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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Oct 23. 2021

스스로 우물 안에 빠진 개구리가
되지는 말아야지

쉽게 단정 짓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아주 작은 모습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에 대해서도 이러저러한 유형이라고 단정 짓는다. 한번 그러고 나면 웬만해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는 국물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려버리면 라면이라도 끓여 국물을 만들어 밥을 먹고는 이렇게 외친다.       

 

“거봐, 내가 국물 없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그랬다. 친구들과 선생님 댁에 놀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총각이었던 그가 국물 타령을 하며 나이 든 어머니에게 라면이라도 끓이라던 모습이 어찌나 철없게 보이던지.      


사람들은 또 분류하기를 좋아해 갖가지 방법으로 성격을 나눈다. 혈액형이나 별자리 같은 기준을 사용하기도 하고 MBTI 같이 전문적인 방법으로도 나눈다. 결과를 좋은 쪽으로 활용하거나 재미로 받아들이면 괜찮은데 그것으로 자신을 단정 지으면 행동반경이 좁아질 수 있다. 가령 나는 A형이라 소심하다고 받아들이면 새로운 시도 앞에 주저하는 모습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닫아버리는 것이다. <나=A형=소심>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꼴이 된다.  스스로 우물 안에 뛰어든 개구리처럼.      




내가 갇혀 있던 프레임은 “나는 저녁형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영어 표현에서도 “Early bird-아침 새”와 “Night owl-밤 부엉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우리 사회는 흔히 한 사람을 두고 아침형 인간인지 저녁형 인간인지 나누곤 한다. 나는 완벽한 저녁형 인간이었다. 밤 혹은 새벽에 가장 정신이 또렷했고 글을 써도 그 시간에 써야 능률이 올랐다. 반대로 아침엔 일찍 일어나기도 힘들뿐더러 커피를 마셔도 오전 내내 몽롱했다. 밤에 피는 장미, 그것이 정확하게 나였다.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아침형 인간이다. 전날 늦게까지 함께 술을 마셔도 그는 언제나 정해진 시간, 5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난다. 미국에서 박사 공부를 할 때도 영국에서 직장에 갈 때도 일찍 일어나 집을 떠난다. 그는 여러 차례 나에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라고 권했다. 아침 시간 잠깐이라도 서로 얼굴을 보고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놉, 안돼. 어떻게 아침 새가 밤 부엉이에게 일찍 일어나라고 할 수 있어. 그렇게 되면 밤에는 자려고 노력하면서 뒤척거리다 시간을 보내고 아침엔 멍해서 아무것도 못할 게 뻔한데. 사실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할 때마다 실패로 끝났고 결론은 한 가지였다. 나는 밤에 피는 게 효율적이야!  


하지만 불안과 우울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남편이 저녁 10시에 자고 아침 6시에 일어날 것을 다시 한 번 권유했다. 그가 찾은 정보에 따르면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생활 습관이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왕이면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것으로 세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 때문에 함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남편을 위해 한 번 더 해보기로 했다. 그의 인내와 노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자, 이번엔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성공이었다. 내 삶을 바꾸고 싶다는 절박함과 남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합쳐지면서 알람이 울리면 의지를 다해 몸을 일으켰다. 며칠이 몇 주가 되고 그것이 계속 이어지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더 이상 괴롭지가 않았다. 심지어 주말에도. 원래 평일에는 아이들 학교를 보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7시에는 일어났지만 주말만 되면 8시, 9시까지 자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었다. 밤에 지는 장미가 되었다.      


처음에는 잠에서 깼어도 계속 꿈을 꾸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난 뒤 고요함 속에서 보낸 아침의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비록 길진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건 생각보다 멋진 일이었다. 간단한 아침식사로 몸을 깨우고 영어공부를 하며 머리를 깨우다 보면 두 딸들이 차례로 일어났다. 엄마로서, 주부로서의 일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거봐, 미리 단정 지을 필요 없잖아.”       


나의 행보를 칭찬하며 남편이 던진 말이었다. 그러게. 나도 할 수 있는 거였구나. 그동안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했던 것은 “나는 저녁형 인간”이라고 정해 놓은 울타리 안에서 밖을 향해 나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틀을 깨자 나는 어떠한 인간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실제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맞추니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을 어느 범주에 갖다 놔도 그건 본인 자유다. 다만 범주의 벽을 너무 두껍게만 쌓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어느 하나의 문장, 하나의 성격으로 나눠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하나도 없다. 당신도 나도. 단정 짓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나오기가 무척 힘들다.



* 스스로를 단정짓지 말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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