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가지고 그 과목에서 나만 중간고사 면제되고 바로 A+ 받았잖아.”
"어우, 그때 세계여행 갔을 때 우리 장난 아니었는데. 그치?”
남편과 술을 마시다 보면 이런 식의 말투, 이야기가 자주 튀어나온다. 눈썹을 살짝 올리고 눈은 2/3 정도 내려 깔며 고개를 15도쯤 틀면서 지나간 날들을 음미하는 말투. 과거를 회상하며 아련해하는 그 말투가 종종 나온다. 대개는 한창 싱그러웠던 2,30대 시절의 이야기들을 꺼낼 때 그렇다. 열정적으로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아 주말에 집에서 쉬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바빴던 젊은 날의 이야기는 나의 단골 술안주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펙트 폭격을 했다.
"여보는 과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그런가? 그랬지. 나도 알고는 있었지. 그런데 어떡해. 그때가 그리운 걸. 왠지 지금보다 옛날의 내가 더 멋진 사람인 거 같은 걸. 그렇다고 나의 현재에 큰 불만이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종의 습관이랄까. 마치 그때의 나를 잊고 싶지 않다는 듯이. 하지만 그렇다고 내 자존감이 올라가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남의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며 산다는 건 '내가 나로 사는 비중'이 줄어드는 일이다. 가정을 지키고 돌보는 일에 도움을 받을 곳이 없어 온전히 나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아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꼬박꼬박 김치를 담가야 하고, 짬뽕이나 자장이 먹고 싶으면 손수 만들 수밖에 없다. 두 아이의 다양한 방과 후 활동을 위해 직접 차로 실어 나르고 기다렸다가 데려와야 한다. 이 나라 말로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언어를 익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실 지난 10여 년은 일상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었다.
물론 남편과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불평불만을 해서는 안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한국을 떠날 때 두고 왔던 나의 경력이나 만약 계속 거기서 살았다면 잡았을지도 모를 수많은 기회들이 비눗방울처럼 둥둥 떠다니다가 터지곤 했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그 속에서 함께 펼쳐질 고됨이나 시련은 뒤로 한 채, 그저 장밋빛 환상만 쫓으며 아쉬워했다.
나의 지난날이 예쁜 추억으로 끝나지 못하고 집착과 아쉬움, 후회와 번민으로 범벅이 되면서 나는 종종 과거 속에서 살았다. 그러느라 정작 내가 느껴야 할 조그마한 기쁨 한 조각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섯 번 웃을 일에 세 번만 웃었다. 내가 웃었어야 할, 꽉 잡지 못해 하늘로 날아가 버린 두 번의 웃음은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었을까? 뭐가 되긴. 아무것도 안 되고 없어졌겠지.
<갯마을 차차차>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인상 깊은 대사가 나왔다. 한 때 잠시 떴지만 지금은 잊힌 무명가수인 조한철이 주인공 신민아에게 자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려주고 싶어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민아는 그게 너무 짜증이 나서 친구에게 전화를 하며 말한다.
"아니, 실력이든 의지든 뭐라도 있었으면
어떻게든 잘 됐겠지.
나는 현재가 이 모양인데
과거 타령하고 사는 거
너무 비겁하고 초라해 보여.
그 말을 들은 친구 공민정이 대답한다.
근데 좀 안됐다.
나는 과거에 희망을 두고 온 사람 좀 짠해.
원래 못 이룬 꿈은
평생 맘에 밟히는 법이잖아.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나도 과거에 희망을 두고 왔던 거구나. 지난 시절이 너무 화려해서 평범해 보이는 지금의 일상에 만족을 못했던 거였구나. 희망을 얼른 다시 가져와야겠구나.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들 한다. 우리가 살아온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만약?"이라고 아무리 조건문을 단다 해도, 술 마실 때마다 끄집어낸다 해도, 지나간 날은 돌아오지도 않을뿐더러 바뀔 일은 없다. 게다가 철저히 주관적으로 쓰인 편협하고 왜곡된 개인의 역사책을 아무리 들춰본다 한들 지금 살아가야 할 날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어쩔 땐 현실을 더 괴롭게 할 뿐이다. 더 이상 과거와 꼬리잡기 놀이를 하고 싶지 않다. 추억은 집착하지 말고 추억으로만 남길 테다. 이미 놓쳐버린 수만 개의 웃음을 따라잡으려 신발 끈을 다시 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