있어 행복했겠지, 하지만 어깨가 무거웠겠지. 고단한 일상에 잠시 눈을 붙였던 낮잠은 꿀맛이었겠지. 잠에서 깨면 힘을 내 다음 일상을 살았을 테지. 그랬을 테지. 나 어린 시절의 우리 엄마 나이에 지금 도착하고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보여서.


오후 커피 한 잔 마시고 아이들과 쿠키를 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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