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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일기장에 담긴 진실

왜곡된 기억의 실체와 마주하다

by 영글음

나에겐 사춘기가 없었다. 남들은 세상을 고민하고 부모에게 반항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고도 하는데 나는 그런 것 하나 없이 청소년기를 지나왔다. 무난하게, 굴곡 없이, 행복했던 것 같다. 사교적이라 친구가 많았고 공부도 그럭저럭 하는 편이었으니 엄마에겐 나름 키우기 쉬운 딸이었을 것이다. 요즘 떠도는 ‘중2병’ 그런 단어는 멀게 느껴진다. 나는 안 그랬으니까. 인터넷 신조어 쓰면서 욕하는 중학생들, 정말 무섭다.


며칠 전 한국에서 택배가 왔다. 엄마가 보냈다. 모두 일곱 상자였다. 8년 전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날 때 우리는 가지고 있던 짐을 다 가져갈 수가 없었다. 그때 엄마에게 맡긴 짐들이었다. 남편 공부가 끝나면 다시 돌아갈 줄 알았기에 엄마는 그것들을 보관해 주었다. 우리가 영국에 살기로 마음을 먹자 짐들은 우체국 택배 상자에 담겨 바다 건너 제 주인에게 날아왔다.


상자를 모두 여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남편과 나의 각 단계별 졸업 앨범, 결혼 앨범, 첫째 딸 돌 사진 하며 다 늘어났을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어릴 때 친구들에게 받았던 편지들까지 추억이 방울방울 쏟아져 나왔다. 내가 만들었던 기관지, 잡지, 사보 같은 인쇄물....... 짧았던 10년 사회생활의 일부....... 그립고도 아련한 시절로 돌아가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가 불현듯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이 있었다.


25년전일기장영글음.jpg 중‧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


장미의 향기? 그것은 일기장이었다. 촌스러운 표지에 열쇠는 사라지고 훅만 남은 일기장을 비롯해 4권이 나왔다. 이것은 결혼 전부터 보관하기만 해서 마지막으로 읽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일기는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 초반까지의 이야기였다.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갔다. 7할은 남학생 이야기였다. 내가 짝사랑했던 남학생, 나를 혼자 좋아했던 남학생, 때론 아무리 들여다봐도 누군지 알쏭달쏭한 이름도 있었다. 웃기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했다.


그런데, 낯선 화자가 들어 있었다. 처음 보는 것 같이 생소한 그 화자는 25년 전 일기장 속에서 내가 아닌 것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건 내 일기가 맞는데 넌 누구니? 하고 묻고 싶었다. 친한 친구를 질투하고, 엄마에게 화가 나고, 아빠에게 실망하고, 죽고 싶고, 울고 싶어 하는 어떤 청소년이 거기에 있었다. 아닌데. 난 늘 초긍정녀였는데. 우선 가장 놀라운 건 이 부분이었다.


1991년 8월 9일

내가 예비숙녀로서 지켜야 할 것들
첫째, 욕을 하지 않는다. 둘째, 삐치지 않는다. 셋째, 공부를 열심히 한다.


욕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전까지는 욕을 했다는 뜻이다. 이 아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예비숙녀라는 표현도 기가 찰 노릇인데 욕을 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혹시 어느 누군가는 욕하는 나를 보고 "요즘 애들 무섭다"며 혀를 찬 건 아닐까? 몇 장 후 나는 직접적인 욕을 써가며 특정 대상을 향해 원망을 퍼붓는 글을 발견했다. 발음이 아주 센 단어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왔다. 차마 이곳에 옮기진 못하겠다.


FullSizeRender.jpg 빼곡히 적은 일기 - 글씨체는 지금보다 더 예쁘다


25년 만에 마주하는 내 사춘기의 단면을 몇 구절 공유한다.


1991년 2월 25일

드디어 엄마에게 카메라를 사도 되냐고 물어보았는데 완전히 실망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지금 사게 되면 후회할 것이라고 사지 말라고 한다. 나는 그래도 우선 가지고 싶다.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없다면 왜 용돈을 모으는 것일까? 정말 속상하다. 어른들과 나는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1991년 3월 16일

나는 진짜 수인이가 화요일 시험을 잘 못 보았으면 좋겠다.


1992년 7월 12일

인생은 허무한 것입니다. 굳이 잘 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대충 살다 갈 순 없나요?


1992년 11월 22일

난 지금이 너무 힘에 겨워. 세상은 나 혼자뿐이야. 그걸 또 깨달았어. 그래서 슬퍼. 내가 나쁜 아이란 걸 알지만 너무 비침해서 견딜 수가 없단다. 남들 앞에선 환한 웃음으로 나 자신을 감싸 버리지만 그건 위선이야. 내 모습이 아니라고. 어떻게 하면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1992년 12월 4일

어른들이 우릴 이해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어른들을 이해 못하는 거니? 그런 것 같아.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니깐 어쩔 수 없겠지.


25년 전 일기장 속의 주인공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몰랐다. 세상에 혼자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고민했다. 죽고 싶다는 표현도 여러 번. 부모 때론 친구를 미워하기도 했다. 유치하지만 진지했다. 이게 나였구나. 그저 혼자 좋아했던 남학생의 마음을 얻지 못해 안달복달하기만 한 게 아니었구나. 일기를 읽다 보니 엄마에게 야단맞고 방문을 소리 내어 꽝 닫아서 더 혼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랬다. 나에게도 사춘기가 있었다. 욕도 좀 하는.


꼰대의 탄생은 이런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애들 이상해. 나 어릴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 특유의 가르치는 말투를 보자면, 자신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 텐데 기억을 못 하는 거다. 자긴 처음부터 잘한 줄 아는 거다. 사춘기가 없었다고 생각했던 나처럼 말이다. 자기도 욕 좀 했으면서 욕하는 중학생들이 무섭다고 하는 오늘의 나처럼 말이다.


괜찮은 어른이 되기도 쉽지 않구나 깨닫는다. 이제 첫째 딸이 사춘기를 맞을 차례다. 얼마나 딸을 이해할 수 있을지, 딸아이는 또 얼마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최소 꽉 막힌 꼰대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해질 때가 오면 4권의 일기장을, 장미의 향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혀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지나왔던 그 길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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