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글음 Jan 29. 2021

공감 능력이 뛰어나면 진짜 피곤해

두 딸들은 올해 만으로 14살, 9살이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공부 말고도 가르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훗날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갔을 때 한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기에. 그중 나는 공감 능력이나 배려심 같은 걸 최우선으로 쳐 왔다. 이기적이지 않고 예의 바르며 남들의 기분도 잘 살피고 약자도 챙길 줄 아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많은 부모들이 비슷한 바람을 갖고 있지 않을까? 물론 거기에 공부까지 잘하면 금상첨화일 테지만 말이다. 


나는 공감 능력이 너무 뛰어나다. 여기서 이 "너무"라는 단어 탓에 문제가 생긴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높으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기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기쁨, 즐거움 같은 좋은 감정도 쉽게 공유하지만 슬픔, 아픔 같은 기분도 함께 느끼느라 무척 힘들다. 이걸 예쁘게 표현하면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하는데, 나쁘게 갖다 붙이면 감정소비가 지나치게 큰 거다.


드라마, 영화를 볼 때마다 배우들의 삶에 몰입하는 건 기본이다. 남의 결혼식, 졸업식 가서 운 적도 아주 많다. 큰 사고가 나서 사상자가 생길 때마다 마음 깊이 그들의 가족을 걱정하느라 억장이 무너진다. 이 정도면 누구나 가질 법한 공감 능력이다. 하지만 나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고객이 별로 없는 대형 마트에 갈 때 이 꼴을 봐야 하는 사장의 처지까지 헤아린다.  


“어머, 여기 매장은 손님이 왜 이렇게 없어? 장사가 이렇게 안 되면 사장은 뭐 먹고사나. 직원들 월급은 줄 수 있을까? 이러다가 문 닫고 쫄딱 망하는 거 아니야?”


나의 반응에 남편은 대꾸한다. 


“걱정 마. 사장이 우리보다는 부자일 거야.”


어디 그뿐인가. 말실수를 해 놓고 하루 종일 나의 언행 때문에 기분이 상해 있을지도 모를 타인을 걱정한다. 먼저 사과했을 때 정작 당사자는 내가 그런 말을 한지 기억도 못 하는 경우도 많다. 딸의 생일파티에 초대하지 않은 아이들이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받을 상처는 어떡하나 초대장을 돌리기 직전까지 고민한다. 애들 하교 시간에 만난 학부모 중 인사를 하지 않고 헤어지면 섭섭할까 봐 반드시 기다렸다가 “See you later”를 한 후 헤어진다. 


나 아닌 남을 생각하는 마음은 우리 사회가 아름다워지는데 꼭 필요하다. 다만 정도와 횟수가 잦아질수록 당사자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진다. 때로는 남들의 기분을 자기가 알아서 확정 짓는다는 것도 문제다. 상대는 괜찮다는데 괜히 지레짐작하여 안 괜찮다고 생각하며 위로하려 든다. 이건 오만이다. 오만은 교정해야 한다.   


공감 능력이 지나쳤을 때의 진짜 큰 문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배려하려고 감정을 소비하는 동안 정작 자신의 마음을 챙기기 위한 힘을 남겨 놓지 못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타인의 마음은 너무 잘 와 닿는 반면, 내 속은 공감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내 마음 하나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누가 누굴 배려하겠는 건지. 이건 오류다. 오류는 수정해야 한다. 


그러니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공감은 내가 나의 진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욕망이 무엇인지,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똑바로 보는 게 의외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더라. 우리 딸들이 한 반 정도만 나를 닮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이 시국에 한국에서 영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