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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Oct 18. 2021

마시멜로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마시멜로 실험>이라 불리는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있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준 후 15분 간 먹지 않고 기다리면 나중에 하나를 더 주겠다는 실험이다. (순수한 아이들에게 이런 무시무시한 실험을 했다니!) 훗날 성인이 된 아이들을 추적을 해보니 당시에 안 먹고 참았던 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사회적으로 더 성공한다는 결론이었다. 한마디로 '참을성의 미'를 부추기는 실험 결과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같은 제안을 한다면 어떨까. 몇 년 전의 나였다면 아무리 먹고 싶어도 꾹 참고 하나를 더 기다렸을지 모른다. 실험 결과를 뻔히 알고 있으므로 혹시라도 안 먹고 기다리면 나도 성공하는 자들의 틈바구니에 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먹고 떠날 것이다.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참아야 이득을 얻는다고? 천만의 말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원 플러스 원 보상을 믿으려고 하나. 일단 공짜는 의심을 해야 한다. 그들의 제안대로 하나를 더 받을 수 있을까 아닐까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느니 얼른 말캉한 마시멜로를 입 안에 넣고 달콤함을 맛볼 것이다. 기다려야 할 15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나에게는 마시멜로라는 단어가 '행복'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여기 가로, 세로, 높이 3cm씩 되는 정육면체 행복이 놓여 있는데 이거 안 먹고 참으면 부피 두 배가 되는 행복으로 돌려줄게. 참을 수 있지? 세상은 자주 내게 물었다. 예전엔 참고 싶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추구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잘 참고 기다리면 더 큰 것이 올 거라 믿는 때도 있었다. 


집만 사면 행복할 거야. 집을 조금 더 넓은 데로 옮기면 행복할 거야. 아이들이 커서 내 시간이 많아지면 행복할 거야. 그래서 다시 일자리를 찾고 돈을 벌면 행복할 거야. 나의 현재는 온통 앞으로 다가올 행복을 위해서 쓰였다. 목표치도 높아서 도달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실 속 바로 눈앞에 놓여 있는 조그마한 기쁨은 느낄 여유가 없었다. 아니, 그것이 기쁨인지도 몰랐다. 


예전의 내가 마시멜로를 바로 먹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는 걱정과 불안이었다. 정말 참으면 하나를 더 얻을 수 있을까? 거짓말하는 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다 보면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상황과 맞닥뜨리곤 했다. 기다리는 15분이 괴로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미래는 누가 알겠는가. 아무도 모르는 것을 두고 애를 쓰다 보면 온 몸에서 기가 빠져나갔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목디스크와 어깨 통증을 비롯하여 여러 증상이 찾아왔다. 누구나 겪을 법한 증상일 수도 있는데 암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자 <건강염려증>을 겪었다. 현재를 온통 걱정하는데 쓰다 보니 우울한 감정과 무기력감에 휩싸였다. 내가 바라던 행복은 물 묻은 비누처럼 잡으려고 해도 손 안에서 숭덩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그 자리를 불안이 채웠다.  


몇 개월을 허우적 데다 겨우 빠져나왔을 때 한 발 떨어져 나를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현재를 놓치고 살았던 대가가 이것이었구나. 허공에다 대고 아무리 발을 흔들어도 땅에 닿지 못하면 행복은 오지 않을지 모르겠구나. 내 앞에 작은 기쁨이 보이면 더 큰 걸 바라지 말고 일단은 잡아야겠구나. 마시멜로는 바로 먹어야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그 후 나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마시멜로 실험>의 후속 연구가 있다. 그것에 따르면 마시멜로를 안 먹고 참았던 아이들의 부모가 사회경제적으로 더 안정적이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엄마가 언제든 사줄 수 있는 아이는 잘 참았고,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은 더 빨리 먹었다고 한다. 통제력과 인내심도 경제력이 지배한다니 슬픈 결론이지만 이래저래 금수저가 아닌 우리들은 얼른 먹고 다른 마시멜로를 찾으러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앞으로 펼쳐질 글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행복을 가로막는 여러 요소들, 특히 불안에 대한 고찰이자, 작더라도 소중한 현재를 놓치지 않겠다는 달콤한 다짐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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