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지 않는 삶’은 사은품 같은 것

by 영글음

"엄마, 지난주에 본 수학시험 점수 나왔어요. 89점이네요."


뭐라고? 시험을 언제 봤는지도 모르겠는데 웬 점수. 이곳 중학생들에게 시험이란 그저 평소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딸아이는 공부도 하지 않고 시험을 치르고는 달랑 결과만 통보하곤 한다. 89, 이 느닷없는 숫자에 나는 또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거 잘 받은 거야? 루시는 몇 점 나왔데?"

"90점이요."

"비니는?"

"비니는 93점인가 받았을 걸요."

"다른 애들이 너보다 더 잘했네. 그럼 칼럼은?"

"몰라요. 나보다 못 받은 애들이 훨씬 더 많아요. 어떤 애는 30점 받았어요.”


딸은 늘 나의 반응에 어처구니없어하며 방으로 사라진다. 브라보! 내가 이런 엄마가 되었다. 다른 아이와 비교 따위는 하지 않으면서 키우려 했건만. 한국처럼 등수가 나오지 않는 성적표는 여전히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그게 있어야 우리 아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알아차려 필요하면 도움이라도 줄 텐데 말이다.


비교를 하는 대상이 딸의 성적만은 아니었다. 10년 전 한국을 떠난 뒤로 눈부시게 발전해 온 각종 소셜 미디어는 비교를 잘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선사했지 않은가. 일일이 내용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조그마한 네모 칸에 담긴 이미지들은 내 삶과 다른 이들의 삶을 손쉽게 비교해 주었다. 부럽거나 우울하거나, 때론 내가 그들보다 잘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위안에 우쭐해지거나. 그러면서 자연스레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 지의 기준을, 행복과 성공의 기준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남들이 나보다 더 잘하면 나는 못하는 게 되는 거다. 89점이 뛰어난 점수라 해도 루시나 비니 같은 아이가 있는 한, 우리 딸은 그들보다 아래가 되는 거다.


몸과 마음에 균열이 생기자 더더욱 열심히 남들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동아리 선배는 저런 멋지고 큰 집에 사는군. 옛 학교 친구는 에메랄드 빛 바다에 놀러 갔구나. 쟤는 안 그렇게 생겼는데 음식을 엄청 잘하네. 저 사람은 사업을 어떻게 시작해서 떼돈을 벌었지? 운이 좋았나? 그러면서 우리 집은 더욱 작게 느껴졌고 영국 바다색은 우중충, 내가 만든 음식은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작년부터 벌여 놓은 핸드메이드 사업은 미래가 없이 느껴졌고 나는 운이 나쁜 사람이 되었다. 갈수록 태산은 이럴 때 하는 말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되게 웃기는 일이다. 자신의 삶인데, 왜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을 남의 손에 맡겨놓았을까. 그들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나의 행복이 왔다 갔다 한다? 좀 억울하지 않은가. 내 인생의 주체가 내가 아닌 이 느낌을 계속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 내 행복과 만족은 항상 수동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교하기에 꽤 소질이 있었던 내가 몸과 마음을 회복하면서 일상을 되찾고 나니 비교를 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남들 잘 나가는 거 보면서 괴로워할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깨닫게 된 것은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내 삶이 먼저 당당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교해서 초라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초라하다고 생각하면 계속 비교하게 된다.


그러니 계속 남들의 삶과 견주며 괴로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단순하게 “비교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할 게 아니다. 나를 둘러싼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 만족할 만한 현실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든지 지금 그대로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관점을 바꾸면 비교는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마음먹는다고 금세 되는 것은 아니기에 장기 프로젝트이다.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는 목적 자체가 아니라 내 삶이 당당해지면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사은품이다.



* 사은품 때문에 잡지 사 본 사람? 내 삶에 먼저 당당해질 것 *